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해병 챈스 일병과 DMZ의 두 하사관

칠흑 같은 화면만 보인다. 총성과 폭음 속에서 “펠프스가 당했다”는 외침이 들린다. 화면이 조금 밝아지면서 두 해병이 챈스 펠프스의 집 앞에 나타난다. 그의 전사를 알리러 온 것. 2004년 4월 9일 이라크 무자헤딘 반군과의 전투에서 동료들을 엄호하다가 19세에 전사한 미 해병 챈스 일병의 운구과정을 그린 영화 'Taking Chance(챈스 일병의 귀환)'는 그렇게 시작된다.  

미 해병 마이클 스트로블 중령. 그는 입대연령에 미달되어 부모 동의 하에 해병에 자원 입대했다. 그때 나이 17세. 1991년 이라크전쟁 '사막의 폭풍'에 참전했다. 그랬던 그는 미 본토의 해병대 전투발전 지휘본부에서 병력지원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전사하고 있음에도 가족과의 안락한 일상을 즐기고 있는 자신은 진정한 해병이 아니라고 자책하고 있던 터였다.

그러던 어느 날 중령은 전사자명단에 올라온 챈스가 동향이라는 이유만으로 일면식도 없던 그의 운구를 자원한다. 지휘관은 일병의 운구에 고급장교가 나서는 것은 격에 맞지 않는다고 말린다. 그럼에도 그는 충성을 다한 끝에 전사한 챈스를 경건하고 존엄하게 운구하는 것은 국가와 해병대가 져야 할 책무라며 챈스 부모의 거주지인 와이오밍까지 운구를 책임진다.

델라웨어 도버공군기지 내 전사자안치소의 병사들은 만신창이가 된 챈스의 주검을 지극정성으로 수습하고 딱 맞는 해병정복을 입힌 후, 경건한 의식과 함께 중령에게 인계한다. 비행기 짐칸에 챈스가 실릴 때 중령은 물론 공항관계자 모두가 챈스의 헌신과 충성에 경의를 표한다. 항공사직원도 중령에게 일등석을 선뜻 배정해준다. 한 스튜어디스가 챈스의 어머니에게 전해주라면서 중령에게 작은 십자가를 준다. 중간기착지에 도착한 중령은 호텔을 마다하고 창고에서 챈스의 주검을 밤새 지킨다. 그를 혼자 놔두기 싫다면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몬타나에 내렸을 때, 기장이 기내방송을 한다. 저희 비행기는 챈스 일병의 시신을 운구하는 영광을 누렸다면서 중령이 먼저 내려 챈스를 챙기도록 배려한다. 뒤따라 내린 승객들도 챈스의 시신 앞에서 경의를 표한다.

몬타나에서 와이오밍까지는 육로다. 성조기가 덮인 챈스의 시신이 장의차에 실린 것을 보고 트레일러는 앞에서, 다른 승용차들은 뒤에서 에스코트한다. 챈스의 가족을 만난 중령은 유품과 그 십자가를 정중히 전달하면서 고향까지 오는 모든 여정이 존엄하고 경건했고 또한 명예로웠음을 고한다.

예포와 함께 장례가 시작되고 의장대가 관위에 덮인 성조기를 삼각으로 접어 챈스의 어머니에게 전한다. “미합중국 대통령과 해병대사령관은 미합중국을 대신하여 아드님의 조국에 대한 충성심의 증표로 이 성조기를 바칩니다”라는 말과 함께. 이 영화는 일주일에 걸친 스트로블 중령의 운구일지를 토대로 만든 실화이다. 미국이 어째서 미국인가를 그대로 보여준다.

손자병법과 쌍벽을 이루는 춘추전국시대 병법서인 오자병법의 저자 오기는 명예가 충성심의 원천(好名之心)임을 갈파했다. 그는 병사들과 동고동락하면서 그들의 애로를 들어줬고 심지어는 종기가 난 병사들의 고름도 입으로 빨아주었다. 병사가 전사하면 금전적 보상은 물론 3년간 부모와 처를 위로해주도록 했다. 그가 대장군으로 있었던 위나라가 최강의 전력을 보유했음은 당연지사. 병사들의 명예를 드높임이 충성과 강병의 첩경인 점은 동서와 고금을 관통하는 진리인가 보다. 

“우리는?”이라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고개를 든다. 멀리 연평해전이나 천안함까지 갈 것도 없다. 바로 며칠 전 기사. DMZ에서 북한의 지뢰만행으로 다리를 잃은 두 하사관 중 민간병원으로 이송된 하재헌 하사가 군인연금법 소정의 치료기간 30일을 넘겨 그 이후 치료비는 자비로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통령과 국방부가 나라를 지키다가 다친 장병들의 치료비를 그들에게 내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면서 문제를 풀었다. 그러나 이 문제가 논란의 대상이 된 것 그 자체가 문제다. 세금은 왜 내는가. 바로 그런 곳에 아낌없이 쓰라고 내는 것이다. 그럴 때 국민들은 국민된 보람과 자부심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