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세수확대를 위해 무리한 징세에 나서다보니 세정당국의 징세 기준이 그때 그때 달라지고 있어 혼란을 주고 있다. 게다가 업계의 어려운 실정을 감안해 상당기간 협의를 거쳐 시행해오던 관행이 잘못됐다며 세금을 추징하겠다고 나서 당혹하게 만들고 있다.
국가가 법을 집행하면서 사회적으로 합의된 기준 없이 정책 목적에 따라 기준을 일방적으로 달리 적용한다는 지적이다. 일부 사례에서는 납세자 뿐만 아니라 세무전문가들도 납득하기 힘든 상식에 어긋난 과세기준을 적용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건설사에 떨어진 부가세 추가징수 폭탄
지난해 하반기 몇 몇 건설회사들은 난데없는 부가세 추가징수 통보를 받았다.
건설사가 공사를 해주고 분양이 안 돼 공사비 대신 대물로 받은 아파트가 팔리지 않아 임대를 놓자 매입세액을 공제해 줄 수 없으니 그동안 환급받았던 부가세액을 모두 한꺼번에 토해 내라는 것이다.
국세청은 매입세액 공제의 경우 판매를 목적으로 매입한 물건에만 적용하는 것인데 임대를 놨으니 회사가 ‘자가사용’한 것이어서 공제 대상에 포함되지 않아 과세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건설사들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건설사가 대물주택을 임대하는 이유는 가격 할인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해도 도저히 팔리지 않아 일시적으로 임대라도 놓을 수밖에 없다는 걸 과세당국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건설사 세무담당자는 “매입세액 공제신청을 할 때 담당 공무원과 미분양을 걱정하며 일단 임대라도 놔야 되는 것 아니냐고 협의했다”며 “팔 수만 있으면 당장이라도 팔아야 회사도 이익이라는 걸 과세당국도 잘 알고 있으면서 자가사용이라고 몰아붙이고 있다”고 허탈해 했다.
자신없는 과세근거... 조세저항 피해 은밀히 시행
이번 매입세액 공제 환수 조치는 작년 하반기부터 진행됐다. 하지만 업계에서 이슈가 된 것은 올해 들어서 부터이다.
과세당국이 과세기준이나 징수방침을 공개적으로 발표하지 않고 개별 회사에 따로따로 부과 사실을 통보했기 때문이다. 세무조사를 받고 있는 회사의 경우에는 별도 통보없이 세무조사 과정에서 얘기를 꺼낸 것으로 전한다.
국세청은 부과기준을 새로 만든 게 아니라 이미 법령에 명시된 부과기준을 시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별도로 방침이나 기준을 공시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즉 그동안 법에 따라 세금을 징수해야 했지만 행정력이 미치지 못해 시행하지 못했던 사안을 이제 정상적으로 징수한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건설업계나 세무전문가들은 국세청과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 그동안 건설사들이 부가세 공제신청을 할 때 마다 과세당국이 세부적인 사항까지 일일이 검토한 사안이라는 것이다. 국세청이 일시적인 임대라는 건설현장의 여건을 잘 알고 있는 상황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는 기준을 시행하려다 보니 공개적으로 진행하지 못하고 개별 회사별로 공략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건설사 세무담당자는 “국세청이 회사들의 조세저항이나 집단 불복을 피하기 위해 동시에 진행하지 못하고 개별 회사별로 집행하는 것”이라며 불신감을 표했다.
애매하면 일단 부과 ‘고무줄 과세기준’에 불만
이런 사례처럼 세수확보라는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과세당국이 명확하지 않은 기준을 적용해 세금을 걷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여기저기서 튀어 나오고 있다.
올해 초 큰 논란이 됐던 제빵 가맹점에 대한 추징 방침에 대해서도 가맹점주들은 “국세청이 정확한 매출액을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일단 큰 금액을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하고 보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작년부터 시행에 들어간 일감몰아주기 과세도 내부거래를 통한 대주주의 이익규모를 정확하게 산정하는 게 기술적으로 힘들어 법제정 과정에서 조세연구원이 여러 가지 대안을 제시했지만 일단 밀어붙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과세액이 가장 큰 방향으로 시행령이 결정됐고 이를 기준으로 작년에 첫 시행에 들어갔지만 납세자들의 반발과 여론의 비판이 거세지자 실행한지 1년도 안돼 기준을 크게 완화했다.
세무전문가들은 근거과세주의를 언급하며 세금은 국민들에게 재산상의 불이익을 주는 행위이기 때문에 명확한 근거를 법으로 정하고 법의 제정도 국민적 합의에 의해 결정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국경제연구원 정승영 박사는 “과세기준이나 근거를 정할 때는 충분한 논의와 합의 과정이 있어야 하고 정확한 세액 산출이 힘들 때는 납세자의 신고액을 신뢰해야 한다”며 “무리하게 세수를 확보하려 하면 오히려 기업과 국민들의 경제활동을 위축시켜 결과적으로 세수입이 줄게 된다”고 조세행정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