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일보·김앤장 법률사무소 공동기획 시리즈]②
형식요건 미흡으로 발생하는 분쟁은 미리 방지해야
“새가 죽을 때는 그 소리가 슬프고 사람이 죽을 때는 그 말이 착하다.” 춘추전국시대 유학자 증자 말씀이다. 유언이 그만큼 진중하고 엄숙한 의식이라는 얘기다.
일상의 눈에는 유언이 재산을 놓고 자녀들이 다투지 말고 화목하게 지낼 것을 당부하거나 장례의 방법이나 장지를 결정하는 것과 같은 사후 신상문제로만 투영된다. 피안(彼岸)으로 시선을 돌리려는 유언자에게도 그런 문제들이 법률문제보다 더 크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법률의 관점에서는 유언의 법적 강제력은 법률에 정한 사항과 절차에 따른 경우에 한하여 인정된다. 민법에는 유언의 대상이 되는 신분법적·재산법적 행위가 열거되어 있다. 거기에 열거되지 않은 사항은 유언장에 유언으로 기재되었다 하더라도 법적 강제력이 부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민법은 유언의 요건과 방식을 엄격히 규정한다. 소정의 요건과 방식을 지키지 않은 유언에는 법적 강제력이 인정되지 않는다. 민법상 유언의 방식으로는 자필증서, 녹음, 공정증서, 비밀증서, 구수증서에 의한 유언으로 나뉘고, 민법은 각 방식 별로 그 요건과 절차에 관하여 상세한 규정을 두고 있다. 대법원도 법률상 요건과 절차가 준수되지 않은 유언은 원칙적으로 효력이 없다는 입장을 지키고 있다. 단지 형식적 요건이 갖춰지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유언자의 유지(遺志)가 실행되지 못하거나 상속인들 간에 분쟁이 발생하는 등의 낭패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유언자의 사망 후 어떤 절차를 거쳐 유언을 집행할 것인지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필자가 접한 질문들도 검인절차나 유언장 개봉절차 등 유언의 집행절차에 관한 것이 대종을 이룬다. 이런 현상은 해설서들이 유언의 효력이나 요건과 방식에 관하여는 상세히 다루고 있으나, 유언의 집행을 구체적으로 설명한 해설서는 흔치 않은 데서 기인된 것으로 보인다.
아래에서는 널리 쓰이는 자필증서 및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방식에 있어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형식적 요건과 유언집행절차 중 법원의 검인과 개봉절차를 소개하고자 한다.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
자필유언증서로 유언을 하는 경우 유언을 하는 사람이 유언증서 전문을 스스로 작성해야 한다. 유언자가 자서(自書)해야 하고 대필해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민법은 주소와 성명을 자서하고 날인할 것을 요건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판례는 주소와 성명은 누구의 유언인가를 알 수 있을 정도면 족하고 날인도 무인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식으로 너그럽게 해석한다. 유언자의 유지를 존중하여 되도록이면 유언의 효력을 널리 인정하기 위한 쪽으로 판례가 형성된 것이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작성 연월일이 필수적으로 기재돼야만 한다는 점이다. 기재된 작성 연월일을 기준으로 유언자가 스스로의 의사로 유언을 한 것인가의 여부, 즉 유언 능력이 있었는가를 판단하고, 다른 유언증서와의 사이에서 유언 성립의 선후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대법원 판례도 연월만 기재하고 일자를 기재하지 아니한 자필유언증서를 무효로 보고 있다.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의 장점은 증인이나 공증인이 필요하지 않고 비용도 들지 않으며 유언내용을 비밀에 부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언의 형식적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 유·무효에 관한 다툼이 많고, 위조나 변조, 가필 또는 은닉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단점으로 지적된다.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은 유언자가 증인 2인이 참여한 가운데 공증인의 면전에서 유언의 취지를 구수(口受)하고 공증인이 이를 필기·낭독하면 유언자와 증인이 그 정확함을 승인한 후 각자 서명 또는 기명날인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실무적으로는 유언자가 미리 작성한 초안을 공증인에게 보내면, 공증인이 유언공정증서 서식에 맞춘 초안을 준비하여 증인들과 유언자가 모인 자리에서 낭독하고 각자 서명 또는 기명날인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방식에 따라 유언하는 경우의 고민은 누구를 증인으로 세울 것인가이다. 유언에 따라 이익을 받게 될 사람과 그 사람의 배우자와 직계혈족은 증인이 될 수 없다. 미성년자, 피성년후견인과 피한정후견인 등도 증인이 될 수 없다. 이들을 증인으로 세운 유언이 무효임은 물론이다.
많은 판례들이 유언자가 의사능력이 있는 상태에서 유언을 했는가를 다루고 있다. 예컨대, 사망 6일 전 공증인이 공정증서 초안을 유언자에게 읽어 준 후, “주식과 부동산을 유증하겠느냐“는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자 배석한 수증자가 팔목을 붙잡아 서명케 한 경우 대법원은 의사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유언한 것으로 보고 무효로 판단했다.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은 공증비용이 발생하고 번거롭게 증인을 세워야 하는 단점을 안고 있다. 반면, 공증인이 참여하므로 유언방식에 있어 하자가 생길 가능성이 적고 유언장을 공증사무소가 보관하므로 위·변조나 분실의 우려가 없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의 경우에도 그 효력이나 적법성에 관한 분쟁이 생기는 경우가 많으므로 주의를 기울일 필요는 여전히 크다.
유언자 사망 후 검인과 개봉절차
민법은 공정증서에 의한 것 외의 유언의 경우, 유언자의 사망 시 지체 없이 법원에 유언장(자필증서, 비밀증서, 구수증서에 의한 유언)이나 녹음매체(녹음에 의한 유언)를 제출하여 검인을 받도록 하고 있다. 유언장의 검인절차는 가정법원에 유언증서검인신청서를 제출함으로써 개시되며, “유언자 아무개가 작성한 자필증서를 검인한다“는 취지의 재판을 구해야 한다.
신청서 접수 후 1개월 이내에 판사가 검인 기일을 지정, 신청인과 상속인들을 소환하여 해당 유언증서에 대한 이의 여부를 확인하고, 이의가 없으면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검인신청을 인용하는 결정을 하게 된다.
이 검인신청의 심리시 유언증서의 형식과 태양 등 유언의 외형적 ‘방식’에 대한 모든 사실이 조사·확인된다. 그러나 이 검인절차는 유언의 방식에 관한 사항을 조사·확인하는 절차일 뿐, 유언이 유언자의 진의에 의한 것인가의 여부나 적법 여부를 최종 결정하는 절차는 아니다. 추후 다른 소송을 심리하는 법원이 새롭게 제출된 증거 등에 기초하여 유언의 유·무효 여부를 달리 판단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한편, 민법과 가사소송규칙은 가정법원에 의한 유언증서 개봉시 반드시 유언자의 상속인, 그 대리인 기타 이해관계인을 참여토록 하고 있다. 필자가 받은 질문의 상당수가 검인 및 개봉절차를 지키지 않은 경우의 유언이 무효인가에 관한 것이다. 대법원판례는 유언이 유언자의 사망에 의하여 바로 효력이 발생한다는 점에서, 검인이나 개봉절차를 거치지 않더라도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 유언의 유·무효만을 놓고 보면 검인 및 개봉절차는 생략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이처럼 검인 및 개봉절차를 거치지 않더라도 유언이 곧바로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나, 분쟁에 대비하기 위하여는 검인 및 개봉절차를 준수하는 것이 혹시 생길 수도 있는 낭패를 막는 지름길이다. 검인사건의 심리 시 판사는 유언의 방식에 관한 모든 사실을 조사하여 조서를 작성하고, 관련자들을 소환하여 유언장을 개봉한다. 그런 만큼, 검인과 개봉절차를 밟아 놓으면, 추후 분쟁발생시 유언이 형식적 측면에서는 적법하게 성립했다는 논거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분쟁을 예방하고 분쟁 발생 시 유언이 무효가 됨을 방지하기 위해 검인과 개봉절차를 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매년 4월 1일을 ‘유언의 날’로 제정하자는 제안이 나와 화제가 되고 있다. 미리 죽음을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 보자는 것이다. 생전에 잘 숙고하여 유언을 하는 것이 인생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방법의 하나임은 틀림없다. 유언의 요건과 집행에 관하여 기본적 상식을 갖추어 두되, 형식요건 미흡으로 유언이 무효가 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유언을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유언, 그것은 인생을 마감하는 장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후대를 통한 영생(永生)을 시작하는 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공동집필 최재혁·이재학 변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