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구정 "백운찬 전 관세청장에게 차량 제공했다" 실토

정구정 한국세무사회장(사진)이 제29대 한국세무사회장 선거 회장 후보로 출마한 백운찬 전 관세청장(기호 4번, 이하 백 후보)에게 고액의 고문료와 고급 차량을 제공했다는 사실을 모두 시인했다.

조세일보(www.joseilbo.com)가 관련 기사를 보도한 지(16일) 꼬박 열 하루만이다.

그동안 정 회장과 백 후보는 조세일보 보도에 대해 두루뭉술한 해명과 침묵으로 일관해 왔다.

백 후보가 지난 25일 진행된 부산지방세무사회 투표에 앞서 소견문을 통해 세무사회로부터 고문료를 받은 것이 사실이라고 시인한데 이어  정 회장이 사실을 인정, 조세일보가 굳이 증거자료를 공개하지 않더라도 기정사실화됐다. 

"차량 제공이 뭐가 문제인가"…'문제의식' 없는 해명

26일 정 회장은 대전지방세무사회 정기총회에 참석, 인사말을 통해 "우리는 인맥을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고문을 위촉하고 고문료를 지급한다"며 "최근 언론들이 세무사회 고문료가 문제가 있는 양 보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백운찬)고문에게 차량을 준 것은 사실"이라며 "이것이 뭐가 문제가 되는가. 이익단체이기 때문에 회원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정 회장은 또 고문료의 부적절한 지급 문제와 관련한 보도가 나온 이후 세무사회가 고문으로 위촉한 이들이 고문료를 반납하고 있다며 "우리 이익단체는 회원들의 어려움을 지키기 위해 한다. 고문료를 주는 것은 총회에서 승인을 받은 예산으로 정당하게 지급한 것"이라고 언급했다.

정 회장의 이날 발언은 다시 한번 그의 '도덕불감증'과 어설픈 '물타기'로 사안을 모면하려는 그의 성품을 증명해준 대목이라는 지적이다.

조세일보 취재결과 세무사회와 같은 '이익단체'인 회계사회, 변호사협회, 관세사회 등은 관리감독기관 출신 고문을 영입하지 않고 있으며, 당연히 그들에 대한 금전적 특혜를 주고 있지 않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정 회장은 마치 다른 이익단체들도 관리감독기관 출신 고문을 영입해 고문료와 고급차량을 지원하는 양 호도했다. 실제로 그는 이날 인사말을 통해 "다른 이익단체 고문은 에쿠스, 리무진 받는다"고 언급했다.

정 회장이 백 후보에게 제공한 차량은 제네시스 3.8 프레스티지 차량이다.

특히 총회에서 승인된 세무사회 고문료 총 예산은 연간 1억5000만원이다.

총액에 대해서만 승인을 했을 뿐 정 회장이 제 입맛에 맞는 고문에게만 타고문들에 비해 높은 액수의 고문료를 정기적으로 제공하고 타고문들에게는 제공하지 않는 고급 차량을 백 후보에만 특별히 제공하도록 하는 권한을 승인해준 것이 아니다.

이는 명백한 권한남용이며, 공금유용(횡령) 혐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백운찬 고문 영입 및 금품지원 '악재' 되나

애초 백 후보가 관세청장에서 물러나자 마자 그를 고문으로 영입한 것부터 부적절한 선택이었다.
정 회장이 자신은 물론 현 세무사회 집행부를 총동원, 그를 세무사회장으로 만들기 위해 온갖 물의를 일으키면서 백 후보를 고문으로 영입한 의도에 대한 의구심을 잔뜩 키워놓았다.

일반인의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 온갖 교묘한 방식으로 유력 상대후보를 깎아내리고 백 후보를 지원했다는 사실은 세무사회보 등 곳곳에 나타나 있다.

정 회장 스스로 세무사회원들에게 팩스 공문을 보내 백 후보의 '대변인' 역할을 자처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정 회장이 백 후보를 고문으로 위촉한 이유가 그를 자신의 뒤를 이은 세무사회장으로 만들기 위한 사전 포석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문제점은 또 있다. 

정 회장이 관리감독기관 출신인 백 후보가 공직에서 물러나자 마자 득달같이 그를 고문으로 위촉해 고문료와 차량을 지원하고 급기야 세무사회장 선거판으로까지 끌어들임으로써 관리감독기관과 세무사회 사이에 사전 야합이 있었다는 듯한 뉘앙스를 남겨놓은 것이다.

그동안 세무사회과 관리감독기관인 기획재정부에 건의해 추진한 세무사법 개정 등 제도개선의 정당성에 큰 흠집을 낸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감시의 눈'이 많아지면 많아질 수록 운신의 폭을 좁히는 공직사회의 습성을 감안할 때 정 회장과 기재부 세제실장 출신 백 후보 사이의 부적절한 금품거래는 향후 세무사회가 추진하는 각종 세무사법 개정 등 제도개선 추진에 장애요인으로 작용할 공산도 크다.

'청렴' 소신 백운찬, 도덕성 깊은 상처

일각에서는 현행 공직자윤리법상 일정기간 취업금지대상에 정부부처가 관리감독하고 있는 산하 이익단체 임직원(선출직 포함) 자리도 포함시켜야 한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백 후보 개인의 측면에서도 그가 정 회장으로부터 금품특혜를 받았다는 사실은 매우 중차대한 사안이다. 그가 퇴직한 후 금품지원을 받은 시점은 세월호 침몰 사건으로 촉발된 '관피아 척결' 논란이 한창이던 지난해 7~8월경부터인 것으로 알려졌다.

'청렴'을 소신으로 삼고 공직생활을 해왔던 그가 퇴직하자마자 이익단체로부터 금품특혜를 받았다는 사실은 그의 도덕성에 큰 타격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