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앤장과 함께 하는 웰스 매니지먼트 산책] ④
민법상 상속의 한계 극복할 대안, 관련 세제정비 시급
상속, 엄청 어렵다. 피상속인은 재산의 다과(多寡)를 떠나 자녀들이 화목하기를 바라지만, 자녀들은 제 몫을 조금이라도 더 챙기려 불협화음을 일으키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나름대로의 가정사(家庭史)를 상속과정에 담아야 하는 사정까지 더해지면 상속은 더 골치 아픈 문제가 된다. 그래서 상속을 ‘인생을 정리하는 작업’이라 했으리라.
상속에는 이처럼 복잡한 문제들이 얽혀있는 탓에 민법의 고전적 방식으로는 이 모두를 해결할 수 없다. 민법이 상속방식과 내용을 매우 엄격히 정하고 있어 상속당사자들의 다양한 고민들을 민법의 한정된 틀 안에서 해결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상속신탁’은 그것의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아직은 상속신탁에 관한 이해가 부족하다. 상속신탁에 관한 논의가 2012년 7월 신탁법 개정 이후 본격화됐다는 점에서 아직은 생경하기 때문이다.
신탁법, 상속신탁제도 강화
신탁이란 위탁자가 신탁행위를 통해 수탁자에게 재산을 이전하고 수탁자는 수익자를 위해 신탁재산을 관리·처분하는 것을 말한다.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재산을 맡기고, 자기가 원하는 목적과 관리방법에 따라 그 재산이 사용되게끔 하는 것이 신탁인 것이다.
상속신탁을 활용하면 다양한 방법으로 재산을 물려주거나 사회에 환원할 수 있다. 법무부는 2012년 7월 신탁법에 유언대용신탁과 수익자연속신탁 관련조항을 신설, 상속신탁제도를 강화했다. 상속신탁을 통해 상속을 다양하게 설계할 수 있는 기초가 마련된 셈이다. 상속신탁에는 몇 가지 유형이 있다.
유언신탁은 유언으로 설정되는 신탁으로 사후신탁이라고도 한다. 생전신탁에 대응된다.
유언대용신탁은 위탁자의 사망을 조건으로 하여 수익자 등 제3자에게로의 재산이전효과가 나타나는 생전신탁이다. 유언대용신탁은 위·수탁자 간 계약에 의한 신탁이고, 단지 법적 효과만을 유언과 유사하게 발생시키는 것이다.
수익자연속신탁은 위탁자가 신탁행위로 수익자의 사망 시 수익권이 소멸하고 타인이 수익권을 새로 취득하게 하거나 순차적으로 타인에게 수익권이 귀속되게 하는 신탁이다.
신탁상품 이용한 상속 증가추세
상속에 신탁상품을 이용하려는 움직임이 늘어나는 추세다. 신탁법 개정 후 금융회사들도 유언대용신탁상품 개발과 마케팅 강화 등 상속신탁시장 확대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만큼 상속신탁의 이점이 높기 때문이다.
상속신탁 성립에 법률상 요건과 절차 필요 없어 = 민법은 유언의 요건과 방식을 엄하게 규정한다. 대법원도 법률상 요건과 절차가 준수되지 않은 유언은 원칙적으로 효력이 없다고 본다. 형식적 요소를 갖추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도 유언자의 유지(遺志)가 실행되지 못하거나 상속분쟁이 생기는 것이다. 반면 유언의 요건과 방식을 갖춰야 하는 유언신탁 외의 상속신탁은 성립에 있어 별도의 요건이나 절차를 요하지 않는다.
상속신탁은 다양한 재산승계 방법 설계 가능 = 민법의 전통적 상속방법은 상속재산의 즉시적 처분을 특징으로 한다. 상속재산이 상속개시와 함께 즉시 분할되고 소멸되더라도 이를 막을 뾰쪽한 수단이 없다. 전통적 상속의 한계는 피상속인이 가업을 승계시키려 할 때 특히 두드러진다.
그러나 상속신탁은 위탁자가 사망 후 상속재산의 귀속과 수익관계를 생전에 자유로이 정할 수 있어 다양한 재산상속과 가업승계 설계가 가능하다. 민법상 유증과 사인증여에 비해, 상속신탁을 통한 재산승계에는 피상속인(위탁자)의 의사가 보다 적극적·탄력적으로 반영될 수 있다.
수익자연속신탁은 수익자의 연속적 지정 가능 = 수익자연속신탁은 기존 수익자 사망 시 타인이 새로이 수익권을 취득하거나 순차적으로 타인에게 수익권이 귀속되도록 하는 것이다. 예컨대, 위탁자가 생전신탁을 설정하면서 자신의 사망 후 처와 자녀가 수익자가 되게 하고, 그 후 처와 자녀가 사망하거나 신탁에 정한 사유로 더 이상 수익을 받을 수 없게 되면 손자녀가 연속하여 수익자가 되도록 할 수 있다.
상속신탁으로 안전한 상속재산 유지·관리 = 사회환경의 변화에 따라 상속당사자들의 요구도 다양해지고 있다. 고령화로 고령자를 위한 생활보장과 재산승계가 강조되고 있고, 해외거주 자녀들이 늘어나면서 이들의 재산관리와 재산승계방안을 정치하게 마련할 필요가 생겼다. 미성년자녀의 상속에 대비, 안전한 재산관리와 생활보장방안을 마련할 필요는 물론, 장애우를 위해 공정한 재무적 후견인을 세울 필요도 있다. 상속신탁은 그 점에 강하다.
예견치 못한 사정 발생시 탄력적 대응방안 제공 = 유증이나 상속개시 당시 예견치 못한 사정이 사후(死後)에 생기면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상속신탁은 예견치 못한 사정에 탄력적 대응이 어려운 유증·상속과는 달리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게 한다.
위탁자에 대한 법적 분쟁으로부터 상속재산 보호 = 피상속인이 기업가이면 상속재산도 사업상 분쟁에 휘말릴 리스크가 상존한다. 이 리스크도 상속신탁으로 피할 수 있다. 신탁재산은 위·수탁자 모두로부터의 독립재산으로 취급되므로 위·수탁자의 일반채권자는 원칙적으로 신탁재산에 강제집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상속신탁의 활용가능성
상속신탁제도의 도입에 따라 민법의 고전적 상속제도로는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재산을 승계할 수 있게 되었다. 모두가 상속신탁의 장점 때문이다. 현실 속에서 상속신탁이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가를 가상의 사례를 통해 알아보자.
회사 오너 사망 시 후계자를 수익자로 하는 방안 = 오너가 자신의 주식을 생전신탁(유언대용신탁)함으로써 후계자에게 사업을 승계시키는 방안이다. 오너가 생존 중에는 자신이 수익자로서 경영권을 행사하고 사망 후에는 후계자가 수익권을 취득하도록 신탁을 설정하는 것이다.
이 경우 오너는 ‘수탁자에 대한 의결권행사지시권’을 통해 경영권을 온전히 행사할 수 있다. 유언집행이나 유산분할협의 기간 중에도 시간적 공백 없이 경영권을 승계할 수 있다. 다만 수탁자가 신탁업자이면 취득주식 중 발행주식총수의 15%를 넘는 부분의 의결권행사가 제한된다. 명심해야 할 대목이다. 사업승계에 상속신탁을 쓰고자 할 때 자본시장법 등 관련법규상 걸림돌이 될 규정은 없는지를 반드시 따져봐야 할 까닭이다.
상속인들의 경제 상태에 따라 수익을 배분하는 방안 = 같은 출발선에 선 상속인들이라도 세월이 흐르면 일부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이에 대비해 상속인들의 그때그때 경제상황에 따라 형편이 어려운 상속인이 수익자가 되게 하거나 상속인들의 경제적 곤란도에 비례하여 수익을 배분하는 신탁의 설정도 가능하다. 피상속인 사망 후 수십 년 이상 상속인들에게 일정 수준의 경제적 보장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속신탁에 관한 논의가 아직 일천하다. 그럼에도 이를 상속수단으로 쓸 가치가 큼은 분명하다. 민법의 고전적 상속제도가 해결하지 못한 것을 상속신탁이 커버하기 때문이다. 다만, 상속신탁의 역사가 2년도 채 안되고 제일 주요한 세제가 정비되지 않아 아직은 상속신탁의 적극 활용에 현실적 한계와 리스크가 있다. 따라서 상속신탁을 통한 재산승계를 위해선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미국이나 영국에서는 상속신탁이 매우 활발히 이용되고 있다. 우리도 상속신탁을 통해 순조로운 재산승계를 위한 요구가 충족되고 불측의 사고에도 상속인들이 경제적 안정을 누릴 수 있는 ‘상속신탁의 시대’가 머지않아 도래하리라 전망된다. 공동집필 박종욱·박민정 변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