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골짜기의 무수천 계곡
울창한 숲과 기암절벽 사이로 흐르는 맑고 차가운 물에 빠지다보면 어느새 복잡한 생각이 사라진다는 무수천 계곡은 광령천 줄기를 따라 흐른다.
제주시에서 차로 10분 정도만 가면 평화로에 진입하기 전 무수천을 가르는 다리를 만난다.
계곡의 바위틈을 걸어갈 수 있다는 것은 건천이기에 가능한 것이며 제주도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트레킹 방법이다.
◆…무수천 8경 안내표지판
무수천 8경은 계곡 바위가 만들어 낸 예술 작품으로, 다리를 경계로 위로 4곳, 아래 4곳이 숨어 있다.
무수천 표지판 윗길로 한참을 걸어가면 계곡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으나 풀이 잘 자라는 여름철에는 긴 옷을 꼭 챙겨 입고 운동화보다 등산화를 신어야 위험하지 않다.
◆…무수천 계곡 트래킹 길
계곡을 내려가는 길은 안타깝게도 관리가 잘 되지 않아 여기저기 버려진 쓰레기가 이맛살을 찌푸리게 한다.
아름다운 것을 볼 수 있는 눈은 아름다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걸 모르는 것일까?
그래서인지 요즘 무수천 계곡의 아름다움은 혼자 즐기기에 두려운 곳이기도 하다.
아름다움보다 안전이 우선되어야 마음이 편할 것 같다.
◆…계곡 아래로 내려가는 좁은 계단길
비가 많이 온 다음날에는 한라산 골짜기를 타고 어리목 아래로 흐르는 물이 무심천의 바위와 만나 폭포를 만들고 또 다른 비경을 선물한다.
'광령'은 산이 아름답고 물이 맑은 곳이며, 사람들이 선량하다고 해 붙여진 마을 이름이다.
무수천다리 아랫길을 따라 걷다보면 제주도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유적인 150여기의 고인돌 중 24기의 광령지석묘가 있다.
◆…멀리 밭 한가운데 위치한 광령 지석묘
사라마을 안쪽에 주로 분포하고 있으며 대부분 농사짓는 밭 한가운데 있어 지나치기 쉽지만 그 크기가 대단해 지배계층의 무덤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고인돌은 제주도에서 돌배라고도 불리며 청동기시대 이전부터 제주도에 사람이 살았다는 증거여서 역사적 의미가 큰 보물이다.
◆…제주도식으로 만들어 졌다는 광령지석묘 2호 표지판
이는 묘의 형태가 일본 큐슈지방으로 전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제주도와 도민들의 관리와 보존 상태는 여전히 이곳을 찾는 이들을 안타깝게 만들고 있다.
근원을 찾아 간다는 것은 곧 나를 알아보는 길인 것 같다.
여행을 하는 이유가 바로 나를 찾기 위한 것이라면 역사의 한 가운데 있는 우리는 과거의 흔적에서 지금의 나를 만나는 것이다.
◆…받침돌이 있는 지배계층의 지석묘
이곳에서 수천 년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었을 지 과거를 물어본다면 고인돌은 여기 누군가 살다 갔다고 말해 줄 것이다.
무수천 계곡을 올라와 무수천 사거리에서 광령리 안길로 향해보자.
돌담으로 이어지는 작은 마을길이 볼수록 정겹다. 낮은 돌담은 앞집 뒷집의 부엌에서 밥을 하는 모습까지 훤히 볼 수 있어 옛 제주도의 인심을 알게 해준다.
◆…제주 동정귤 안내표지판
광령에서 꼭 놓치지 말아야 할 곳이 있다.
광령리 1165번지 작은 농가주택에 300년 역사를 나홀로 간직한 나무가 있다.
제주어로 돈진귤이라 불리며 임금님께만 진상하던 동정귤이라는 제주기념물 제26호인 제주 토종 귤나무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제주도에 귤은 이렇게 조선시대부터 귀한 대접을 받아왔다.
불과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대학나무라고 불렸을 정도로 귤의 몸값이 대단했으며 귤 농사를 짓는 농가는 자식들을 대학에 보내고 육지로 나가 살 수 있게 만든 원천이 되었다.
◆…4.3에 가지가 불에 탄 모습을 하고 있는 동정귤 나무
제주에서 동정귤이 다 멸종되고 사라졌으나 유일하게 남아 지금도 귤이 열리는 이 나무는 한쪽 가지가 불에 타 잘려 나간 모습으로 아픈 4.3의 기억을 대신하고 있다.
◆…귤나무 흔적만큼 아픈 역사를 갖고 있는 동정귤나무가 있는 돌집
봄이면 광령1리의 옛길은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4.3으로 희생된 꽃다운 영혼이 저리 아름답게 피어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시 잠겨 본다.
벚꽃이 한창일 때 이 길을 걷게 되면 누구나 소녀시절로 돌아가게 만드는 곳이기도 하다.
이 길을 따라 항파두리 항몽유적지까지는 작은 학교와 마을회관 그리고 동네 구멍가게가 여행자들의 발걸음을 낯설지 않게 한다.
◆…항몽 유적지에서 발견된 돌 유적들
대몽항쟁을 펼쳤던 삼별초의 마지막 접전지인 제주도는 나라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알게 하고 애국심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곳이다.
삼별초군이 고성에 세운 항파두리성은 철옹성이라는 뜻이다.
항파두리성 항몽유적지는 2015년 7월부터 입장료를 받지 않았다.
◆…항파두리 항몽 유적지
이곳에는 삼별초의 군사들이 사용했던 유적뿐 만아니라 역사적으로 살아있는 장소이기에 아이들과 꼭 한번쯤은 가봐야 할 곳이다.
◆…항몽유적지 안내표지판
지금도 유적지 발굴이 진행되고 있으며 옛 모습을 조금씩 찾아가고 있다.
◆…삼별초의 깃발
◆…발굴 중인 옛 항파두리의 모습
유적지 뒤편의 옛 토성을 한 바퀴 돌아보는 길에 많은 생각이 오고간다.
멀리 두고 온 가족, 그리운 사람들과의 영원한 이별 앞에 절절했던 마지막 순간까지 오로지 나라를 위해 저항했던 삼별초의 정신이 뭉클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국가는 국민을 지킬 수 없어도 국민은 국가를 지켜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토성
항몽유적지 주변은 아름다운 꽃들이 가득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6월말부터 7월까지는 수국이 가득 피어있고 8월과 9월은 코스모스가 반겨준다.
◆…항몽 유적지 주변의 코스모스 밭
동네 조그만 식당에 들러 국수 한 그릇에 인심을 얹어 먹고 나면 더위에도 마음이 따뜻해짐이 좋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여행이라기보다 그냥 동네 한 바퀴 잠시 다녀간 느낌을 갖게 해주는 광령리.
오래된 팽나무 그늘도 쉽게 내어 주는 마을 인심이 그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