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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색정글의 강자들㉒-전문직 성공의 핵심 DNA-

전문직의 타임 시트(time sheet)는 믿어도 될까

  • 보도 : 2020.04.07 09:17
  • 수정 : 2020.04.07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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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전문직들의 타임 시트(time sheet)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프로법인, 특히 대형로펌이나 대형회계법인에 근무하는 프로들은 자신의 타임 시트(time sheet)에 무척 신경을 쓴다. 전문직들의 time sheet가 무엇이기에 그들은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일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첫째는 time sheet가 전문가들의 월급을 결정하는 것이어서 그렇고, 둘째는 전문가들의 업무수행 평가기준의 하나이기 때문이고, 셋째는 고객의 신뢰도나 인기의 척도도 되기 때문이다. 

변호사, 회계사 등 전문직들은 원칙적으로 매일 퇴근하기 전에 time sheet를 쓴다. 하루에 수행한 업무내용과 시간을 고객별로 적어 내는 것이다. 보통 15분 단위로 기록한다.

그러면 법인 경리부에서 1개월치(미국 로펌이나 회계법인은 보통 2주치)의 time sheet 시간을 고객별로 집계하여 담당변호사, 회계사 등 해당 전문직들의 시간당 청구금액(hourly rate)를 곱하여 나온 금액을 고객들에게 청구서(invoice)로 보낸다. 그리고는 대개 전문직들은 그 한 달치 time sheet 총 시간에 자기의 임률(hourly rate)를 곱한 금액의 일정 퍼센트(%)에 해당하는 보수 금액을 가져가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물론 예외도 있다. 고객이 청구금액 총액을 그대로 전액을 지불하느냐, 그렇지 않으냐에 따라 보수가 줄어들 수도 있는 것이다. time sheet는 참고용으로만 활용하고, 실제로는 전문직에게 월 정액급여를 지급하는 경우도 있다. 또는 time sheet와 월 급여를 직급에 따라 혼용하는 하이브리드(hybrid)방식을 쓰는 프로법인도 있다.

갑법인의 A변호사는 일을 엄청나게 많이 하는 변호사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눈은 항상 아침부터 벌겋게 충혈 돼 있다. 항상 전날 새벽까지 일을 하고 다음 날 또 아침에 일찍 나와서 일을 하는 것이다.

실제로 고객들의 전화가 그칠 줄을 모르고, 그는 항상 회의나, 법률의견서 작성으로 정신이 없다. 너무도 바쁘다 보니 점심은 비서 등을 통해 샌드위치를 배달시켜 먹는 경우도 많다. 그렇게 일을 많이 하다 보니 몸이 기진하여, 1년에 한 번씩은 일부러 병원에 입원하여 1주일 정도를 쉬기도 한다고 한다.

그런데도 그의 총 타임(time)에 대하여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고객들 사이에서 갑변호사에 대하여 풍자적인 뒷담화들이 오가고 있다는 것이다.
"갑변호사가 고객들에게 청구한 지난 달 타임(time)을 모두 합치면 300시간이 넘는다더라."
"한 달 300시간이라면 토, 일을 제외한 근무일수 20일로 나누면 하루에 15시간씩 일을 했다는 말이 되는데…"
"하루에 15간이면 아침 8시에 출근하여 점심 저녁도 안 먹고 화장실도 안 가고 개인적 전화도 안 받고, 줄곧 앉아서 밤 11시까지 일을 했다는 얘기가 되는데…, 이게 말이 되나?"
또 이런 얘기도 돈다고 한다.
"갑변호사의 한 달 타임 시트(time sheet) 총 시간이 280시간을 넘는다더라."
"그래? 그게 과연 가능한가? 280시간이라면 토, 일은 쉰다 치고 하루에 14시간씩 일을 했다는 얘기인데…, 8시 출근한다 하면 밤 10시까지 10분도 쉬지 않고 일을 했다는 얘기잖아?"
"맞아, 그럼 그동안 갑변호사는 화장실도 전혀 안 가고, 점심과 저녁도 거의 안 먹고 일만 했다는 거잖아."
"그렇지. 많이 양보를 해서 화장실 가는 시간을 총 10분이라고 하고, 점심·저녁 식사시간을 최소로 잡아 각각 30분씩이라 하고, 기타 사적인 만남, 전화, 사무실내의 행정업무, 사무실 내부이동 시간 등을 1시간이라 한다면, 합계 2시간 정도 되는데, 그렇다면 항상 밤 12시까지 일을 한다는 얘기가 되는데 과연 말이 되나?"
"밤 12시 퇴근, 8시 출근이라…, 그럼 갑변호사는 출·퇴근시간을 짧게 잡아 각각 45분 총1시간 30분 정도라 하고, 도착하여 손발을 씻고 아침에 세수와 조식 등에 할애하는 시간이 1시간이라 하면, 갑변호사가 잠잘 수 있는 시간은 하루에 5시간 30분밖에 안 되는 거 아냐? 그러고도 버틸 수 있나?"
"초인이 따로 없네, ㅎㅎ"
이런 농담들이 돌고 있다는 것이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미국에서는 로펌의 변호사들 중에 이 타임 시트(time sheet)에 실제보다 많은 시간을 적는 사람들이 있다하여 더 이상 time sheet를 신뢰하지 않은 고객이 늘고 있다고 한다. 변호사나 회계사들이 자문료를 높이고 자기의 보수를 높이기 위하여 이런 유혹을 뿌리칠 수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따라서 time sheet 시간 대신 처음부터 정액으로 계약을 하겠다는 고객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다국적기업 중에는 이런 부조리를 감사하기 위하여 법무실에 별도의 팀을 가동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법무법인 감사팀(law firm audit team)을 두는 것이다. 이들은 가끔 로펌을 방문하여 자기들에게 청구된 time이 적정한지를 감사하는 것이다.

로펌이나 회계법인은 이들의 감사요구를 거절하기도 쉽지 않다. 고객이 왕이기 때문이다. 협조를 하지 않으면 다른 로펌이나 회계법인으로 가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고객을 놓치면 법인의 수입이 바로 감소하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필자도 미국 고객의 감사를 받아 본 경험이 있다. 그 당시 미국의 다국적기업 감사팀이 한국 로펌을 방문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것이었다. 그 감사팀과 옥신각신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고객이 정액제 계약을 선호하게 된다. 요즈음 한국의 로펌이나 회계법인들도 사건을 수임할 때 이런 제안을 많이 받는다. 그러다 보니, 계약금액을 미리 정하기 위하여 투입될 시간을 추산하는 일들에 엄청난 시간을 쏟아붓게 된다. 이는 결국 프로법인들의 간접비용을 크게 증가시킨다. 프로법인들이 과거에 비해서 훨씬 힘든 상황으로 내 몰리고 있는 것이다.

필자의 경험으로는 전문직들은 양심적으로 time을 기록한다. 그러나 누가 감히 그걸 100% 보장할 수 있겠는가? 부정직한 행동(cheating)을 하는 사람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time sheet에 기재된 시간을 객관적으로 검증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부조리 가능성 때문에 갑법인은 최근 제도를 바꾸어 청구액 중 실제 지급받은 자문료를 근거로 월 보수를 정한다고 한다. time sheet에 대하여 고객이 별 문제를 삼지 않고 모두 지급을 하면 변호사의 정직성도 일단 인정을 받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프로가 적은 시간대로 보수를 지급해도 문제가 없는 것이다. 고객이 그에 못 미치는 금액을 지급하겠다고 하면 프로의 보수를 그만큼 감소시키는 방법이다.

프로법인들은 보통 time sheet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하여 월별 time sheet 집계를 동료들에게 회람을 시키기도 한다. 이런 회람제도는 직장 내의 동료들이 누가 얼마나 일을 많이 하는지를 대략 알고 있기 때문에 프로들이 시간을 실제보다 더 적고 싶은 유혹을 은근히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또한 이 회람제도는 일이 너무 적은 후배들이나 반대로 일이 너무 많은 후배들을 찾아내어, 일이 적은 후배에게는 일을 더 배분해 주고, 일이 많은 후배에게는 일을 덜 배분하도록 하여 모두의 업무 부담을 균등하게 하는 순기능을 수행하기도 한다.

요즘은 52시간제의 도입으로 전문직들의 업무 자체가 1주에 52시간을 초과할 수 없어 이를 실무적으로 어떻게 대처할지를 놓고 많은 프로법인들이 고심한다고 한다.

물론 파트너는 예외다. 파트너는 일반 근로자가 아닌 사용자이기 때문이다(위의 이야기는 52시간제 도입 이전의 것으로 지금은 대체로 파트너들의 time sheet에만 해당하는 셈이다).

마지막으로 time sheet와 연관하여 생각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전문직들이 하루를 보내면서 꼭 유념해야 할 점이다. 전문직들 중에는 눈앞의 돈벌이에 급급한 나머지 매일 매일 time 올리기에만 정신이 빠져, 자기의 전공분야에 대한 공부나 신규고객이나 신규일감의 개발(promotion/marketing) 등을 소홀히 하는 사람들이 있다.

여기에는 고객을 위한 지원활동 - 예를 들면 news letter제공이나 고객들을 위한 세미나 참석 등의 non-billable time(무료 제공 시간) - 을 제공한다거나, 신규고객 접대 등을 꾸준히 지속해야 하는 것이다.

전문가는 이 점을 특히 주의하여야 한다. 당장의 먹거리(?)가 고갈될 때를 대비하여 항상 미래의 일감을 미리 미리 준비해 두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자신의 미래에 대한 투자이다.

"What you do with your billable time determines your current income but what you do with your non-billable time determines your future (당신이 유료시간으로 하는 일은 당신의 현재 수입을 결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무료시간으로 하는 일은 당신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다)". – David Maister

법무법인 광장
이종열 고문

[약력] 서울대학교(경영학과) 졸, 세종대학교경영대학장·경영대학원장, 안건(현 안진)회계법인대표, 김&장법률사무소(부문)대표, 미국UC HASTINGS 법학대학원 방문교수, 주한 미국상공회의소 조세분과 회장, 미국 및 호주회계법인 간부 등, 현 법무법인 광장 고문(경영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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