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PGA의 젊은 세 프로들

무심코 스포츠중계를 보다가도 확 끌리는 선수가 있다. 우리 선수라면 동포니까 그렇다고 치자. 외국선수인데도 그리고 그의 이기고 짐이 필자와는 아무 상관없는데도, 그가 이기면 기분 좋고 지면 괜스레 화가 난다(?). 그렇다면 그에게는 특별한 무엇이 분명 있다. 발군의 기량, 훌륭한 인성과 인간승리가 바로 그것이다.

호주 출신 PGA골퍼 제이슨 데이. 27세의 그는 늘 메이저대회의 우승후보로 꼽혔다. 그럼에도 메이저에서는 지독히도 운이 없었다. 올해 두 번째 메이저 대회인 US오픈 최종라운드, 공동선두로 출발했다. 그러나 특정 방향으로 머리만 움직이면 어지러워지고 눈이 떨리는 희귀병이 경기 내내 그를 괴롭혔다. 퍼팅이 제대로 될 리 만무했다. 받아 든 성적표는 9위. 그러나 그의 투혼은 끝내 필자의 눈가에 이슬을 맺히게 했다.

그런 그가 올 마지막 메이저인 PGA챔피언십을 제패했다. 그리고는 세계랭킹 3위로 부상했다. 그는 17번홀까지 2위 조던 스피스에 3타차로 앞섰다. 마지막 18번홀(파4). 세컨샷으로 그린을 점령한 그는 기가 막힌 퍼팅으로 톡 치면 들어갈 정도로 가까운 곳에 공을 붙였다. 무조건적 우승 직전. 스피스의 퍼팅을 기다리던 그가 갑자기 굵은 눈물을 그린 위에 방울방울 떨어뜨렸다. 챔피언 퍼팅 후 눈물을 흘리는 선수는 많이 봤으나, 그 전에 그랬던 선수는 처음이다.

골프채를 구하려고 쓰레기더미를 뒤져야 할 정도로 찢어지게 가난했다. 12살때 아버지를 여읜 후 곧바로 알코올중독에 빠졌고 밤낮없이 쌈박질에 몰두했다. 그랬던 그를 필리핀계 어머니가 지극정성으로 보살펴 오늘에 이르렀다. 그렇게 아팠던 기억들과 메이저대회 때마다 발목을 붙잡았던 불운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을 것이다. 그는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되새기며 Brighter Days(더 밝은 나날들)라는 재단을 설립, 결식아동들을 돕고 있다. 진정 인간승리이고 모성의 승리다.

22세의 미국골퍼 조던 스피스. 2012년 PGA에 데뷔한 그는 작년 4대 메이저의 하나인 마스터스에서 공동 2위의 성적을 거두었다. 올해는 마스터스와 US오픈을 잇달아 석권했다. 나머지 메이저인 디오픈과 PGA챔피언쉽에서는 공동 4위와 2위에 올랐다. 가히 메이저 청년이다.

그러나 단지 스피스의 성적 때문에 처음 본 사람들 조차 단박에 그에게 빠지는 것은 아니다. 착하디 착하게 생긴 얼굴에 그의 모범적 언행이 딱 들어맞은 것이 더 큰 이유다. 기회가 와서 그 기회를 잡았을 때나 절체절명의 위기를 넘긴 순간에도 큰 모션을 취하지 않는다. 그저 평온하고 담담할 뿐이다. 동반 골퍼를 자극하지 않으려는 겸손과 배려다.

PGA챔피언십에서 보여준 그의 매너는 압권이었다. 제이슨 데이에게 3타 뒤진 채 17번홀(파3)까지 왔다. 데이가 티샷을 간신히 그린 가장자리에 올렸다. 데이가 보기를 하고 스피스가 버디를 잡으면 순식간에 1타차로 좁혀져 경기가 안개 속에 빠질 터. 그러나 데이는 20m의 긴 퍼트를 홀컵 30cm 옆에 붙이는데 성공했다. 그러자 스피스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패배를 멋지게 받아들인 것이다. 경기가 끝나고 눈물을 흘리고 있던 데이를 따뜻하게 포옹했다. 스피스가 데이에게 “Today is Day’s day”라고 격찬한 바로 그날, 스피스는 세계랭킹 1위에 등극했다.

26세의 북아일랜드 출신 골퍼 로리 맥킬로이. 드라마틱한 경기운용과 다이내믹한 모션으로 전세계 골프팬들을 열광시켰던 타이거 우즈가 스캔들로 급전직하하면서 맥킬로이가 세계랭킹 1위에 올라 54주간 군림했다. 그랬다가 불의의 부상으로 몇 대회 거르고 PGA챔피언십에 도전했으나 17위에 그쳤다. 그 바람에 그는 스피스에게 랭킹 1위를 내주고 2위로 밀렸다. 그럼에도 맥킬로이는 이렇게 얘기했다. “저는 스피스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왔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장 먼저 스피스에게 축하해 주고 싶습니다.”

칼럼니스트들은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를 칼럼 끄트머리에 쓰곤 한다. 그러나 이번 칼럼에서만큼은 그러고 싶지 않다. 여백이 주는 반향과 울림이 훨씬 더 클 것 같기 때문이다. 다만 한마디. 이 멋진 세 젊은이들의 평균나이는 불과 25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