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는 '빈 양주병' 인터넷 매매 왜?

최근 해외여행을 하는 여행자들이 크게 늘면서 일명 '주(酒)테크'가 유행하고 있다.

면세점에서 싼 값에 구매한 양주 등 주류를 시중에 내다파는 것이다.

현행 법상 개인이 주류를 판매하는 것은 불법이지만 면세점에서 저렴하게 구매해 몇 만원만 더 얹어 팔아도 시중에서 사는 것보다 저렴해 이런 거래는 암암리에 꾸준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실제 포털사이트에 '양주 판매'를 검색해보면 개인적으로 양주를 팔고 싶다는 글을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 5월 A씨가 올린 게시물을 보면 '집에 있는 양주를 판매하려는데 오프라인 매입이나 온라인으로 판매할 수 있는 곳 알려주세요'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그 밑에는 '구매의사가 있습니다'라는 내용 등의 덧글이 6개가 달리는 등 거래를 하겠다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았다.

개인이 양주를 판매하고 싶다는 B씨가 올린 글에는 우리나라 최대의 중고물품 거래 카페인 '중고나라'에 올려놓으라는 친절한 안내까지 적혀있다.

□ '빈 양주병' 왜 매매될까 = '중고나라'에서 양주를 검색하면 양주 빈 병과 케이스를 판다는 글이 수두룩하게 올라와 있다.

개인이 주류를 판매하거나 주류판매업자라도 인터넷으로 주류를 판매하는 행위는 불법이기 때문에 카페 운영자가 양주를 판매한다는 글이 있으면 삭제하고 해당글을 올린 사람은 활동을 정지시키거나 강제로 카페를 탈퇴시킨다.

이에 '중고나라'에서는 양주 등의 주류를 판매한다는 글을 잘 찾을 수는 없지만 빈 병이나 케이스를 판매하는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글 내용은 크게 두 가지다.

빈 양주병이나 케이스의 가격을 올려놓고 판매한다는 내용과 빈 양주병과 케이스의 종류만 올려놓고 가격은 쪽지나 휴대폰으로 문의해달라는 내용이다.

쉽게 구할 수 있는 발렌타인이나 로얄샬루트 등 빈병 또는 케이스의 가격은 대개 1000원에서 3000원으로 형성되어 있지만 쉽게 구할 수 없는 주류의 경우에는 빈 병이라고 할 지라도 2만원 내외로 가격이 형성되어 있다.

빈 병의 가격을 적어놓은 글을 매개로 실제로 빈 병을 거래할 가능성이 높지만 이런 빈 병은 가짜 양주 제조 등을 위한 목적으로 활용될 소지가 큰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서울 강남경찰서는 지난 23일 유흥업소 웨이터들이 업자와 짜고 마시다 남은 양주에 저가 양주를 섞어 5400병을 판매한 일당이 무더기로 적발하기도 했다.

국세청은 모든 양주(위스키)에 진품인지 확인하기 위한 RFID(전자태그)를 제조업체가 의무적으로 부착하도록 하고 있지만 이번에 경찰에 적발된 일당은 RFID마저도 교묘하게 위조해 감쪽같이 속였다.

인터넷상 빈 양주병 거래가 현행법상 여러 정황을 고려할 때 범죄행위(가짜 양주 제조)에 악용될 가능성을 완전 배제하기도 힘든 것이다.

반면 '중고나라'에 빈 양주병의 종류만 올려놓고 가격을 올려놓지 않은 글들은 대개 진짜 양주를 판매하는 일종의 '꼼수'다.  

실제 김모씨는 '중고나라'에 올라온 글 중 빈 양주병을 판다는 사람에게 연락해 C양주가 있냐고 문의하자 상대방은 곧바로 제품 가격을 쪽지와 문자메세지로 받았다.

상대방은 김씨가 문의한 양주 외에 다른 주류들을 쭉 얘기하며 제품 판매에 열을 올렸다.

시중보다 싸게 주겠다며 가격으로 유혹하기도 했다.

김씨는 "개인이 올려놓은 양주는 면세가격이랑 비슷해 구매하는 사람이 많다"며 "양주를 판매하겠다고 인터넷에 올려놓으면 불법이기 때문에 대부분 양주 케이스나 빈 병을 판다고 올려놓는 것"이라고 말했다.

□ '단속권' 있으나 마나, 인력탓만 하는 국세청 = 주류 통신판매에 대한 단속권한은 국세청이 가지고 있지만 국세청은 이러한 실태에 대한 제대로된 상황파악은 물론 단속에 대한 의지가 그닥 크지 않은 모습이다. 인력이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주류 불법판매를 감시하고 단속하는 업무는 각 지방국세청 소비세계, 혹은 세무서의 소비세 담당 직원들 위주로 진행되지만 상시 모니터링을 하기에 현실은 녹록치 않다는 것이다.

각 지방청 소비세계 직원은 10명 내외이며 일선 세무서의 소비세 담당 직원은 1~2명에 불과하다. 이들은 주류 통신판매에 대한 단속 뿐 아니라 주류면허에 관한 사항이나 개별소비세, 소비제세, 교통세, 증권거래세 등 해야 할 일이 많다.

가뜩이나 일도 많은데 인터넷을 돌아다니며 불법판매를 감시할 '짬'이 없다는 것이다.

인터넷을 통한 각종 형태의 주류 거래가 판을 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국세청의 불법 주류 통신판매 적발 실적은 극히 미미한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청 관계자는 "각 지방청 소비세계에서는 주류 통신판매만 모니터링 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세와 관련한 업무를 하고 있어서 주류 통신판매를 상시적으로 모니터링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어 "현재 전통주는 통신판매를 허용하고 있는데 다른 주류도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주장이 많은 상황에서 규제를 강화하는 것도 힘들다"며 "엄격하게 처벌해야 하는 것이 맞지만 개인 간 거래는 사실상 처벌하기도 어렵고 통신판매를 강력하게 단속하기에도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국세청의 안일한 관리감독 실태는 잘못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단속권을 쥐고 있는데다 조금만 '기지'를 발휘한다면 인터넷상 횡행하는 불법 거래를 어렵지 않게 잡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고시를 통해 주류 통신판매를 막았으면 국세청이 이를 관리해야 한다. 인력이 없다고 단속을 안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현행 규정만 잘 활용해도 효과가 있을 것이다. 수차례 위반했을 경우에는 주류 판매 면허 취소 등의 강력한 제재도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