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봉 세무법인 더택스 대표세무사
‘덕질’이라는 단어는 표준어국어대사전에 올라있지 않지만, 일상에서 “어떤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여 그와 관련된 것들을 모으거나 파고드는 일”이라는 의미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아주 열성적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지금부터는 누군가에 대한 소소한 정도의 덕질을 해보려고 합니다.
평소 언론지상이나 매스컴으로 접해 온, 개인적으로 관심의 대상이었던 이어령 선생님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떠오르는 다른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다산 정약용입니다.
두 사람은, 많은 책을 저술하여 사후에 미친 영향이 지대하고, 흔히 인문학적 태생임에도 엔지니어 또는 예술적 감각이 탁월했던 공감각적(?) 재능을 지닌 천재적 인물로 존중받기도 합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역경 속에서 오히려 진가를 보여준 위대한 지성인이었습니다.
정약용(1762~1836) 사후 1백여 년 만에 이어령(1934~2022)이 태어났으니, 두 사람은 백년에 한 명 태어날까 말까한 인물로 기억될 것입니다.
Episode 1. 들어가기
집 근처에 두물머리와 퇴촌이 있다는 것은 행운입니다. 두물머리 조금 못 미쳐서는 다산 유적지(생가, 생태공원)가 있고 퇴촌에는 천주교 발상지인 천진암 성지가 있죠. 쌈지 유적지 같은 곳입니다.
다산(茶山) 정약용이 태어난 능내리 맞은편은 분원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사이에 남한강이 흐르고요. 남한강 건너 분원리에서 뒷길을 따라가면 다산이 서학 강학(오늘날의 세미나)에 참여했던 곳이 있는 퇴촌 천진암이 나옵니다.
2월의 어느 주말이었습니다. 미사강변도로를 따라 팔당 관리교를 지나 두물머리를 향하고 있었죠. 라디오에서 이어령 선생님의 부고 소식이 흘러나왔습니다. 순간 그의 옹골진 목소리를 더는 들을 수 없다는 생각에 머리가 허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굳건하지만, 응어리진 것이 아니라 어떤 곳이든, 언제든, 누구든, 어디서든 통할 수 있는 참 찰진 분이라는 생각을 했었죠.
Episode 2. 정약용과 이어령 - 데칼코마니(Decalcomanie)
한 언론인이 정약용과 이어령 두 사람 중 한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쓴 기사를 보면서, 또 다른 한 사람이 오버랩 됐습니다. 마치 데칼코마니 같이.
“ㅇㅇㅇ이 세상을 떠났을 때, ‘수만 권의 서고가 무너졌다.’ ‘ㅇㅇㅇ은 박식함이 우주를 꿰뚫고 깨달음이 미세한 것에까지 투철했다. 쌓아둔 것이 드넓고 다룬 분야가 많아 어떤 것이든 환히 알지 못하는 것이 없었다.”
Episode 3. 성장 환경 - 부모는 자식의 거울
두 사람을 통해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다’는 말을 실감하게 됩니다.
어머니를 9살에 잃은 정약용, 여섯 살 때 아버지의 벼슬길에 따라 나서면서부터 그의 미래여정이 예고됐습니다. 일곱 살에 지은 것으로 알려진 <산>,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렸네. 멀고 가까움이 다르기 때문이네(小山蔽大山 遠近地不同).” 그 나이에 사물의 근원적 이치를 깨닫고 있음에 놀랐던 이가 비단 아버지뿐이었을까. ≪목민심서≫의 탄생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목민심서 자서(自序)에서 선친으로부터 따라 배우고, 듣고, 보면서 깨달은 바가 있어 가능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어령은 자신이 돌상에서 돌잡이로 책을 잡은 걸 운명처럼 받아드립니다. 글자를 알기도 전에 책을 알았던 데에는 늘 잠들기 전 책을 읽어주셨던 어머니 덕분이었다고 회상합니다. “어머니는 내 환상의 도서관이었으며, 최초의 시요, 드라마였으며 끝나지 않는 길고 긴 이야기책이었다.” 그 어머니는 이어령이 열한 살일 때 짧은 생을 마감하셨지요.
Episode 4. 우상 파괴(Iconoclast) - 세상의 부조리를 보다
아이코노클라스트를 직접 언급한 것은 이어령이지만, 두 사람은 시대정신에 어긋나는 행위를 좌시하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정약용에게 있어 “우상 파괴”는 관료의 구조적 부조리에 대한 경고에서 출발합니다. 강진 유배 중 ‘애절양’(남자의 생식기를 잘라야하는 애통함)이라는 제목의 한시로 부패한 조세 운영실태와 사회 실상을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습니다(목민심서). ‘목(牧)이 민(民)을 위해 존재하는 것(牧爲民有也)이지, 민(民)이 목(牧)을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는바, 민(民)에 군림하는 목(牧)이야말로 우상 파괴의 대상이었을 것입니다.
22살의 이어령에게 “아이코노클라스트(iconoclast, 우상의 파괴)”는 권위주의에 매몰된 기성 문단의 자기성찰 내지 혁신적 파괴의 선언이었습니다. 기득층 문화권력에 맹종하는 젊은 세대와 그런 세태까지 싸잡아 원폭 선언을 한 느낌이 듭니다. 그는 단순 파괴가 아닌 창조를 위한 파괴였음을 에둘러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훗날, 누군가가 자신을 우상으로 부르는 일이 생기자 이는 아이러니라며 두려워하기도 했습니다.
평소 언론지상이나 매스컴으로 접해 온, 개인적으로 관심의 대상이었던 이어령 선생님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떠오르는 다른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다산 정약용입니다.
두 사람은, 많은 책을 저술하여 사후에 미친 영향이 지대하고, 흔히 인문학적 태생임에도 엔지니어 또는 예술적 감각이 탁월했던 공감각적(?) 재능을 지닌 천재적 인물로 존중받기도 합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역경 속에서 오히려 진가를 보여준 위대한 지성인이었습니다.
정약용(1762~1836) 사후 1백여 년 만에 이어령(1934~2022)이 태어났으니, 두 사람은 백년에 한 명 태어날까 말까한 인물로 기억될 것입니다.
Episode 1. 들어가기
집 근처에 두물머리와 퇴촌이 있다는 것은 행운입니다. 두물머리 조금 못 미쳐서는 다산 유적지(생가, 생태공원)가 있고 퇴촌에는 천주교 발상지인 천진암 성지가 있죠. 쌈지 유적지 같은 곳입니다.
다산(茶山) 정약용이 태어난 능내리 맞은편은 분원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사이에 남한강이 흐르고요. 남한강 건너 분원리에서 뒷길을 따라가면 다산이 서학 강학(오늘날의 세미나)에 참여했던 곳이 있는 퇴촌 천진암이 나옵니다.
2월의 어느 주말이었습니다. 미사강변도로를 따라 팔당 관리교를 지나 두물머리를 향하고 있었죠. 라디오에서 이어령 선생님의 부고 소식이 흘러나왔습니다. 순간 그의 옹골진 목소리를 더는 들을 수 없다는 생각에 머리가 허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굳건하지만, 응어리진 것이 아니라 어떤 곳이든, 언제든, 누구든, 어디서든 통할 수 있는 참 찰진 분이라는 생각을 했었죠.
Episode 2. 정약용과 이어령 - 데칼코마니(Decalcomanie)
한 언론인이 정약용과 이어령 두 사람 중 한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쓴 기사를 보면서, 또 다른 한 사람이 오버랩 됐습니다. 마치 데칼코마니 같이.
“ㅇㅇㅇ이 세상을 떠났을 때, ‘수만 권의 서고가 무너졌다.’ ‘ㅇㅇㅇ은 박식함이 우주를 꿰뚫고 깨달음이 미세한 것에까지 투철했다. 쌓아둔 것이 드넓고 다룬 분야가 많아 어떤 것이든 환히 알지 못하는 것이 없었다.”
Episode 3. 성장 환경 - 부모는 자식의 거울
두 사람을 통해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다’는 말을 실감하게 됩니다.
어머니를 9살에 잃은 정약용, 여섯 살 때 아버지의 벼슬길에 따라 나서면서부터 그의 미래여정이 예고됐습니다. 일곱 살에 지은 것으로 알려진 <산>,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렸네. 멀고 가까움이 다르기 때문이네(小山蔽大山 遠近地不同).” 그 나이에 사물의 근원적 이치를 깨닫고 있음에 놀랐던 이가 비단 아버지뿐이었을까. ≪목민심서≫의 탄생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목민심서 자서(自序)에서 선친으로부터 따라 배우고, 듣고, 보면서 깨달은 바가 있어 가능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어령은 자신이 돌상에서 돌잡이로 책을 잡은 걸 운명처럼 받아드립니다. 글자를 알기도 전에 책을 알았던 데에는 늘 잠들기 전 책을 읽어주셨던 어머니 덕분이었다고 회상합니다. “어머니는 내 환상의 도서관이었으며, 최초의 시요, 드라마였으며 끝나지 않는 길고 긴 이야기책이었다.” 그 어머니는 이어령이 열한 살일 때 짧은 생을 마감하셨지요.
Episode 4. 우상 파괴(Iconoclast) - 세상의 부조리를 보다
아이코노클라스트를 직접 언급한 것은 이어령이지만, 두 사람은 시대정신에 어긋나는 행위를 좌시하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정약용에게 있어 “우상 파괴”는 관료의 구조적 부조리에 대한 경고에서 출발합니다. 강진 유배 중 ‘애절양’(남자의 생식기를 잘라야하는 애통함)이라는 제목의 한시로 부패한 조세 운영실태와 사회 실상을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습니다(목민심서). ‘목(牧)이 민(民)을 위해 존재하는 것(牧爲民有也)이지, 민(民)이 목(牧)을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는바, 민(民)에 군림하는 목(牧)이야말로 우상 파괴의 대상이었을 것입니다.
22살의 이어령에게 “아이코노클라스트(iconoclast, 우상의 파괴)”는 권위주의에 매몰된 기성 문단의 자기성찰 내지 혁신적 파괴의 선언이었습니다. 기득층 문화권력에 맹종하는 젊은 세대와 그런 세태까지 싸잡아 원폭 선언을 한 느낌이 듭니다. 그는 단순 파괴가 아닌 창조를 위한 파괴였음을 에둘러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훗날, 누군가가 자신을 우상으로 부르는 일이 생기자 이는 아이러니라며 두려워하기도 했습니다.
◆ 글쓴이 : 김종봉 세무법인 더택스 대표세무사
[약력] 서울청 국선세무대리인, 중부청 국세심사위원, 가천대학교 겸임교수, 법무법인 율촌(조세그룹 팀장), 행정자치부 지방세정책포럼위원 / 가천대학교 경영학 박사 / 국립세무대학 3기
세무법인 더택스
김종봉 대표세무사
[약력] 서울청 국선세무대리인, 중부청 국세심사위원, 가천대학교 겸임교수, 법무법인 율촌(조세그룹 팀장), 행정자치부 지방세정책포럼위원
가천대학교 경영학 박사 / 국립세무대학 3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