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상속↓, 소득·부가↑…부자감세 2라운드 '촉매'
통일세, 탄소세 등 미래현안 제시…내용은 '속 빈 강정'
23일 세제당국, 기획재정부가 국책연구기관(조세재정연구원)에 거금을 들여 용역을 발주해서 만든 '중장기 조세정책 방향' 보고서가 공개됐다.
겉으로는 연구원의 이름을 빌린 것이지만, 보고서 구체적인 내용들은 사실상 정부 '입김'이 상당부분 반영됐다는 평가다.
이는 그동안 정부가 각종 주요 조세개편 전 조세재정연구원(舊 조세연구원)의 이름을 빌어 각종 보고서를 낸 사례에서도 쉽게 유추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동안 연구원은 증세-감세 정책을 불문하고 정부의 정책추진 이전에 원동력을 부여하는 ‘지원사격’용 보고서를 수차례 발표해 온 전례가 있다.
이번 보고서 또한 중장기 조세정책 방향성을 설정한다는 나름대로 신선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지만, 그 내용을 살펴보면 그동안 정부가 밝혀왔던 내용의 '되새김질'에 불과하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번 보고서가 정부와 연구원의 예상과 달리 정치권과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새로운 '증세(增稅)-감세(減稅)' 논쟁의 시발점이 될 소지가 다분해 보인다는 것이다.
□ "아직은 파이를 키워야 할 때"…정부 전략수정 시발점? = 일단 보고서를 아우르는 기조는 분명해 보인다. 아직까지 우리나라 조세정책의 중심이 분배보다 성장에 둘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그 사유로 우리나라 세제의 소득분배 개선효과가 주요 선진국의 절반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며 계층 간 소득격차가 금융위기 이후로 점차 더 커지고 있다는 사실을 논리로 내세웠다.
이어 북유럽과 미국, 일본 등의 사례를 들며 선진국과 후진국의 기준이 소득분배와 형태에 있지 않다는 사례도 부연했다. 특히 최근 경제민주화 이슈 등과 연계된 '분배'의 문제를 '사회적 선택'사항으로 지적한 부분은 다분히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
보고서는 그러면서 고소득층과 자본소득에 대한 중과세는 경제성장과 투자를 저해한다는 입장을 제시했다. 얼핏 어려운 논리구조이나 결과적으로 아직 우리나라 조세정책은 분배보다는 성장에 방점을 둘 필요가 있다는 점을 부각시킨 셈이다.
보고서 한 구석에 보이는 '경제의 파이를 최대한으로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은 이런 논리적 흐름과 궤를 같이 한다.
이를 두고 최근 정부가 정책기조를 출범 초기 경제민주화 중심에서 성장 중심으로 방향성을 바꾼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연구원 측은 이번 보고서가 이와 연관성이 없다는 입장이나 발표 시점 등을 고려할 때, 순수하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측면도 있는 게 사실이다.
□ '부자감세-서민증세' 논쟁 재발의 씨앗(?) = 보고서가 제시한 주요 세목별 조세정책 운용계획도 향후 정치권 안팎에서 상당한 논란거리를 낳을 가능성이 다분해 보인다.
보고서는 전체적으로 기존 OECD(경제개발협력기구)의 권고사항을 대체로 수용한 모양새다.
기업경쟁력 확보와 경제성장에 저해가 될 수 있는 법인세 체계 및 상속세 제도를 성장친화적으로 개편하되 상대적으로 세율이 낮거나 세수비중이 낮은 거래세(부가가치세), 소득세를 우선 인상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보고서 전반의 맥락이다.
하지만 이는 최근 침체된 경기상황에 따른 서민들이 느끼는 체감심리를 고려할 때 상당히 동떨어진 내용이라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특히 부가세 등 간접세 인상논의는 대기업, 고소득층에 대한 선제적 증세를 요구하는 야권의 논리와도 정면충돌할 뿐만 아니라, 표심(票心)에 영향을 받는 여권도 온전하게 수용할 수 없는 정쟁의 소재가 될 가능성이 높은 카드다.
이는 지난 대선 당시, 여권 경제민주화 논의를 주도했던 김종인 전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이 장기 복지재원 확보 차원에서 부가세율 인상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밝힌 지, 불과 하루 만에 "사견(私見)"이라며 선을 그은 사례에서도 입증되는 부분이다.
또 당시 국민의 정부 재정경제부(現 기획재정부) 장관을 역임했던 강봉균 前 의원 등 일부 관료출신 인사들도 재정여력 확보 차원에서 부가세 인상을 거론했지만, 차가운 여론에 밀려 제대로 이슈화되지도 못했다.
그만큼 부가세 인상은 상당히 민감한 내용이다.
경기여건상 기업경쟁력 확보 차원의 법인세제 개편은 타당한 측면이 있지만, 재원확보 방법론에 있어 국민개세주의(國民皆稅主義)를 언급하며 소득세 과세범위 확대, 부가세율 인상 등 서민층의 세금 인상 가능성을 거론한 부분은 두고두고 반대여론에 회자될 가능성이 농후해 보인다.
자칫 그동안 잠잠했던 '부자감세-서민증세' 논란을 부추길 소지가 다분하다는 얘기다.
아울러 국민적 관심사인 부동산, 즉 집 값 관련된 세제에 있어서도 거래비율을 높이기 위해 취득세를 낮추는 대신, 보유세인 재산세를 올릴 필요가 있다는 권고안은 전형적인 '조삼모사' 정책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부분이다.
이밖에도 보고서는 탄소세, 통일세 등 장기적인 관점의 세제 이슈에 대해서도 언급했지만, 구체적인 방법론과 해결책 보다는 단순한 문제제기에 그쳐 '속 빈 강정'에 불과하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