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일보 김앤장법률사무소 공동기획 시리즈] ①
민법 개정안, 배우자 선취분 유언에 우선하여 인정
혼인문화 변화, 사전 증여 증가 등 후폭풍 예고
어떤 TV가족프로그램에 출연한 중학생이 "지금까지 가정이 유지된 데는 엄마의 공이 컸기 때문에 재산도 반반으로 나눠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본 기억이 난다. 당돌하지만 가족간 재산분배 특히, 부부간 재산소유관계와 분배에 관한 사회적 인식이 변하고 있고, 그것이 부부 당사자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의 관심사가 되었음을 실감케 한 대목이다.
최근 많은 관심을 끌고 있는 ‘배우자 선취분’ 관련 민법(상속편) 개정안도 이 같은 인식의 연장선상에 있다. 법무부가 아직 개정안의 구체적 내용을 발표하지는 않았으나, 그 핵심은 생존배우자가 혼인기간 중 증가된 재산에서 채무를 뺀 가액의 50%에 상당하는 재산, 즉 ‘선취분’을 다른 상속인에 우선하여 취득한다는 것이다.
50% 선취분이 덮어놓고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구체적 재산형성경위, 배우자의 생활보장, 혼인기간 등의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재혼한 경우 재혼 이후 증가된 재산이 선취분 산정대상이 된다. 오랫동안 혼인관계를 유지했다고 하더라도 부부 사이가 좋지 않아 별거한 경우라면 선취분은 줄어든다. 선취분과 관련하여 상속인들간 협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최종적으로 법원이 결정하게 된다.
법정상속분을 규정한 현행 민법 제1009조 제2항은 배우자는 자녀의 상속분보다 50%를 더 받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개정안 하에서는 배우자에게 상속재산의 50%가 우선 배분되고 남는 재산이 현행 상속지분대로 배우자와 자녀에게 분배되므로 배우자의 상속분이 현재보다 크게 증가한다.
개정안은 ①고령화가 진행되고 자녀의 부모부양을 기대하기 어렵게 됨에 따라 혼자 남은 배우자의 노후생활을 보장해 줄 당위성이 커지고 ②상속재산에는 실질적으로 배우자 지분이 존재하는 반면 과거와는 달리 자녀가 부모의 재산형성에 기여한 경우가 거의 없다는 현상을 반영한 것이다. 상당수 유럽국가도 선취분과 유사한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이 개정안의 내용이 알려진 후 많은 질문이 쇄도하고 있다. 특히 기업가들이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경영권 승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관해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필자가 받은 질문들을 중심으로 개정안의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 배우자 몫의 증가
현재 부부 일방이 사망한 경우(배우자와 자녀 1인이 있는 경우 가정) 배우자는 60%의 재산을 상속받는다. 배우자와 자녀의 법정상속비율은 1.5대 1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배우자에게 50%가 우선 분배되므로 배우자가 상속받는 재산은 80%로 증가한다. 배우자가 재산형성과 유지•관리에 기여한 것을 고려하여 재산을 공동 소유하거나 각각의 소유로 하여 두는 경향을 감안한다면 배우자 지분은 증가한다.
예컨대 자녀 1명을 둔 부부가 10억원 상당의 아파트를 공동명의로 소유하고 있다가 배우자 일방이 사망한 경우를 보자. 개정안을 단순 적용하면 생존한 배우자는 종전 본인이 보유하던 아파트 지분(50%) 5억원에 더하여 나머지 아파트 지분(50%) 중 선취분(50%)으로서 2억 5천만원과 법정상속분(60%)으로서 1억 5천만원 취득하여 결과적으로 아파트 지분 90%에 해당하는 9억원을 소유하게 된다. 물론 부부가 이미 아파트를 공동재산으로 하고 있던 점을 고려한다면 생존 배우자가 실제 취득할 선취분은 감액될 수 있다.
• 선취분 산정대상 재산
개정안에 따른 선취분 산정대상 재산은 "피상속인이 혼인기간 동안 취득한 재산에서 채무를 공제한 것"이다. 그러나 선취분 산정대상재산에 포함될 재산을 가려내는 것이 쉬운 문제만은 아니다. 구체적으로 혼인 중 상속이나 증여를 통해 취득한 재산, 혼인 전부터 보유하고 있던 재산의 가치상승분이나 그 재산에서 생긴 과실(부동산 임대료, 예금이자), 혼인 전부터 보유하고 있던 재산을 처분하고 취득한 재산 등이 선취분 산정대상재산에 포함될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상속인간에 상속재산 분배에 관한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 법원은 부부의 혼인기간, 재산형성경위 및 자녀 연령 등 구체적∙개별적 사정을 고려하여 선취분 산정대상을 결정할 수밖에 없다. 이혼 시 재산분할 및 상속재산분할의 예에 비춰 보면, 법원은 후견적 입장에서 가정평화와 사회정의를 위해 가장 합리적으로 당사자간 법률관계를 조정할 수 있는 방안을 찾게 될 것이다. 선취분 지급과 반환방법 역시 법원에 의해 결정될 몫이다.
• 선취분과 유언 및 유류분
개정안은 선취분을 침해하는 유언은 무효로 본다. 유언은 선취분을 넘지 않는 재산에 관하여만 효력이 인정된다는 얘기다. 배우자와 자녀 3명이 있고, 상속재산으로 9억원이 있는 사례라면 생존 배우자의 선취분 4억 5천만원은 변함없고 나머지 재산에 대해서만 유언이 적용된다. 자녀 3명에게 全재산을 상속한다는 유언이 있다 하더라도, 선취분을 제외한 4억 5천만원만이 유언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다만 이 경우에도 생존 배우자는 선취분 외에 법정상속분인 1억 5천만원(4억 5천만원X1.5/4.5)의 절반인 7천 5백만원을 유류분으로 받을 수 있다. 민법이 유언에 의해 상속이 배제된 가족에게도 법정상속분(배우자 1.5, 각 자녀 1)의 절반을 유류분으로 주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 사례의 경우 현행 민법에서는 유언에 따라 상속에서 배제된 생존 배우자는 1억 5천만원의 유류분을 주장할 수 있다.
• 경영권 승계 구도의 변화
개정안에 따라 선취분이 인정되면 생존 배우자가 상속받을 회사지분이 커지고 그에 따라 회사경영에 대한 영향력이 커짐은 불가피하다. 종래 기업가는 유언을 통해 자신이 지정한 자녀에게 경영권을 승계시켰으나, 개정안에 따르면 유언만으로는 자녀에게 경영권을 승계하는 것이 어려질 수 있다. 유언이 배우자의 선취분을 침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기업가가 유언으로 자신의 재산(부동산과 회사주식 각 50억원) 전부를 자녀에게 주기로 한 경우 배우자는 자녀를 상대로 선취분 반환을 요구할 수 있음은 물론 법정상속분의 2분의 1에 해당하는 유류분의 청구도 가능하다. 이처럼 생존 배우자가 회사의 경영권을 적극 행사하려 하면 다른 상속인이 이를 대놓고 막기는 어렵다.
물론 기업가는 생전에 재산을 증여함으로써 경영권 승계를 꾀할 수 있다. 개정안이 생전 증여의 경우에 관하여는 별도로 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나아가 기업가는 선취분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유언을 통한 경영권 승계를 모색할 수도 있다.
앞선 사례에서 기업가가 선취분을 고려하여 50억원의 부동산은 배우자에게, 경영권을 수반한 50억원의 회사주식은 자녀에게 분배하는 것으로 유언하는 것은 가능하다는 것이 대체적인 의견으로 보인다. 이런 식의 유언은 선취분을 침해하지 않아 유효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론 유류분은 별도이다. 어쨌든 재산상속이나 경영권승계를 위해 고려될 변수들이 많아졌음은 분명하다.
• 혼인 문화의 변화
개정안 하에서는 구체적 선취분의 크기가 혼인기간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재혼한 경우 선취분 대상은 재혼 이후의 취득재산에 한정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행제도와 비교할 때 배우자에게 상속되는 재산이 커지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일각에서는 상속재산이 다른 집안으로 흘러갈 것을 우려한 가족들이 부모의 재혼을 반대할 것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선취분을 포함한 재산을 상속받은 새아버지(새어머니)가 사망하면 그 재산이 새아버지(새어머니)의 자녀에게 상속되는데, 이는 상식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녀들의 이 같은 반대로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동거를 택하는 경우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도 있다.
• 선취분에 대한 세금
선취분 역시 상속재산이므로 원칙적으로 상속세 과세대상이다. 다만, 선취분이 부부간 공유재산의 청산(원래 소유자에 대한 반환)과정이라는 시각에서 본다면 선취분제도는 증여세를 부과하지 않는 이혼 시 재산분할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또한 선취분이 고령의 생존 배우자의 생계를 위한 제도라는 점을 감안하면,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 것이 정책적 관점에서 타당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결국 선취분에 대하여 상속세를 부과할 것인가는 명문규정을 두어 해결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개정안에 대해 피상속인의 유지(遺志)보다 법을 앞세움으로써 개인의 재산권행사를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비판이 있다. 외국과 달리 혼인 중에 한해 부부간 재산계약을 인정하고 있고 기존 유류분제도가 있음에도 선취분을 추가로 인정함은 재산처분권을 지나치게 제한한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소위 황혼재혼의 경우 재혼한 배우자와 상속인인 자녀간의 분쟁과 불화가 있을 것이라는 비판도 있고, 재계를 중심으로 배우자의 경영권승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2006년 상속재산의 50%를 배우자가 우선 상속하는 내용의 개정안이 입법예고 됐으나 개정되지 못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노령의 생존 배우자 생계를 보장하고 배우자의 실질적 공동재산을 분배해야 한다는 개정안의 취지가 1990년 이후 24년간 개정되지 않고 지금에 이른 민법 상속분조항에 관하여 일응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음 또한 부인할 수 없다.
개정안을 둘러싼 논란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법과 제도를 도입하고 이에 적응하는 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분쟁 없는 상속을 원한다면, 개정안에 미리 대비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유비무환, 그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기 때문이다. 공동집필 김용상·이송호 변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