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의 '패소할 결심'과 '타짜'… 그리고 대국민사기극(?)

영화 '헤어질 결심'은 여주인공의 자살(?)로 마감되는 슬픈 영화다. 그리고 헤어질 결심에는 영원한 사랑으로 남고 싶은 욕망이 담겨 있는지 모른다. '안개'가 모티브로 사용되는 스릴러와 애정물 사이를 넘나드는 영화라는 정도로 비전문 영역인 영화 얘기를 마친다.

영화 얘기로 시작하는 이유가 특별히 따로 있지는 않다. 다만 영화 제목을 차용하는데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한 때문이다.

헤어질 결심을 차용해 얘기하고 싶은 재판이 하나 있다. 굳이 제목을 '패소할 결심'으로 쓴 이유는 재판에 조금만 관심을 갖고 있다면 금새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항소심 선고 결과에 대해 아쉽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이유 역시 '패소할 결심'을 그렇게 쉽게 하는 검찰 출신의 VIP와 그의 황태자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에 의해 피폐해지고, 황폐화된 '법치주의'가 형해화 돼 가는 법원만큼이나 가엽다는 무거운 생각 때문이다.

19일 항소심 법원인 서울고등법원 행정1-1부(심준보 김종호 이승한 부장판사)는 2020년 12월 '추미애 전 법무부'가 내린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에 대한 정직 2개월의 징계처분을 1심 판결과 달리 원고(윤석열 전 검찰총장) 승소로 판결했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당시 징계처분의 주요 이유는 ①주요 사건 재판부 분석 문건(소위 '판사 사찰 문건')의 작성 및 배포 ②채널A 사건 감찰 방해와 수사 방해 ③정치적 중립에 관한 부적절한 언행이었고, 지난 2021년 10월 서울행정법원 1심 재판부는 "징계처분의 타당성이 충분히 인정된다"면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 바 있다.

1심 재판부는 3개의 징계처분 사유 중 첫째와 둘째 사유는 인정되고, 세째 사유에 대해서만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1심 재판부는 정직 2개월의 처분이 가볍다며 오히려 더 중한 징계까지도 가능하다고 판시했다.

1심 판결에 항소한 윤석열 총장은 이후 대통령이 됐고, 법무부 장관으로 같은 검사 출신인 한동훈 장관을 발탁했다.

그리고 이후 한동훈 장관은 우리가 모두 아는 '패소할 결심'을 결행했다.

잘 알다시피 윤석열 대통령이 원고인 재판(징계처분 취소소송)에서 국가를 대표해 소송을 진행하는 피고(법무부 장관)의 위치에 한동훈 장관을 임명하면서 소송 구조(원고-피고)가 이상한 형태를 띠게 됐다. 국민 모두가 너무나 잘 아는 윤석열과 한동훈이 원고-피고인 재판이라니. 그것도 피고인 한 장관은 징계처분 사유로 지목된 두 번째 항목의 당사자이기도 하다.

좀 더 부연하자면 윤 전 검찰총장의 징계처분 사유 중 하나가 한동훈 장관(당시 차장검사)이 당사자로 돼 있는 '②채널A 사건 감찰 방해와 수사 방해'인데, 당사자 중 한 명인 한 장관이 법무부장관으로 오면서 1심을 승소로 이끈 변호사들을 모두 사임 또는 해임시키고 정부법무공단 변호사들을 임명했기 때문이다.

소위 '패소할 결심'으로 이해되는 국민 사기극(?)을 아무런 거리낌없이 단행한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항소심) 재판부조차 여러차례 법무부 측 대리인을 향해 "신문 내용이 좀 그렇다"고 지적하면서, 법무부에서 승소할 의지가 없는 게 아니냐는 질책이 나왔다. 심지어 윤석열 전 총장의 변호인들이 5번의 변론을 재판부에 제출하는 동안 피고인 법무부는 1번의 변론서만을 제출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렇지만 한동훈 법무부는 개의치 않은 듯 보였다.

그렇다면 이제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으로 1심이 판결이 뒤집어지면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징계처분은 말끔하게 정리된 것일까?

아마도 대부분의 국민들은 한동훈의 법무부가 '패소할 결심'을 한 이유에 대해 납득할 수 없는 '내로남불'이라고 여길 것이다. 그리고 항소심 판결에 대해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까.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보여진 민심을 무섭게 생각지 않은 듯한 윤석열 정부 법무부의 폭주는 법치주의가 어떻게 '법꾸라지'들에 의해 파괴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슬픈 영화같은 현실인걸까. #2. 짤 짜여진 한 판 사기극, 타짜는 누구?

영화 '타짜'는 잘 기획된 노름판에서 각자의 역할을 나눠가지면서 판을 설계하는 정마담(김혜수 분)과 스승(백윤식 분)으로부터 화투의 각종 속임수 기술을 연마한 달인인 고니(조승우 분)가 판돈을 쓸어담는 이야기다.

현실이 늘 영화같은 정치판에서도 가끔 잘 기획된 '판'들이 등장하곤 한다.

최근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는 그 비상한 상황에서도 영화 타짜에서처럼 잘 짜여진 구조 속에 국민을 상대로 크게 한판 챙기고픈 욕망이 엿보인다는 점에서 영화 타짜의 구조를 오마주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 판의 기획과 감독은 위기를 한번에 극복하고 싶은 VIP와 대통령실이라면, 주연 배우로 낙점된 사람은 윤석열 정부의 황태자로 불리는 한동훈 장관인 듯 보인다.

다만 갑작스러운 등장이 부담스러웠는지, 아니면 내부 논의 과정에서 합의 추대를 받지 못해서였는지, 그도 아니면 가끔 정치 일선에서 선수로 뛰고 싶어하는 보수 언론의 지지를 받지 못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내부 돌아가는 사정은 모르지만, 어쨌든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등장하는 모습이 한 차례 뒤로 밀리면서 극적 효과는 반감됐다.

그렇지만 국민의힘이 비대위 체제로 총선을 치를 것이란 예상은 이미 오래전부터 호사가들로부터 회자되던 내용으로 새로울 게 없다.

당장 강서구청장 보궐 선거 패배 책임을 지고 물러날 것으로 보였던 김기현 대표 체제는 인요한 혁신위원장의 등장으로 목숨을 잠깐 연명했지만, 결국 VIP와 갈등으로 낙마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여기에 VIP에게 반기를 든 것처럼 보였던 장제원 의원도 김기현 대표의 사퇴 전 불출마 선언을 하면서, VIP의 충실한 신하로 보여졌던 '김-장(김기현, 장제원)연대'는 진부한 표현으로 '토사구팽'을 맞았다.

현재로써는 윤석열 정부의 황태자로 불리는 한동훈 장관이 당장 비상대책위원장 자리를 차지할 지 여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내년 총선 과정에서 한동훈 장관이 끊임없이 국민의힘으로부터 호명돼 역할을 맡아달라는 요구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시기의 선후가 있을지라도 그런 논의가 증폭되고, 수위 조절과 등판 시기를 조절하면서 타자의 극적 등장을 예비한 잘 짜여진 '판'이 등장하리라는 예상은 그래서 '웃픈' 현실이다.

돌이켜보면 윤석열 정부의 모든 구호와 선언은 역설적이게도 자신을 향하는 부메랑이 되지 않을까 싶다.

두 눈을 가린채로 한쪽 손에는 평저울을, 다른 한쪽 손에는 칼을 들고 있는 정의의 여신 디케(Dike), 요즘 우리 사회를 빗대어 보면 디케는 기울어진 저울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제대로 가리지 않는 천으로 저울의 이쪽 저쪽을 보며 선입견을 갖고 판단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법관들의 마음 속을 들여다 볼 수는 없지만, '당신의 마음 속 디케는 어떤 모습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헤어질 결심'과 '타짜', 영화의 스크린 속으로 요즘의 비현실적인 현실들을 옮겨놓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