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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조세일보 선정 '명품(名品)' 세무사]

자타공인 양도소득세 '지존(至尊)'…안수남 세무사

  • 보도 : 2012.11.06 09:54
  • 수정 : 2012.11.06 10:09

안수남 세무사 사진

21세기 트렌드는 '명품(名品)'이 좌우하고 있습니다. 명품은 다른 상품들과는 차원이 다른 품격(品格)과 가치(價値)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특히 한 직업의 스페셜리스트에게 명품 직업인이라는 최고의 칭송을 붙이는 것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남들과는 다른 '비장의 무기'를 가지고 있는 세무사,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에 매진하며 자신의 숨겨진 가치를 분출해 내는 세무사, 확실한 실력과 서비스로 고객에게 더 다가서는 세무사, 조세일보(www.joseilbo.com)가 발굴할 명품세무사들입니다.
 
조세일보가 이번에 발굴한 명품세무사는 안수남 세무사입니다. [편집자 주]
 
안수남 세무사는 대한민국 1만여 세무사들 가운데 양도소득세분야에서 만큼은 자타가 공인하는 소위 '1인자'로 통한다. 한 분야의 1인자, 어느 정도의 경지에 올라야 이런 평가가 따라 올까?
 
그는 또 한 분야의 1인자라는 '성공'에 만족하지 않고, 세무사라는 직업인으로서의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세무법인 다솔'을 설립했다.
 
"세금과 관련해서는 세무사들이 최고의 전문가인데 왜 대형 조세불복 등 주요 세무업무는 회계법인이나 법무법인들이 도맡아야 할까? 이들 대형로펌이나 회계법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그런 세무법인을 만들고 싶다"는 게 그의 생각.
 
조세일보가 안수남 세무사를 만나봤다.

'안수남' 모르면 간첩?…진짜 '스페셜리스트'
 
대한민국 조세업계에서 '안수남' 이름 석자를 모른다면 소위 간첩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이미 그는 최고라는 명성과 함께 유명인이다.

그는 세금중에서도 양도소득세분야에서 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한 분야에서 '1인자'라는 평가를 듣는다는 것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세금을 다루는 세무사는 제조업 등 물건을 생산하는 직업이 아니라는 점에서 각 분야에서 최고로 불리는 명장이나 장인과는 완전히 다른 성격의 1인자다.
 
변화무쌍한 경제환경을 반영하기 위해 매년 바뀌는 것이 세법의 특징이다. 당연히 남다른 노력과 열정을 쉬임없이 쏟아 부어야 들을 수 있는 평가라는 점에서 안수남 세무사의 명성은 더욱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
 
어떻게 하면 1인자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안수남 세무사를 만나기 위해 10월 중순 경기도 광명시 철산동 세무법인 다솔 광명지점으로 갔다. 다솔의 본점이 있는 강남구 역삼동 보다는 지금의 안수남 세무사를 있게 한 곳이 광명사무소다. 그가 세무사로서 잔뼈가 굵은 곳이자, 일생이 배어있는 곳이기도 하다.
 
먼저 가장 궁금한 것부터 질문을 던졌다. 국세청 고위직 출신도 아닌, 그렇다고 명문대학을 나온 것도 아닌 그가 어떻게 해서 양도소득세 분야의 최고전문가라는 명성을 얻을 수 있었을까하는 것이었다. 분명 '비결'이 있을 것 같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세상에 그저 주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 안수남 세무사의 '오늘'은 남다른 '열정과 노력' 두 개의 단어가 꽃피워 낸 '열매'였다.

안수남 세무사 사진

◆국세공무원의 길…9급 입사 승진 못하고도 7급으로 퇴직

안수남 세무사는 국세청 일선세무서에서 13년여를 근무한 국세공무원출신 세무사다. 1977년 일선세무서에서 국세공무원 생활을 시작해 1990년 구로세무서 근무를 끝으로 그해 12월 경기도 광명시에 조그마한 세무사사무실을 개업, 세무사로서 첫 발을 내디뎠다. 현재 개업 23년차다.
 
전남 함평이 고향이다. 재수를 하고 있던 1976년에 가정 형편상 대학 진학의 꿈을 접고 제1회 세무직시험(9급)에 응시한 것이 세금과의 인연이 되었다.

그는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13년 국세청에서 근무하는 동안 승진임용장을 받아보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7급으로 근무했고, 또 퇴직했다.
 
1977년 국세청에 입사해 국세공무원 초년시절을 보내고 이듬해 군입대를 했다. 3년여의 군생활 후 본격적으로 세무서 근무를 시작했으나, 자신보다 연배가 아래인 세무대학 졸업생들이 8급으로 신규임용되는 것을 보고, 7급공채 시험을 준비했다. 공부를 시작한지 10개월만에 합격했고, 83년 12월 7급으로 임용되는 영광을 안은 것.
 
"6급으로 승진하기 위해 민원실에서 근무를 하면 가점을 준다기에 민원실 근무를 자처했으나, 세무사 시험에 합격하면서 세무사의 길을 걷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저는 국세청에서 승진한번 못해본 것이지요."
 
하지만 그는 국세공무원 생활13년, 너무도 많은 것을 배웠다고 소회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사건 하나가 있다.
 
청량리 세무서 근무시절이다. 같은 반 반원들과 함께 관내 밀주((密酒))단속을 나간 일화다. 밀주를 판매한다는 정보에 따라 단속을 나갔는데 연로한 할머니께서 운영하는 조그만 '구멍가게'였다.
 
밀주항아리를 발견하고 조사반장이 압수와 봉인을 지시했다. 그 순간 어린시절 시골 어머님이 세무공무원에게 단속되어 곤혹을 치르던 장면이 스쳤다. 속으로 "할머니 그 항아리 깨어버리세요"라는 말을 두번 외쳤다. 주문은 이내 현실로 변했다. 갑자기 할머니가 옆에 놓여있던 몽둥이를 들고 항아리를 내리쳤고, 삽시간에 산산조각이 나버린 것. 졸지에 단속을 나간 반원들은 증거품을 잃어버렸다.
 
"얼마나 딱하면 저렇게 했겠습니까? 반장님 한번 봐 주시죠. 라고 했더니 반장이 즉각 수용했습니다. 속으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몰랐습니다"라고 안 세무사는 회고했다.
 
안 세무사는 이처럼 세무공무원으로서의 엄정한 법집행 못지않게 약자를 배려함으로써 곤욕을 치른 일이 한 두차례 더 있다고 말했다. 그럴 때 마다 어려움에 처한 납세자를 배려하고 이해하고 싶은 '세무사의 기질'이 속 깊은 곳에서 꿈틀거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고 했다.
 
◆1990년 광명(경기 광명시)에 '둥지' 틀다…'양도소득세 전문가'의 길
 
안수남 세무사의 개업스토리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국세공무원 12년차인 1989년 구로세무서 근무시절 6급승진 가점을 받기위해 민원실 근무를 자처한 것이 세무사의 길을 걷게 된 계기가 됐다. 민원실에서 근무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세무사 공부를 하게 되었고, 공부를 시작한지 1년만에 세무사자격증을 손에 쥐었다.
 
그 시절 우연히 친구를 만나기 위해 광명시에 간 것이 인연이 되어 광명시에서 23년째 세무사사무실을 운영하게 된다. 당시 광명시는 한창 개발붐이 일면서 세무수요가 많았으나 지역에 세무사 사무실은 고작 2곳이 전부였다.
 
"저는 가진 게 없어 강남지역에 사무실을 낼 엄두도 못냈을 뿐 아니라 강남에 개업을 하면 주위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었으나, 어쩐지 그게 싫었습니다. '시골스러운' 광명에 끌렸습니다. 정말 소박하게 시작했고, 제 성격과 딱 맞았습니다."
 
개업 초기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라는 질문에 "개업 첫 달만 적자보고 이내 흑자로 돌아섰다"고 했다.
 
당시 광명시 하안동 일대 아파트 입주가 시작되던 시기였다. 관내 세무사는 턱없이 부족했고, 이곳 입주민들의 가장 큰 고민은 양도소득세였다. "밤잠 안자고 하안동 아파트의 양도소득세 예상세액표를 만들어 광고를 한 것이 주효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저희 사무실로 문의와 일거리가 몰려들었습니다."
 
"또한 상담과 신고업무가 늘어나면서 불복업무도 많아졌습니다. 승소하기 위해 밤낮을 연구하고 고민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양도세)전문가가 된 것입니다. 아마 당시 양도소득세 신고대리업무를 전국적으로도 많이 한 세무사 중 한사람이었지 않나 싶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양도소득세 전문가라는 평가를 서서히 듣게 되었다고 전했다.
 
"전문가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양도소득세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또 제 성격이 누군가가 질문을 해오면 모르는 것일 경우라도 어떤 상황에서도 답을 찾아 답변을 주다보니 자연스럽게 공부가 되었습니다. 또한 세무사시험 동기들끼리의 연구모임(한구실회)을 만들어 사례를 연구하게 된 것도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지금에 와서 말로 표현하면 쉬운 것 같지만 결코 쉬운 도전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비결이 있지 않았을까? 그러나 특별한 것은 없었다. '열정과 노력'이라는 답이 나왔다.
 
안 세무사가 전문가로서 발판을 쌓게 된 것 중 또 하나는 1993년부터 7년여동안 해온 공인중개사협회에서의 양도소득세 강의였다고 말했다. 강의는 질문과 상담으로 이어졌고, 답을 하기위해서는 연구와 공부를 게을리 할 수 없었던 것.
 
이런 경험이 밑바탕이 되어 안 세무사는 국세청, 조세심판원, 세무사회 등에서 수시로 찾는 양도소득세 강의의 '달인'으로도 통하고 있다. 그가 2006년 내놓은 '양도소득세 실무해설서' 역시 이미 스테디셀러다.
 
안 세무사의 전문성은 공중파를 탄지 이미 7년을 넘어서고 있다. KBS 제1라디오 매주 수요일 오후 4시30분 '성기영의 경제투데이' 세무상담 코너에 고정출연하고 있는 것. 물론 생방송이다. 경인방송, YTN, 부동산TV 등에서 쌓은 경험이 많은 힘이 되었으나, 세무상담을 생방송을 한다는 것은 최고의 내공(內功)이 없으면 엄두도 낼 수 없다.
 
양도소득세 박사가 될 수 있는 길을 물었다. "양도소득세는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양도세의 변천 등 역사를 모르고 현재 것만 알면 자신감이 없어지고, 상담이 부실해 질 수도 있습니다"라고 살짝 귀띔했다.


안수남 세무사 사진

 ◆'독불장군'은 없다…광명지역 납세자들 사로잡은 비결은?
 
광명시 철산동 광명세무서 광명지서 맞은편 건물에 자리한 세무법인 다솔 광명지점(안수남 세무사 사무실)의 안 세무사 사무실은 고급인테리어로 깔끔하게 꾸며져 있었다. 어느 회사든 대표실은 보통 사무실 맨 안쪽에 있지만 안 세무사의 방은 출입문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다. 소위 '문간방'이었다. 대신 넓었다.
 
이곳을 방문한 기자도 첫 느낌이 부담감이 없고, 편안했다. 대표를 만나기 위해 사무실을 지나야하고, 직원들과 마주쳐야하는 수고가 없었고, 방이 넓으니 여유가 생겼고, 편안했다.
 
안수남 세무사사무실을 찾는 고객들을 배려하기 위한 고민에서 나온 안 세무사의 작품이었다.
 
"회사를 운영하는 분들 대부분 비슷하겠지만 저는 직원들을 종업원이라고 부르거나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없습니다. 모두 식구라고 부르고 또 그렇게 대하고 있습니다."
 
안 세무사만의 직원관리 노하우는 계속 이어졌다.
 
"제가 식구로 대하면 식구가 되는 것이고, 종업원으로 대하면 종업원이 됩니다. 그리고 저희 사무실의 핵심은 자율입니다. 제가 전무에게 업무를 위임했으면 책임지고 하게끔 믿고 맡깁니다. 맡겼으면 믿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을 맡긴 후 의심을 하게되면 식구가 되기 힘듭니다."
 
"조직원이 식구가 되면 자칫 잘못을 저질렀을 경우라도 오래 가지 못하고 이내 정직한 식구가 될 수 밖에 없다"고 힘주었다.
 
물론 안 세무사의 직원들에 대한 배려는 이미 소문 나있다. 많이 번만큼 직원들에게 월급을 더 주려고 주저하지 않는다고 한다. 욕심은 욕심을 낳고 또 끝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실제로 이런 안 세무사의 배려에 직원들은 이미 사무실의 주인이 되었다고 했다. 대부분 세무사 사무실의 경우 세무사를 채용하면 1~2년이면 개업의 길로 나서지만 안 세무사와 함께하고 있는 3명의 세무사들은 이미 10년을 넘겼고, 또 한명도 8년째 근무를 하고 있다. 또 조미숙 전무를 비롯해 과장급의 경우 모두 15년 이상 근무하고 있다고 전했다.
 
"거래처 사장의 생일날 케익을 선물하고, 연말에 안부편지를 보내는 직원들이 몇이나 될까요. 저희 사무실 여직원들이 고객에게 보여주는 관심입니다."

"거래처 사장으로부터 저희 직원들에 대한 이같은 칭찬의 말을 듣고 너무 고마워서 그 날 사무실 전체 회식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누가 시킨 게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돈으로 직원이 스스로 했던 것입니다. 누가 시킨다고 가능할 일도 아니지 않습니까? 이런 직원들을 믿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자연스럽게 광명지역에서 안수남 세무사를 모르는 사람이 드물 정도로 유명세를 탔다. 그리고 경제적으로도 성공을 거두었다.
 
"안수남이 돈 벌어 빌딩 몇 개 샀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기분은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빌딩도 없고, 부동산도 없습니다. 지금의 광명사무실과 목동의 집이 저의 전 재산입니다." 보유한 '지적재산권(세무사자격)'때문일까? 한 분야를 섭렵한 전문가로서의 자신감이 한껏 묻어 나왔다.
 
◆몸에 맞지 않는 어색한 옷…'광명문화원장' 3년
 
안 세무사는 광명에서 사무실을 개업한 후 1991년경 지인의 권유로 광명문화원 이사로 활동을 시작한 게 인연이 되어 부원장에 이어 원장까지 역임하게 되는 영광을 안았다.
 
"문화원장을 하면서 광명의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아끼지 않았고, 또 전국의 문화원중 원사를 갖게 된 몇 안되는 문화원이라는 칭찬도 받았습니다. 그런 탓에 당연히 정치에 뜻을 가지고 있다는 오해를 받았습니다. 특히 국회로 진출한 백재현 의원이 광명문화원 부원장 출신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랬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지역의 문화원장은 원로급 인사가 맡아하는 봉사직이라는 점에서 저에겐 너무 어색했습니다. 2004년 취임했으니 제 나이가 40대였습니다. 전국에서 두 번째로 나이가 적었습니다."
 
"그래서 임기를 줄였습니다. 원래 4년 임기였던 것을 3년간 봉사하고 후임자에게 바통을 넘기면서 '지난 3년간 사람이 살면서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너무 불편했다. 이제 그 옷을 벗겨되어 너무 행복하다'는 퇴임사를 했습니다."
 
대뜸 문화원장의 연봉은 얼마입니까? 라고 물었다. "문화원장은 순수 봉사직입니다. 오히려 발전기금을 내야합니다"라고 멋쩍게 웃었다.
 
안 세무사는 "맞지 않는 옷을 3년간 입고 있었으나 지역사회를 위해 최선을 다해 봉사를 한 것에는 어떤 다른 봉사보다도 큰 자부심으로 남아있다"고 소회했다.

◆최고의 두뇌를 한곳에 '다솔'의 탄생…'경영혁신상'에 빛나다
 
양도소득세 분야의 1인자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으며, 이어지는 강연과 방송, 불복업무 등 최고 전문가로서의 지위와 명성, 경제적 보상까지 모두를 갖춘 안수남 세무사를 부끄럽게 한 것은 주위를 감싸고 있는 '세무사는 2류자격사'라고 여겨지는 보이지 않는 이미지였다.
 
안 세무사는 연세대 석사과정때의 일을 떠올렸다.
 
"현재 국내 법률시장 전문가들의 구성에 관한 연구발표를 했는데 국제적 로펌에 변호사가 4000명 씩 있고, 우리나라 회계법인도 수천 명의 회계사가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어요. 그런데 국내 세무법인을 연구해서 발표하는데 한 군데가 60명 내외, 그 다음엔 많아야 20명 안밖이었어요. 그나마 10여명 이상의 세무사를 보유한 세무법인을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같은 세무사로서 부끄러웠습니다."
 
또 하나. "국세청 국세심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느낀 것입니다. 고액의 불복청구 대리인은 대부분 대형로펌, 회계법인 이었습니다. 택스펌은 없었습니다." "조세소송은 전문가인 세무사들이 해야하는데 왜 로펌, 회계법인에 뺏겨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브랜드파워가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안 세무사는 또 조세분야의 최고전문가인 세무사들의 자존심의 문제고, 기장 중심의 세무사시장의 한계를 극복해야 세무사들 모두가 살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왜 세무사들은 고부가가치의 일을 못하고 10~20만원짜리 기장을 가지고 싸우고 있는지에 대한 스스로의 물음에 답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세무사들이 회계법인과 로펌을 따라잡을 수 있는 방법은 뭘까? 뜻있는 동료세무사들과 대형세무법인 설립방안에 관하여 무려 2년여를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고 한다.
 
국내 최대의 세무법인으로 불리는 모 세무법인처럼 '원펌'으로 하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리스크도 감수해야 한다는 점에서 세무사로서 성공한 사람들이 힘을 합쳐 최고의 세무법인으로 만들자고 의기투합했다. 지금의 '다솔(DASOL TAX)'이다.
 
현재 다솔에는 쟁쟁한 세무사들이 모여있다. 각 분야에서 1인자로 불리는 세무사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양도소득세 안수남, 상속·증여세 김금호, 종합소득세 정해욱, 부가가치세 한장석, 법인세 배택현, 국제조세 서윤식·엄태철, 세법학 명영준, 금융기관 PB 출신인 양길영·최용준, 보험전문 송경학, 경영전문 이태야·정노진, 세무조사 전문 조정운, 수출입전문 김겸순, 업종별 세무회계 이강오 세무사 등.
 
안 세무사는 이어 공인노무사, 감정평가사의 자격을 소지한 세무사도 합류한 상태라고 전했다. 파트너 중에는 작년에 사법고시에 합격해 현재 사법연수원에서 연수중인 파트너(세대 4기 김해주 세무사)도 있다고 은근히 맨파워를 자랑하기도 했다.

이어 안 세무사는 "다솔에는 무엇보다 성공 이전에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이고 있다"면서 "최소한 우리(세무사)의 자존심을 살리려고 하는 사람들이 모여 힘을 합하면 대형법무법인이나 회계법인과 견줄 수 있는 세무법인이 만들어지는 것, 그것이 다솔의 '비전이고 목표'"라고 했다.
 
본점에는 각 분야의 권위자들이 파트너로 모이고, 각 지역에 전문가들이 업무제휴를 통한 지점으로 합치면 세무전문가 다운 최고의 '파워'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래서 다솔은 현재 부회장에서 회장으로 추대된 임성균(전 광주지방국세청장, 조세심판원 상임심판관)회장과 중부지방국세청 조사1국장으로 명예퇴임하고 금년에 합류한 서윤식 고문만 국세청 고위직 출신이고, 나머지 본점과 지점의 파트너들은 실무자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는 점이 다른 세무법인과 차별화되고 있다고 했다.
 
이같은 다솔의 시도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최초로 전국을 연결한 종합세무서비스 체계를 구축해 납세자가 어느 곳에서든 편리하게 양질의 세무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혁신적인 세무 경영기법이라고 칭찬하고 있다.
 
이런 다솔의 정신을 우리나라 세무법인들이 지향해야 할 모범적인 사례로 평가한 한국국제회계학회가 지난 2011년 '경영혁신상'을 수여했다.
 

안수남 세무사 사진

◆후배들에게 길을 말하다…"상담은 앉아서 하는 게 아니다"
 
앞으로 세무사업 어떻게 가야합니까? 라고 물었다.
 
안 세무사는 2006년 11월부터 2008년 11월까지 한국세무사고시회장을 지냈다. 갑자기 후배들 생각이 떠 오른 듯 이 질문에 안 세무사는 너무 진지했다.
 
"지금 세무사시장은 대형, 중형, 소형으로 나뉘어져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세무사들은 소형 시장에만 매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10년이상 기장료가 오르기는 커녕 오히려 내려가고 있는 것"이라면서 "이제 괜찮은 분들은 기장 시장보다는 고부가가치가 있는 불복이라던지 컨설팅으로 전환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안 세무사의 진단은 계속 이어졌다.
 
"세무사는 전문직이면서 서비스업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전문직은 실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직원들이 업무의 80~90%를 한다고 해도 세무사가 폭넓게 지식을 쌓아놓고 있는 사람과 기장에 매달리는 사람은 다르다고 봅니다. 그래서 후배들에게 무엇보다 먼저 실력을 갖추라고 조언합니다."
 
"세무사 시험은 40~50점 맞고도 합격하지만 세무사업은 100점 맞아야 된다"라는 게 안 세무사의 철학이다.
 
"실력이 없는 세무사가 어디가서 당당하겠습니까. 그래서 실력을 갖춘 세무사가 항상 당당하고 내가 지금 사는 것이 어렵더라도 비굴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고객 마인드라는 것이 사람 중심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면서 "무엇보다 사람을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 가지 사례를 소개했다.
 
1994년 초의 일이다. 임야, 목장, 농지 등을 자녀에게 증여한 한 고객의 증여세 불복상담이었다. 여러 가지 자료를 가지고 사무실을 방문한 납세자와의 상담이 이뤄졌으나 좀처럼 해결책이 잡히지 않았다. '소문난 안수남'을 찾아왔는데... 이상하게 이 고객의 상담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고, 시간이 흐를수록 심적부담까지 밀려옴을 느꼈다.
 
구정(설)을 지내기가 무섭게 다음날 납세자의 집으로 직접 찾아갔다. 세무사가 직접 집으로 찾아오자 반가운 나머지 이 고객은 자연스럽게 자신이 증여를 한 산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거기서 문제가 해결되었던 것.
 
자신도 모르게 고객과의 '워킹상담'이 이루어졌고, 고객의 임야까지 걷게 된 안 세무사는 그곳에 10년전부터 밤나무가 심어져 있었다는 사실을 목격했고, 그 길로 세금문제를 해결한 것.
 
그래서 그는 "후배들에게 세무상담은 앉아서 하지 말라고 합니다"라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기자의 채근에 못이겨 안 세무사는 '볼복노하우'를 하나 더 공개했다.
 
실제로 농사를 짓는 장애인인 자녀에게 농지를 증여 해 주었으나 농사를 지었다는 증거서류를 갖추지 못해 증여세를 부과 받은 사건이었다.

불복청구를 위임받은 안 세무사는 농지를 증여하게 된 경위와 사실상 자경을 하였으나 장애인이라서 자경한 사실을 입증할 수 없지만 실제로 농사를 짓는 것은 틀림없다는 내용으로 심판청구를 제기하자 조세심판원의 담당 사무관과 조사관(과장)이 현장을 직접 방문하여 자경한 사실을 확인하고, 납세자의 청구를 인정 해 준 것. 한마디로 조세심판원을 감동시킨 가슴 찡한 불복사건이었다고 회고했다.

안 세무사는 이와 관련 "진실은 통하더라구요"라고 했다.
 
지금도 불복청구업무를 많이 하시나요? 라고 물었다. "전체 수익금액의 20~30% 정도"라고 말했다. "광명지점은 전체 수입금액의 20~30% 정도 였으나 지금은 거의 본점에 상주하다보니 광명사무실의 불복청구는 많이 줄어들었다. 다솔 본점기준으로 금년도만 본다면 50%가 넘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인터뷰 말미 대뜸 '성공'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라고 물었다.
 
안 세무사는 그 질문을 준비라고 있었던 것처럼 서랍에서 서류 한장을 꺼냈다. 강의가 끝나면 항상 수강생들에게 들려주는 시(詩) 하나를 소개했다. 미국의 시인 랠프 에머슨의 '성공'이라는 시였다.
 
"성공이란 무엇인가?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현명한 이에게 존경을 받고 아이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 정직한 비평가의 찬사를 듣고 친구의 배반을 참아내는 것...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고 떠나는 것."
  

안수남 명품세무사 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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