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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행복상속]②

행복한 상속, 어떻게 보다 왜부터 물어라㊦

  • 보도 : 2019.05.01 08:00
  • 수정 : 2019.05.07 15:05

장자의 의무와 상속의 의미

조선의 성리학자 주세붕(周世鵬,1495~1554)이 관직에 있었을 때 일이다.

그가 다스리던 백성이 아우의 재산을 빼앗으려 소송을 벌였다. 주세붕은 먼저 형에게 아우를 업고 하루 종일 뜰을 돌게 한 후 이렇게 물었다. 

"자네는 어린 아우를 업어 기를 때도 후에 재물을 다투어 빼앗을 생각을 하였더냐?"

주세붕의 꾸지람을 들은 형은 마침내 잘못을 깨닫고 부끄러워했다.

이 일화에는 행복한 상속의 고갱이가 오롯이 담겨 있다.

재산을 물려주며 가문이 깨지기를 바라는 부모는 없다. '정산'을 끝낸 자식들이 서로 의절을 하고 지내기를 바라는 부모도 없다.

왜 조선 후기에는 맏이에게 재산을 몰아주었을까? 이는 결코 맏아들만 혼자 잘 살라는 뜻은 아니었다.

조선 초기와 중기에는 균분상속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다 인구가 늘고 토지도 갈수록 부족해지자, 장자상속이 당연한 상식으로 굳어져갔다. 재산을 잘게 나눴다간 후대로 가면 결국은 모두가 못살게 될 가능성이 컸던 탓이다.

맏이는 부모의 재산을 오롯이 물려받았다. 종가(宗家)는 가문의 재산을 독차지하다시피 했다. 하지만 장손과 종가는 이를 자신만을 위해 쓰지 못한다.

첫째들은 '맏이의 의무'를 다해야 했다. 식솔들과 일가친척들을 거두고 보살펴야했다는 의미다.

나아가, 종가는 가문을 지탱하는 '사회안전망'이었다. 국가가 생계를 책임지지 않고 생면부지 사람들이 나를 챙길 리도 없다. 이런 처지에서 종가는 같은 조상으로 얽혀 있는 이들의 삶을 챙기는 보루여야 했다.

맏이가, 나아가 종가집이 주어진 의무를 다한다면 일가친척들이 '불공정한 상속'에 볼 맨 소리를 하기는 어려웠다.

이는 일가친척 전체를 떠받치는 '복지 재원(財源)'을 흐트러트리는 불손한 시도로 여겨질 수도 있었다.

게다가 제사는 가족 공동체를 유지하는 강력한 끈이었다. 아무리 크게 심하게 다투고 서로 싫어해도 부모와 조상을 모시는 제사에 빠질 수는 없었다. 그랬다간 바로 '인간 말종'으로 배척을 받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문이 주는 '사회안전망'에서도 내쫓겨 나갈 위험도 있었다.

재산을 맏이와 종가에 몰아주었던 데에는 그들이 제사를 모시는 비용과 품을 대어야 한다는 이유도 컸다. 때문에 종가의 자산이 견실하고 이를 기반으로 유지되는 제사가 유지되는 한, 부모의 죽고 나서도 가족은 좀처럼 깨지지 않았다. 때마다 얼굴을 맞대야 하는 일가친척들끼리 서로를 박대하기가 어디 쉽겠는가.

세상에 이유 없이 오래가는 제도는 없다.

장자상속과 종가(宗家)의 전통은 수 백 년 넘게 지속되었다. 두 제도가 가족 공동체란 사회 안전망을 유지하고 후손들끼리의 관계를 가꾸어가는 데 있어 효율적이었다는 점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겠다.

'어떻게' 보다 '왜'부터 물어라

하지만 장자상속 등의 제도는 우리시대와 맞지 않다.

복지의 상당부분은 부모형제가 아닌 국가가 책임지고 있을뿐더러, 개인주의와 평등사상은 누구도 거스르지 못할 우리시대의 '상식'인 까닭이다.

맏이 상속과 종가 전통이 여성의 지위와 권리에 소홀히 했다는 점도 지적할 필요도 없을 만큼 분명하다.

그렇다면 어떤 상속이 바람직할까?

모두에게 공정하게 '정당한 몫'을 나누어 주면 행복한, 모두가 만족하는 상속이 될까?

거듭 말하지만 상속은 거래가 아니다.

공정함(fairness)은 이익을 둘러싼 계약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다. 그러나 상속에는 내 삶과 가문의 가치를 어떻게 보존하고 이어가게 할지에 대한 물음이 담겨 있다.

상속을 고민하는 이들이 '어떻게' 보다 '왜'부터 깊이 따져 물어야 하는 이유다.

"상속자가 세상을 뜬 이후에도 후대에 계속 이어져야 할 가치와 덕목은 무엇인가?"

"상속이 이루어지고 난 후, 우리 가족은(혹은 우리 회사는) 어떻게 되었으면 좋겠는가?"

이 두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 일은 상속받는 이들에게 '마땅한 몫'을 '공평'하게 찾아주는 과업보다 훨씬 중요하다.

이에 대한 마땅한 답을 찾지 못할 때 상속은 거래로 추락할 것이다. 상속자 또한 후손들에게 '챙겨야 할 돈지갑' 이상이 되긴 어렵다.

그렇다면 두 물음에 대한 현명한 답은 어디서 구해야 할까? 우리는 앞으로 이 지면을 통해 두 질문에 혜안을 안기는 철학의 지혜들을 찾게 될 것이다.

철학박사
안광복 박사

[약력]중동고 철학교사, 철학박사
서강대학교 철학과에서 공부하고 동 대학원에서 ‘소크라테스 대화법’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철학, 역사를 만나다』,『처음 읽는 서양 철학사』,『우리가 매혹된 사상들』,『열일곱 살의 인생론』,『철학자의 설득법』,『소크라테스의 변명, 진리를 위해 죽다』등 10여 권의 철학 교양서를 펴내며 30만 명이 넘는 독자를 철학의 세계로 안내한 대표적 인문 저자이기도 하다. 다양한 매체에 글을 쓰고 다양한 대중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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