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내가 누군 줄 알아?"
경찰서에서만 들을 수 있는 말이 아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던 장면이 실제 일선 세무서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마땅히 내야할 세금을 수차례 내지 않아 고액체납자 신분이 됐지만, 뻔뻔함의 크기는 시간이 흐를 수록 더욱 커지기만 한다.
체납 징수는 국세공무원 대부분이 기피하는 업무.
예민한 체납자를 온종일 상대한 직원들은 그야말로 녹초가 되고 만다.
폭언은 기본, 때로는 폭행 사건까지 발생하는 '살벌한' 현장이지만 위험에 노출된 국세공무원들을 보호할 울타리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직원들의 설명이다.
이번에 소개할 악성민원 사례는 각종 욕설과 협박으로 국세공무원의 공권력을 땅 끝까지 떨어뜨린 고액체납자 A씨의 이야기다. 수 억원을 체납했지만 오히려 자신이 누군줄 아냐며 떵떵거리는 A씨의 태도에 일선 세무서 직원들은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참을 수 밖에…" = 권력기관으로 인식되고 있는 국세청이지만 속내를 들여다 보면 국세청 직원들도 우리와 별반 다를 것 없는 대한민국 구성원 중 하나일 뿐이다. 국세청 직원들의 납세서비스 향상도 중요하지만 이들을 대하는 납세자들의 태도 역시 지금보다 성숙해져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서울에서 화물운송업을 운영하고 있는 사업자로 부가가치세 등을 포함해 수 억원을 체납하고 있는 고액체납자 A씨.
그에게 부과된 세금은 부가가치세 신고분에 대한 무납부 고지로, A씨는 자신이 신고한 세금임에도 불구하고 평소 세금이 너무 많다며 세무서를 찾아와 억지를 부려 왔다.
체납 세금 납부안내문을 발송하면 체납담당 공무원을 찾아와 화풀이 상대인 양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퍼부었고, 담당 계·과장 등 관리자들이 나서 저지하려고 하면 할 수록 A씨의 행동은 갈수록 기고만장해지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청와대에 뒤를 봐주는 사람이 있다. 계장, 과장 정도의 직급이 낮은 공무원은 자신을 상대할 수 없다"며 막무가내로 서장실을 찾아간 A씨.
그는 "내가 왕년에 업무를 잘못한 국세청 간부 몇 명을 날렸다"며 확인되지 않는, 협박에 가까운 무용담을 늘어 놓았다.
A씨의 만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점심 시간 담당 계·과장을 뿌리치고 서장실로 쳐들어가 식사중인 서장을 호출, 급기야 서장이 식사 도중 복귀해 A씨의 면담에 응해야 했다.
세무서에서 1시간 이상 욕설을 퍼붓고 귀가한 후에도 체납담당 공무원이 매출 채권을 압류하면 거래처를 찾아 행패를 부리며 공무원과 국가 공권력을 철저히 무시했다는 A씨. 세무서 직원들은 이 같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울분을 눌러 담을 수 밖에 없었다.
"세무서에 발도 못 붙이게 할거야"
한편 올해 초 한 일선 세무서의 직원들은 술에 취한 민원인을 상대하느라 곤욕을 치렀다.
40대 후반 내지 50대 초반의 나이로, 당시 현장에 있던 직원들에 따르면 술에 취한 상태였다는 민원인 B씨는 번호표도 없이 막무가내로 민원실 창구에 앉아 여직원에게 세무상담을 하러 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질문의 취지를 말하지 않고 무작정 여직원을 윽박지르기 시작했다. B씨는 몇 십분 동안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이를 보다 못한 옆자리의 남자 직원이 경찰에 신변요청을 하겠다고 말하자, 그때부터 B씨는 남자 직원에세 욕설과 폭언을 하며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납세자보호 담당관실 직원들이 나와 말려봤으나 소용 없었다.
계속 자신을 제지하는 남자직원에게 욕설을 하는 등 소동을 부려 업무를 지속적으로 방해한 B씨는 "세무서 인근 일대에서 지금부터 당신을 항상 감시해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등 협박성 발언을 내뱉기도 했다.
직원들이 말리고 설득해 가까스로 세무서 밖을 나선 B씨. 1~2시간에 걸쳐 소동을 부린 취객 민원인으로 인해 직원들은 업무 마비로 인한 손해는 물론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호소하기도 했다.
일선 세무서 직원들은 이러한 막가파식 민원인이 세무서를 찾아와 소동을 부려도 사전에 제지할 수 있는 수단이 없어, 업무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입을 모은다.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검색망, 검색 인원을 배치하는 등 제지 수단이 절실히 요구되며 출입구에 검색대 및 검색요원을 상시 배치, 악성 민원인을 사전에 차단하고 있는 법원 등이 좋은 사례라며 이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다.
한 일선 세무서 직원은 "금융사들도 청원경찰을 배치해 제지하고 있으나 현재 세무서 민원실은 차단막이나 안내요원이 없어, 직원 안전이 무방비 상태나 다름없다"라고 말했다.
국민 의식수준의 동반 상승이 악성민원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답이겠지만 현실적으로 악성민원을 제로에 가깝게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
업무 특성상 화가 잔뜩 난 민원인을 상대해야 하는 국세공무원을 보살필 수 있는 방안도 납세서비스 향상과 함께 강구되어야 한다는 의견에 무게가 실리는 상황이다.
기획취재팀 : 이희정, 이현재, 류성철, 박지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