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외에서 발생한 소득이나 해외금융계좌 등에 숨긴 재산(이하 역외소득)의 실체가 드러났다.
그간 과도한 처벌 등이 두려워 역외소득과 관련한 세금을 제대로 신고하지 못한 납세자들에게 자발적으로 세금을 납부할 경우 처벌(가산세 등)을 면제해주는 이른바 '미신고 역외소득·재산 자진신고제'가 정부의 의도대로, 효과를 발휘했기 때문이다.
제도 도입 당시 해외은닉 재산이 양성화될 가능성이 그닥 높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많았다.
국세청이 역외소득을 쌓아놓고 세금을 납부하지 않은 사실을 찾아냈음에도 불구, 이런 저런 법망의 미비로 세금을 징수하지 못하는 사례가 나오는 등 과세당국의 역외소득 추적 역량이 재산가들의 두려움을 자극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 우려의 배경이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외국 간 조세정보자동교환협정 시행을 앞두고 역외소득을 쟁여두고 세금을 내지 않던 재산가들의 '양심고백'이 이어지면서, 정부는 1500억원이 넘는 세금을 징수하는데 성공했다.
28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자진신고제를 통해 신고 된 금액은 총 5129억원으로, 납부세액은 1528억원이었다. 1500억원에 달하는 세금 중 소득세 비중이 920억원으로 가장 컸고, 상속·증여세 555억원, 법인세 63억원의 순이었다.
특히 금융계좌 정보를 맞교환하는 다자간 협상이 궤도에 오르면서 해외비밀계좌에 숨겨 둔 자금도 낱낱이 공개됐다. 해외금융계좌 신고액은 2조1342억원에 달했으며, 개인보유계좌가 1조1274억원, 법인계좌는 1조68억원이었다.
현행 법상 매년 6월 해외금융계좌신고제에 따라 해외금융계좌 잔액이 10억원을 초과했을 때 신고를 했어야 하나, 이를 이행하지 않았던 재산가 및 법인들이 많았다는 것이 증명된 꼴. 즉 그동안 해외금융계좌신고제의 약발이 제대로 먹히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과태료 등 면제라는 확실한 '회유책'을 부여하자 그동안 수면 아래에 머물러 있던 부류들이 대거 수면 위로 떠오른 것으로 풀이된다.
자진신고제에 따른 세수효과도 눈에 띈다.
우리나라와 경제규모가 비슷한 호주에서 자진신고제를 통해 거둬들인 세수보다 그 규모가 더 컸다. 실제 호주의 경우 2014년 자진신고제를 시행해 1088억원을 징수한 바 있다. 정부도 9개월에 걸쳐 자진신고제를 운영한 호주와 비교하며 우리나라의 경우 단기간(6개월)의 시행에도 성실납세 문화 확산의 계기가 됐다는 자평까지 내놨다.
하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이 밝혀진 것일 뿐 여전히 역외소득 및 역외탈세 시도는 은밀하고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빙산을 제대로 잡기 위해서는 앞으로 헤쳐 나가야 할 난관들이 더 많다는 것이다.
정부에서는 향후 적발되는 해외은닉 소득·재산에 대해 관련 법률에 따라 과세는 물론 형사처벌까지 가하겠다고 단단히 엄포를 놓았으나, 역외탈세 추적에 가장 근본적인 동력이 될 조세정보교환 작업은 지지부진한 상황을 면치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미국을 비롯한 유럽 100여개의 국가와 금융정보 교환 시행을 앞두고 있다.
첫 번째 타겟 지역은 미국으로, 올해 9월부터 한국과 미국의 금융정보 자동교환 협정(FATCA)이 이루어질 예정.
그러나 FATCA에 대한 비준동의안이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계류 중인 상태다.
국회가 교체시점이어서 비준안 처리가 차일피일 지연될 가능성이 있다. 정부에서는 여야 간 이견이 없다는 이유로 비준안이 무리 없이 통과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으나, 현 시점만 놓고 볼때는 정부의 엄포를 실현시킬 '무기' 조차 손에 쥐어지지 않은 형편이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자진신고제의 검증 작업이 완료된 이후 미신고 인원에 대한 대대적인 세무조사를 예고하고 있으나, 법체계 정비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이라면 역외탈세 추적에 고전을 거듭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전문가들도 자진신고제를 통한 지하경제 양성화의 효과를 치켜세우면서도, 역외세원을 추가 발굴하기 위해서는 국제조세 환경 변화에 빨빠르게 대응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윤태화 가천대학교 회계세무학과 교수는 "자진신고제를 통해 기대 이상의 성과를 얻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역외탈세자들에게 분명한 시그널을 준 것 같다"며 "하지만 아직까지 신고를 하지 않은 사람도 주위에 많다. 국제적인 공조 체제에 따라 적법한 조치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홍기용 인천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앞으로 국가간 정보 교환을 통해 역외소득 탈세자들도 더 이상 숨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며 "국제적으로 공조가 강화되고 있는 만큼, 정부에서도 제도적 보완에 더 신경을 기울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