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피카소', '천재화가', '걸레스님'으로 더 많이 알려진 중광스님이 태어난 곳이 제주시 서쪽에 위치한 도평동이다.
중광스님의 작품세계에 늘 등장하는 제주도의 풍광 중 어릴 적 뛰어 놀던 도평동 일대는 바다와 강이 만나고 은어가 달빛에 춤을 추는 곳이다. 중광스님의 텅 빈 웃음소리가 들릴 것 같은 도평동 마을은 평화로를 가기 전 이호해수욕장 방면으로 가다 도평 삼거리에서 왼쪽 길로 20분 정도 걷다보면 마을 표지판이 나온다.
◆…멀리 한라산과 도평마을
마을은 도근천이라는 내천이 흘러 바다와 만난다. 귤 농사를 주로 하던 조용하고 한적한 마을이라 비가 오면 냇물 흐르는 소리가 요란했을 듯하다.
중광 스님은 어릴 적 너무 가난해 중학교를 졸업하지 못하고 제주도를 떠나 일찍 해병대로 들어가 26살에 입적을 했다고 한다.
그의 작품에는 제주도 흔적이 많이 남아 있으나 제주도는 그를 아직 기억해 내려 하지 않는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이 도평동이 중광으로 인해 웃게 될 일들이 많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라산 아래로 흐르는 도근천
도근천을 따라 바다로 내려가는 길을 걷다 다시 뒤를 돌아보면 한라산이 뒤따라오고 있다.
도근천은 바다와 닫기 전 월대천이라는 곳에 머문다. 월대천은 예로부터 달 밝은 밤이면 월대에 앉아 시를 짓고 멀리 한양 땅에 두고 온 가족을 그리워하며 술을 따르던 관리들의 놀이터였다.
월대는 지금 옛터에 단을 쌓아 더위를 식히며 낮잠을 자는 사람들의 쉼터로 쓰이고 있다. 하지만 월대천에는 아직 은어떼가 달빛에 반짝이는 은빛 보석처럼 아름답게 물길을 가른다.
◆…소나무 숲이 아름다운 월대천
또, 여름이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월대천에서 물놀이를 즐긴다. 아침10시부터 저녁 7시까지 안전요원도 이곳을 지키고 있다.
월대천 주변에는 오래된 해송들이 장관을 이룬다. 조선시대 백호 임제(林悌)가 이곳을 찾아 '그곳은 시내가 흐르다 못을 이루었는데 한라산이 바로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이에 술을 주고받으며 실컷 취하고는, 서로가 돌아가며 소리 높여 노래를 불렀다' 라는 글을 남겼다.
자연을 보고 취하지 않으면 술을 마신들 무슨 맛이 있었을까? 월대천 풍광에 취해버린다면 절로 노래도 나올 법하다.
◆…월대
하지만 제주도민들에게는 가슴 아픈 곳이기도 하다. 고려 말 부패할 대로 부패했던 시절, 홀로 떨어진 제주도의 백성들은 먹고사는 일조차 힘들었다.
고려말 이제현에 의해 기록된 소악부에는 제주도민들이 불렀던 도근천을 소재로 한 노래인 도근천요(都近川謠)가 전해진다.
都近川謠(도근천요)
都近川頹制水坊 水精寺裏亦滄浪
도근천퇴제수방 수정사리역창랑
上房此夜藏仙子 社主還爲黃瑁郞
상방차야장선자 사주환위황모랑
◆…옛 흔적만 남아 있는 월대
이제현은 시의 내용을 이렇게 소개했다.
"최근에 높은 벼슬을 하는 관리가 연회 자리에서 늙은 기생 하나를 희롱하면서 말하기를 '너희들은 승려들과는 어울리면서 사대부가 부르면 오는 것이 어찌 그리 늦느냐?'고 하였다. 기녀가 대답하기를 '요즘 사대부들은 돈 많은 상인들의 딸을 취하여 두 집 살림을 차리거나 노비를 취하여 첩을 삼는데, 우리가 중과 속인을 구별하여 대한다면 어찌 입에 풀칠인들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모두 부끄러워했다."
사대부들에게 감히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제주여성이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이 시에 나온 것처럼 월대천 주변에 수정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지금은 그 터에 교회가 들어섰다고 하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옛 명성에 비해 작은 도근포
또, 고려때는 제주도에 주둔해 있던 삼별초가 이 도근천 끝에 위치한 도근포라는 곳에서 남해안에서 갈취한 식량을 공급받던 곳이기도 하다.
도근포는 조공을 바치던 곳으로 조공포라 불리던 것을 제주도민들이 도근포라 바꾸어 불렀다는 설과 제주목과 가까운 포구라 하여 도근포라 불렸다는 설이 있다.
제주도의 많은 마을 이름이나 지명 등은 일제강점기 때 한자표기를 하면서 전혀 다른 이름으로 바꾸어진 곳이 많다. 이제 우리 옛 말들을 찾아 다시 아름다운 제 이름으로 불러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알작지 해변
월대천위로 놓인 다리를 건너 왼쪽 마을로 들어가면 알작지라는 해변을 끼고 있는 해안가에 언제부터인가 시간이 멈추어버린 듯 옛 모습을 간직한 마을을 볼 수 있다. 알작지란 제주어로 둥근 자갈, 즉 몽돌이라는 말이다.
◆…알작지 해변 마을
제주에서 잘 볼 수 없는 동글동글한 자갈들이 해변에 가득하고 집 담들도 제주의 다른 돌담과 달리 둥근 돌로 쌓여 있어 신기하게 보이는 곳이다.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이호 하늘
해안을 끼고 걸어서 이호 해수욕장까지 걷는 길은 고작해야 10분 정도 걸린다.
가끔 하늘에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것을 아주 가까이 볼 수 있어 쏠쏠한 재미가 느껴지는 길이다.
◆…밤바다가 아름다운 이호테우 해변
밤바다가 아름다운 이호 해변은 제주시에서 차로 10분 정도 걸리는 곳이라 한여름이면 퇴근 후 더위를 식히러 많은 제주시민들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밤이면 먹거리도 풍부하고 검은 밤바다가 주변의 상가 불빛에 비치어 붉은 노을이 계속 남아있는 것처럼 느껴져 제주에서는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멀리 해외여행을 온 기분마저 들게 한다.
이호는 테우라는 나무배로 고기를 잡고 생활했던 곳이라 이호테우해변이라고도 부른다. 여름마다 테우를 만들어 바다에 띄우고 물놀이와 원담에서 고기를 잡는 축제가 펼쳐지기도 한다.
◆…이호의 아름다운 해변
해수욕장 밖으로는 소나무 숲에서 텐트를 치고 야영도 할 수 있어 추위가 사라지는 5월부터 10월까지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
여행자들의 눈으로 보고 느끼는 기쁨이 일 년을 간다면 여행지의 사람들과 친구가 된다면 아마 10년은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찾아와 만나고 싶은 친구가 생긴다는 것이야 말로 여행이 주는 선물이다. 작은 커피숍이나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과의 인연은 오랫동안 친구가 되기 쉽다.
10년 뒤에도 찾아 올 친구를 기다리면서 늘 그 자리에서 지키고 있다면 말이다.
어쩌면 홀로 온 여행자들이 비싼 커피 값을 내고 멋진 찻집을 찾기보다 한적하지만 분위기 좋은 작은 찻집을 찾아다니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통해 인생이 바뀌고 새로운 길을 만들기도 한다고 말한다. 여행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영향이 아닐까 싶다. 제주도를 여행한다면 행복해지는 친구를 만나길 바란다. 제주도가 늘 행복한 섬이 되게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