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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상속설계 이야기-(24)]

상속설계는 삶의 설계며, 생전설계다

  • 보도 : 2018.08.21 11:58
  • 수정 : 2018.08.21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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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 (출처 알라딘)

"인생 목표도 이미 정해놨다. 88세까지 사는 것이다. 그때 딱 맞춰서 죽기가 쉽진 않겠지만 88세가 되는 날까지 살아있다면 생전 장례식을 미리 치를 생각이다"

"나를 도와준 사람들과 나를 이어갈 사람들에게 감사와 격려, 꿈과 용기를 전하고 작별 인사를 나눌 것이다. 장례식을 치르고 나면 죽을 때까지 숨어 지내며 나 혼자서 생을 정리할 것이다" (문영우, 여성속옷 전문 의류업체 엠코르셋 대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문영우 대표의 사생관(死生觀)이다. 삶에 대한 주체적 의지와 생에 대한 감사,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존중이 아름답다. 죽음에 대해 이토록 명료한 의지를 가질 수 있다라는 것은 그만큼 삶에 대해서 치열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는 말이 있다. 같은 제목의 서양 그림은 넘쳐난다.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이다. 왜 서양사람들은 이 경구를 그토록 되뇌었을까.
 
지금까지 인류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살다간 사람의 숫자를 계산한 학자들이 있다. 물론 고고학적 발굴에 따라 그 숫자는 변할 것이다. 진화의 단계도 그만큼 세분화될 것이고 그에 따라 영장류라는 인간의 범주도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어찌 됐건 학자들은 지금까지 지구상에 살다가 인간의 숫자를 대충 일천억 명 내외로 계산한다. 그렇다면 뻔한 질문을 던질 때다. 인류가 시작한 이래 그때부터 지금까지 영원을 살아온 사람이 있을까. 아니 영원 근처라도 살다간 사람이 있을까.

'삼천갑자(18,000년)' 동방삭은 그저 전설 속의 나이일 뿐이다. 그런데도 인간들은 깜빡깜빡 잊고 산다. 그렇다고 죽음의 무게에 가위눌려 살자는 건 아니다. 영원히 살 것처럼 일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죽음의 숙명을 잊어서는 아니 되는 법. 죽음에 대해 묵상할수록 삶은 아름다운 것이고, 삶에 대한 열정은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Elizabeth Kübler Ross)는 정신의학자이자 호스피스(hospice) 운동의 선구자이다. 다음은 그의 자서전 첫 문장.
 
"사람들은 나를 <죽음의 여의사>라 부른다. 30년 이상 죽음과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 연구해 왔기 때문에 나를 죽음의 전문가라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정말로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 같다. 내 연구의 가장 본질적인 핵심은 삶의 의미를 밝히는 일에 있었다"
 
그가 어릴 적 병원에 입원했다. 같은 병실에는 그 보다 두 살 더 많은 소녀가 있었다. 고아였고, 늘 졸고 있었다. 서로 말을 건네진 않았다. 눈빛만을 교환하는 친구였다. 어느 날, 깊은 잠에서 깨어나 보니 고아 소녀가 그를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괜찮아. 나를 기다리는 천사들이 있는걸" 얼마 뒤 고아 소녀는 세상을 떠났고, 그는 살아남았다. 그때 그 병실에서의 기억과 고아 소녀가 남기고 간 평화가 그녀를 '죽음의 여의사'로 이끌었다. 그것이 발전해 1969년에 출간된 세계적 명저가 《죽음과 죽어감》이다. 이미 이 분야의 고전이라 할만한 책이다.
 
"하늘 아래 쫓겨 나오지 않은 문장이란 없다"고 했다. 사마천이 《사기》에서 했던 말이다. 인생의 유한성이야말로 삶의 전제조건이자, 충분조건이다. 유한하기 때문에 더욱 치열해야 하고, 더욱 간절해야 한다. 또 더욱 압축적이어야 한다.

이 책에서 줄곧 강조하고 있지만, 상속설계는 죽음의 설계가 아니다. 생의 설계이자 삶의 설계다. 상속설계는 사후설계가 아니다. 생전설계다. 상속설계는 초월자의 설계가 아니다. 인간으로서 본성에 기반을 둔 이성의 설계다.

상속설계는 자녀의 삶에 대한 설계가 아니다. 나의 삶에 대한 설계다. 나아가 생사를 초월한 자아의 연속성에 대한 설계다. 그래서 상속설계는 마침표가 아니다. 최소한 쉼표이거나 어쩌면 접속사다.

상속설계는 결코 고립된 이례적 설계가 아니다.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연속된 설계의 부분이요, 과정일 뿐이다.

최재천 변호사

법무법인 헤리티지 대표 변호사 (현)
새정치민주연합 정책위원회 의장 (전)
17대, 19대 국회의원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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