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는 산딸나무 꽃이 지기 시작하면 장마가 시작된다고 한다. 올해도 한라산 기슭의 산딸나무가 눈꽃처럼 하얗게 피고 다시 지기 시작하더니 장마가 시작되었다. 매미가 울어야 이 장마가 끝난다고 하니 매미를 기다려야 할지 아니면 장마 속에 제주여행을 해야 할지 고민이라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
제주의 장마는 석 달 열흘 비가 내리는 것이 아니라 장대비가 내리다가도 오후에 햇살이 비추는 날도 많고 하루 종일 이슬비가 내리다가 또 어느 날은 언제 장마였지 싶게 하루 종일 맑은 날도 있다.
◆…제주도립 미술관
제주는 장마 비가 오는 날에도 비를 즐길 수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특히 제주도립미술관은 건축물을 마치 물 위에 띄워 놓은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한다. 제주공항에서 1100도로를 진입하는 초입에 2009년 지어진 도립미술관은 제주도에 새로운 문화예술 시장을 열어준 계기가 된 곳이기도 하다.
◆…야외 조형물
미술관에 들어서면 넓은 주차장과 잔디밭에 전시된 야외 조형물이 먼저 시선을 끈다.
비가 오는 날 관광객이 많이 찾는 이유 중의 하나가 비를 맞고 서있는 사람과 물고기 설치미술 작품 때문이다.
비가 오면 빗속에 물고기가 헤엄쳐 금방 하늘로 날아오를 듯하다. 비가 와서 잃어버린 무언가는 영원히 이곳에 두고 가야 하는 것인지, 비는 마음 속에 조용히 내리고 더 이상 아무것도 담을 수 없게 만드는 사람 같은 느낌이랄까?
각자 보는 시선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 현대미술의 묘미랄까 마음껏 느끼고 사진에 담아 또 다른 작품을 만들어 보아도 좋을 것이다.
◆…야외 조형물과 미술관
야외 작품을 감상 후 건축물을 향해 걸어가면 물위에 떠있는 듯 느껴지는 건축물 감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미술관 작품 관람료는 1,000원이다. 작품을 보고 나오면 괜히 미안한 생각마저 들게 한다. 또 미술관에서 창밖으로 내리는 비를 보며 잠시 느끼는 여유와 차 한 잔은 세상 어느 누구도 부럽지 않게 할 것이다.
◆…물위에 비치는 도립미술관 건축물의 아름다움
비가 그치는 날에는 1100도로를 따라 걸어보자.
미술관에서 한라산 방면 바로 옆에는 어른들을 위한 놀이 공간 같은 러브랜드가 있고 조금 더 가면 신비의 도로라 불리기도 하고 도깨비도로라고도 부르는 곳이 있다.
드라이버들은 기어를 중립에 두고 브레이크에서 발을 뗀 후 오르막을 오르는 차를 보며 신기해 환호성을 지른다. 밖의 사람들은 그 광경을 지켜보거나 길에 물병을 굴려 오르막길로 구르는 광경을 보고 박수를 치기도 한다.
물론 착시 현상이라 하지만 보이는 것은 분명 언덕길이다. 한라산으로 인해 일어나는 이런 현상을 골프장 그린에서도 많이 느낄 수 있다.
◆…신비의 도로를 구경하는 관광객들.
신비의 도로를 지나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해안동 축산마을 길이 나온다. 해안동이 바다와 접해 있지 않고 중산간에 있다는 것이 신기하지만 예로부터 이곳 땅이 바다처럼 넓고 평평해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해 해안 마을이라고 불렀고 지금의 해안동이라 불리고 있는 것이다.
해발 200미터에 위치한 이곳 마을은 지금도 가축을 기르고 농사를 짓고 사는 정통 농촌 마을이다. 방풍림으로 심어놓은 나무들이 하늘높이 맞닿아 있는 시골 길을 걸어보면 절로 발에 흥이 붙고 콧노래가 나오게 한다.
◆…해안동 축산마을 표지석
이곳 해안마을에는 가축을 키우기 위해 만드는 하잣성이 아직 남아있다. 잣성은 돌담을 쌓아 가축들로부터 농산물을 보호하려고 만들기 시작해 한라산 자락에 하잣성, 중잣성, 상잣성으로 한라산 높이에 따라 정해져 있다. 제주도는 사람이 섬에 갇혀 살아서인지 소와 말들을 자연에서 그대로 풀어 놓고 키웠던 것 같다. 한가히 풀을 뜯고 있는 말들과 저 멀리 구름을 안고 있는 한라산은 한 폭의 그림이다.
◆…넓은 산자락에서 풀을 뜯는 말들과 자연의 아름다운 풍광
이 길로 곧장 천왕사가 있는 곳까지 자동차길 옆으로 걸어가도 좋다. 일방통행로가 많아 그다지 위험하지 않고 자전거로 트래킹을 하는 사람들도 있어 이국적인 느낌이 든다.
어승생악이 있는 수많은 골짜기를 아흔 아홉 골이라 부르는데 걷거나 버스로 이동해도 발아래와 산위에 많은 골짜기들이 보인다. 이곳에 모인 물이 바로 제주도에 사는 사람들이 먹는 수원지다.
이곳까지 걸어와 허기진 배를 채워줄 푸드트럭이 기다리고 있다.
사시사철 맛있는 열무국수를 맛볼 수 있고 김밥과 여러 가지 간식거리로 잠시 쉬어가게 해준다. 십 수 년 이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맛도 변하지 않은 모양이다.
◆…천왕사 입구 삼나무 가로수길
천왕사로 들어가는 길은 절로 가는 길이 아니라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쭉쭉 뻗은 삼나무 가로수 길은 혼자 걷다가도 가슴이 설레는 너무도 아름다운 길이다.
주차장이 있는 곳은 충혼묘과 석굴암 그리고 천왕사로 오르는 길을 선택하게 한다.
◆…베트남 참전 기념비
먼저 베트남 참전기념비와 충혼묘에 들렸다가 천왕사로 오르고 다시 이곳에서 석굴암에 오르는 길을 택해보자.
◆…석굴암 산책로 알림판
천왕사는 한라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어 소원기도가 잘 이루어진다고 알려져 있다. 또 대웅전 앞 산기슭에 있는 남근바위에 소원을 빌면 남자아이를 갖게 해준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종교를 떠나 이 깊은 산속에 자리한 대웅전은 늠름한 장군 같은 모습이다. 이기 낀 돌계단은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애환이 세월과 함께 다져져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이끼 낀 대웅전 돌계단
천왕사 역시 토속종교와 불교가 함께 공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삼성각이 이 절의 옛터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비가 온 뒤 절 아래로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는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과 어우러져 잠시 쉬어가라 청한다.
가을이면 대웅전 뒤 기암절벽과 단풍이 어우러져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하다.
지어진 지 얼마 되지 않지만 관음사와 이곳 천왕사는 한라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으며 제주도 대표적인 사찰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천왕사 대웅전의 모습
절을 뒤로 하고 다시 석굴암으로 오르는 길은 왕복 2시간의 여유를 두고 걸으면 좋다.
골짜기의 바위에 암자를 만든 곳인데 옛날 월암스님이 천일기도를 드리기 위해 한라산 이곳저곳을 다녔으나 찾지 못해 내려가던 중 산새 한 마리가 이곳으로 안내해 기도를 올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지금도 수험생들이나 큰일을 앞둔 불교인들은 이곳 암자를 찾아 기도를 드리고 있다.
하지만 불자가 아니어도 계곡 따라 오르는 산책길이 많은 생각을 버리게 하고 힐링이 되게 만드는 것 같다.
◆…천왕사 남근석
천왕사와 석굴암은 계절이 바뀌면 꼭 다시 한 번 찾고 싶은 곳이다. 단풍이 아름다운 길이기도 하지만 마음속에 작은 소원을 빌었다면 꼭 이루어져 이곳을 다시 찾길 바라는 마음이다.
다시 걸어 나오는 길, 삼나무의 푸르름은 사진 속에 꼭 담아두어도 아깝지 않다.
이경화 칼럼니스트(제주시대 발행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