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도 천국에 갈 수 있다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 성서 말씀이다. 왜 하필 낙타인가. 고대 아랍어의 ‘Gamla’는 낙타를, ‘Gamta’는 밧줄을 뜻한다. 바늘구멍에는 밧줄이 더 잘 어울린다. 밧줄도 실이기 때문이다.

성서번역자가 ‘Gamta’를 ‘Gamla’로 오인한 나머지 엉뚱하게도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간다고 잘못 번역한 것이다. 청사에 길이 남을 오역이다. 그러나 바늘구멍으로 들어갈 것이 밧줄이면 어떻고 낙타면 또 어떠랴. 어차피 못 들어가기는 마찬가지인 것을.

중요한 것은 성서가 부자, 낙타와 바늘구멍 얘기를 통해 전하려 한 메시지다. 성서의 앞뒤 맥락은 이렇다. 한 젊은 부자가 예수님께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여쭈었다. 예수님 말씀. “계명을 잘 지켜야 한다.” 그 젊은 부자. “잘 지키고 있습니다.” 다시 예수님. “가난한 이들에게 재물을 나눠 줘라.” 부자가 슬퍼하면서 떠나자,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보다 밧줄이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이 더 쉽다.”

이 성서 말씀을 현대적 시각에서 조명하면 부자가 계명을 지킴은 천국의 열쇠를 받기 위한 필요조건에 불과하고 좋은 일에 재산을 아낌없이 기부하는 것이 충분조건이라는 것. 바로 그 점을 예수님은 강조하려 하신 것이다.

얼마 전 모 그룹 명예회장이 전 재산을 어떤 재단법인에 기부하겠다고 선언하여 세상을 깜짝 놀라게, 그러나 매우 기쁘게 했다. 그룹총수가 자신의 이름이나 아호를 딴 재단에 재산을 기부하는 경우는 왕왕 있었다. 그러나 아예 제3의 재단에 전 재산을 쾌척한 경우는 아주 드물다. 그것도 그룹 지주사 격의 회사 지분을 기부한다니 그야말로 부의 사회환원이라는 덕목을 실천한 것이다.

“남북교류협력지원, 인도적 대북지원과 남북 주민간 공동체의식 함양을 통해 통일을 체계적으로 준비하고 통일기반을 조성한다.” 그분이 재산을 기부한 재단의 설립목적이다. 민족의 염원인 통일의 기반구축에는 정부가 할 일이 있고 민간이 할 일이 따로 있다. 정부차원의 지원은 아무래도 공식적이고 딱딱할 수 밖에 없을 터. 70년간 압제와 세뇌에 꽁꽁 얼어붙은 북한사람들 마음을 녹이는 데는 민간차원의 인도적 지원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 잘 모르긴 해도 이 재단은 그런 순기능을 겨냥한 것 같고 바로 그 때문에 그분이 이 재단에 기부하기로 한 것 같다.

문제는 그분이 이 재단에 기부(출연)할 재산의 상당부분이 주식이라는 점. 만의 하나 재단에 출연된 주식의 수가 그 회사 발행주식 총수의 5%(성실공익재단인 경우 10%)를 넘으면 그 초과분에 대하여 재단이 증여세를 내야 한다. 세법이 공익법인에 주식을 출연한 후 그를 통해 경영권을 계속 행사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한도 초과 주식출연분에 증여세를 매기도록 했기 때문이다.

혹자는 “세금내면 되지”라고 쉽게 말한다. 그러나 그러면 민간차원에서 통일기틀을 만들고자 한 그분의 좋은 뜻이 그만큼 희석된다. 세금으로 공공부문에 흘러 간 돈이 기부의도와는 다른 목적에 쓰여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 더구나 세금을 내려고 이 재단은 다른 사람들이 기부한 돈을 당겨써야 할 지도 모른다. 그 경우에도 그들의 기부의도와 달리 쓰여짐은 매일반이다. 기부를 결정하면서 세법에 규제가 많았다는 사실에 놀랐다는 그분의 코멘트도 이런 점들을 지적한 듯하다.

공익법인에의 기부를 장려해야 하는 한편 공익법인을 통해 경영권을 행사하려는 폐해도 막아야 하는 입법당국의 고충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렇다고 하여 꼭 세금으로만 공익법인에의 주식출연을 다스려야 하는가. 다른 정책수단은 영 없는 것일까. 입법당국이 고민해야 할 대목이다.

부유층의 비리가 터질 때마다 어김없이 터져 나오는 말은 ‘노블리스 오블리주’이다. 그러나 막상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려 하면 이런 저런 규제가 따른다. 부유층 특히 그룹총수가 할 수 있는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절정이 바로 공익재단에의 주식 기부를 통한 부의 사회환원이다. 그것이야말로 밧줄이, 아니 낙타가 바늘구멍을 지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 숭고한 업적을 제도가 외면할 수만은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