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해안가를 걷다보면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다.
신이 조각한 자연의 돌들과 금방 붓이 지나가 채 마르기 전의 파란 바다는 그야말로 예술이다. 그래서일까? 해안가에 있는 작은 마을에는 작가와 시인 같은 예술가들이 많이 살고 있을 것 같다. 금방이라도 아름다운 이야기가 파도에 밀려올 것 같기 때문이다.
제주시에서 버스를 타고 동쪽의 함덕 방면으로 가다보면 원당봉이 보이고 오른쪽의 넓은 평야가 펼쳐져있는 데 이곳은 진드르라 불려온 곳이다. 드르, 혹은 뜨르는 넓은 들판을 말하는 제주어다.
과거 일제 강점기때 만들어진 4곳의 비행장 중 교래리 비행장을 제외하고 알뜨르, 정뜨르, 이곳 진드르는 평야에 만들어진 비행장이었다.
이곳 진드르비행장의 활주로가 지금 버스가 다니는 길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비행장이 있었던 곳이 신촌리 일대였으나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남새르못
신촌리 입구에 내리면 조천중학교가 있다.
학교 왼편 담벼락을 따라 밭길을 한참 걷다보면 잘 단장된 '남생이 못'이라는 연못이 나온다.
이곳은 아들을 낳게 해달라고 빌면 아들을 얻게 된다는 설화가 있다. 그래서 이름도 남자가 태어난다는 뜻으로 남생이라 불려진 곳이다.
◆…남새르못
남생이 못 오른쪽으로 돌아 바닷길로 길게 늘어선 나지막한 돌담이 여행자 홀로 걷는 길에 오랜 친구가 되어 반기며 마을로 앞장서 듯 늘어서 있다.
조금 걷다보면 바다가 눈앞에 조금씩 고개를 든다. 마을길로 들어서기 전 왼쪽에 아래에 있는 닭모르 해안을 먼저 보고가자. 닭이 머리를 들고 있는 듯 생긴 바위와 함께 기암괴석들이 파도와 멋진 연출을 하고 있다.
바위에 앉아 바다낚시를 즐기는 사람들과 그 모습을 보며 걷는 여행자들 모두 시간과 세월을 붙들고 있지는 않은 듯하다.
◆…닭모르해안길 가는 곳
멀리 해안가 언덕 위로 정자가 눈에 들어오고 언덕의 산책로가 한눈에 보인다. 올라오라는 유혹이다.
독일 로렐라이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라인 강보다 훨씬 아름다운 바다는 정자에 앉아 노래 한 소절을 부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이곳 바다는 영등할망이 지켜주는 곳이라 절대 어부가 바위에 부딪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닭모르해안위 언덕
'올래길 18코스'와 '아름다운 해안 길'로 선정되어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지나고 있다. 뒤에 오는 사람들을 위해 먼저 지나간 그들의 흔적은 남기지 말고 자연 그대로 남겨 주고 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버려진 쓰레기를 주워 나오지는 못 할망정 버리고 가는 것은 영등할망이 화를 내 다시는 제주도를 못 들어오게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돌담에 작은 꽃밭
언덕을 내려가 마을로 접어들면 해녀들의 쉼터가 있고 돌담으로 쌓아진 골목길이 시작된다.
신촌리는 언제 걸어보아도 정겹고 아름답다. 골목골목 집으로 들어가는 작은 돌담길은 동화 같은 이야기가 숨겨 있다가 하나씩 톡 톡 튀어 나올 것 같다. 어느새 마을을 한 바퀴 돌다보면 유년의 시절로 되돌아 걷는 착각에 빠져들기 쉽다.
◆…해녀복이 마당에 널린 모습
억새지붕이 바람에 날아 갈까봐 꽁꽁 묶어 둔 집과 돌담보다 지붕이 낮게 앉아 있는 집밖 돌담 옆에 예쁘게 피어 난 꽃들은 가난보다 풍요한 마음을 보는 듯하다. 아직 지붕을 개량하지 않고 살고 있음은 옛것에 대한 그리운 사연이 있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억새로 묶인 제주 초가집
한국전쟁 때 북으로 간 자식이 혹시 살아 돌아올까 싶어 집을 하나도 고치지 않고 옛 모습으로 그대로 두고 사는 어른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지붕에 이끼가 끼고 들꽃이 피어도 당신이 죽을 때까지 하나도 손대지 말라고 하는 부모의 마음은 그 어떤 것으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유독 신촌리 마을에는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집들이 많다.
관광객들에게는 옛 모습을 볼 수 있어 더 아름답게 보이겠으나 조금만 이해한다면 마을길을 걸을 때 이렇게 아름다운 길을 걷게 해준 동네 어른들에게 만나면 먼저 고마운 마음을 담아 인사하도록 하자.
◆…마을 안 용천수
용천수는 마실 물을 길거나 빨래를 하던 곳이거나 여름이면 해안가 마을에 마을 사람들의 놀이터가 된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더위를 식히며 목욕을 하던 곳은 대문도 없고 지붕도 없는 노천탕이다.
지금도 더운 여름밤이면 마을 사람들은 이곳 용천수를 찾는다.
◆…마을에 들어선 갤러리 카페
신촌리의 포구는 작지만 아름답다.
특히 두 방파제를 이은 아치형 다리는 아주 이색적이다. 예전에는 배를 타고 고기를 잡아와 이곳 포구 안에 넣어두고 다시 고기를 잡으러 다녔다고 한다.
◆…두 포구를 연결하는 아치형 다리
이제는 멀리 붉은 등대가 있는 방파제에는 사시사철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찾아오고 포구는 여행자들의 아름다운 쉼터가 되어 주고 있다.
마을 안은 크고 작은 게스트하우스가 생겨나고 작은 카페와 갤러리도 생겼다. 어느새 이 곳 신촌리를 찾는 여행자들이 많아진 까닭이다.
◆…포구를 둘러싼 마을 모습
처음 만난 여행자들이 함께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기에 이 작은 신촌리는 안성맞춤이다. 마을이 낯설지 않기에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도 쉽게 맥주 한 잔에 여행이야기를 서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신촌리를 빠져나와 큰길로 들어서 조천리로 향해 걷는 길은 노래방 영상에서 자주 본 그 풍광이 나온다.
바다 위에 나지막한 파란색 지붕의 집은 외로움이 뚝뚝 떨어지게 한다. 조천1길로 들어서 그 파란색 집으로 향해 걸어가면 그 집 말고도 바다 끝으로 집들이 늘어서 있다.
신촌리는 바위에 집을 지은 것 같고 조천리는 바다에 집을 지은 것 같다.
창을 열면 바다가 앞마당인 집들은 멀리 고기잡이 떠난 남편을 빨리 보려고 이렇게 집을 지었는지, 아니면 아이를 집에 두고 바다에 물질하는 해녀가 숨을 쉬러 올라와 집안에 아이를 지켜보려 이렇게 지었는지, 아니면 바다 조망을 위해 집을 그렇게 지었는지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다.
◆…바다가 가까운 마을
옛날 제주도는 사람들이 많이 살지 않았고 또 왜구들이 쳐들어오면 직접 맞서 싸워야 했기에 바다가 잘 보이는 곳에 집을 짓고 마을 사람들끼리 방어 태세를 갖추고 산 것이다.
이 또한 아픈 제주의 과거사지만 지금은 경관지구로 지정되어 웬만한 해안가에는 집을 지을 수 없다.
◆…마을 가까이 있는 원담
조천리 마을 안으로 들어서면 해안에 원담이 보인다. 밀물과 썰물을 이용해 멸치나 작은 생선을 잡는 곳이다. 제주도는 지금도 이 원담을 이용해 고기를 잡는 곳이 많다.
마을은 여기저기 새로 집을 짓고 멋진 건물들이 하나둘 들어서고 옛 모습은 점점 사라져 간다.
옛 모습이 아름답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점점 사라져 가는 까닭이다. 그물을 꿰매고 바다에 나갈 차비를 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허리가 구부정한 어르신들이다.
부모는 힘들어도 자식은 멀리 공부시켜 뭍으로 내보내고 싶은 마음을 모를 바 아니지만 아직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이 더 앞서고 있는 까닭에 보물은 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마음이 아프다.
이국적인 환경에 가장 토속적인 삶을 사는 제주도다.
마을의 구불구불한 돌담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정도 흐르고 세월도 흐른다. 여행자는 이렇게 세월을 걷고 여기저기 묻어나는 정을 주어 담아 가도 좋다.
언제나 아픔을 바다로 보낼 줄 아는 제주도 사람들처럼 도시에 찌들었던 회색의 무게는 바다로 던져도 좋다.
그래야 아름다운 것을 환하게 받아을 수 있는 빈자리가 생길 테니까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