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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행복상속]

분재기(分財記)에 담긴 지혜-상속자의 의무부터 생각하라㊤

  • 보도 : 2019.06.26 08:20
  • 수정 : 2019.06.26 08:20

"유산에는 권리만 담겨 있지 않다"

"갑술(甲戌)년 8월 15일 을묘(乙卯)일 새벽, 사당에 참배한 후 안방으로 물러나 앉았다. 손자를 왼쪽 무릎에, 어린 아들은 오른쪽 무릎에 앉힌 채 장성한 세 아들을 마주보며 말한다. 갑(甲)이는 주판을, 묵(黙)이는 붓을 잡고 늙은 아비의 말을 기록하도록 해라.

제사에 들어갈 재물을 얻을 밭은 별도로 남겨두고, 묘지는 장손이 관리하도록 해라. 자손들에게 두루두루 땅과 밭을 나누어 주되 치우침 없도록 하라. 분배 내용은 지금 작성하는 문서 뒤에 붙이도록 해라. 아이들과 며느리들은 내 가르침을 들으시오. 오늘은 우리 집안이 새롭게 짜여 지는 날이다......."

1874년(고종 11년)에 기록된 청양의 단양 우(禹)씨 가문 분재기(分財記) 가운데 일부다.

분재기란 유산을 후손들이 어떻게 나눌지를 기록한 문서를 말한다.

앞서 소개한 문서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늙은 아비의 애정이 담뿍 담겨 있다. 그런데 재산을 나눠받는 자식들의 마음이 기쁘지만은 않을 듯싶다. 다음 구절을 읽어보라.

"늙은 아비는 이제 집안 다스리는 일에서 물러나려 한다. 너희들이 나를 돌아가면서 봉양했으면 좋겠다. 식사는 세 끼 마다 입에 맞으면 그만이요, 사계절 의복은 몸에 맞기만 하면 아무 문제없다. 다만, 우리 집안은 조상대대로 제사를 잘 받들고 손님을 잘 모셔왔음을 마음에 새기도록 해라. 제사를 모시는 마음의 근본은 효심(孝)과 경건함(敬)이요, 손님을 맞을 때의 도리는 정성이다........"

아비는 큰 욕심이 없어 보인다. 자신은 소박한 음식과 의복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한다고 했다. 하지만 제사와 손님맞이만큼은 정성을 들여 제대로 치르라고 당부한다.

그런데 제사는 정성껏 모시면서 자기 아비한테는 소홀히 할 수 있을까? 손님맞이도 다르지 않다. 손님을 떠받들면서 집안의 가장 큰 어른을 홀대할 수 있겠는가? 한마디로 재산을 상속받고 싶다면 자신에게 잘하라고 은근히 요구하는 셈이다.

이렇듯 분재기에는 돈과 재산을 어떻게 분배할지에 대한 내용만 있지 않다. 자손들이 마땅히 치러야 할 의무와 도리도 함께 적혀 있었다.

"은퇴 계약서,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상속에 따르는 의무는 서양에서 더 철저했다. 유럽의 농민들은 아예 부모 자식 간에 계약서를 썼다.

'은퇴계약서(the retirement contract)'에는 땅과 재산을 물려받을 자손이 어떻게 부모의 노후를 책임질 지에 대한 내용이 상세하게 담겼다. 일주일에 우유는 몇 리터를 주는지, 빵과 치즈는 몇 덩어리를 줄 것인지, 고기 요리는 얼마나 자주 올려 줄 지에 대해서까지 빼곡하게 계약서에 담았다.

부모자식 간에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싶지만 절반이 넘는 농민들이 이렇게 했다.

심지어 유산을 받은 자손이 제대로 봉양을 못하면 다른 이에게 상속권을 넘기기까지 했다. 물론, 부모에 대한 부양의무 또한 재산을 넘겨받은 자에게 돌아갔다.

철학박사
안광복 박사

[약력]중동고 철학교사, 철학박사
서강대학교 철학과에서 공부하고 동 대학원에서 ‘소크라테스 대화법’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철학, 역사를 만나다』,『처음 읽는 서양 철학사』,『우리가 매혹된 사상들』,『열일곱 살의 인생론』,『철학자의 설득법』,『소크라테스의 변명, 진리를 위해 죽다』등 10여 권의 철학 교양서를 펴내며 30만 명이 넘는 독자를 철학의 세계로 안내한 대표적 인문 저자이기도 하다. 다양한 매체에 글을 쓰고 다양한 대중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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