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청문 과정에서 부부간 이중 소득공제, 허위 차용증 통한 증여세 탈루의혹, 사외이사 보수 소득탈루의혹, 논문중복게재 의혹 등 각종 의혹이 제기된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 내정자가 지난 20일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고 장관으로 공식 임명됐다.
숱한 의혹이 제기됐음에도 민주당 등 야당이 '부적격' 의견을 첨부했을 뿐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인사청문 경과보고서를 채택했고, 대통령은 당연한 듯 임명권을 행사했다.
현행 인사청문제도가 어차피 인사청문이 불발되더라도 대통령 직권으로 장관임명이 가능하다지만, 이번에 제기된 다양한 의혹은 장관직을 수행하기에는 부적절할 만큼 해명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이중 소득공제 부분은 이달곤 장관 스스로도 "법을 위반한 것에 대해 치명적으로 생각한다"며 법 위반사실을 인정했고, 문제가 제기되자 뒤늦게 152만원의 세금을 정산해 납부했다고 밝혔다.
이 장관 스스로 인정한 '치명적인'(?) 법 위반 내용은 다름 아닌 대부분의 근로자들이 연말마다 하고 있는 '연말정산 소득공제'이다.
서울대 교수인 이 장관과 성신여대 교수인 부인 정某씨는 연봉이 각각 1억원에 가까운 맞벌이 부부여서 배우자 공제를 받을 수 없음에도 지난 2006년에는 양쪽 모두 배우자공제를 받았고, 2007년에는 부인 정씨가 배우자 공제를 받았다.
또 지난 2004년에는 막내아들에 대한 부양가족공제를 이 장관과 부인이 중복으로 받았다. 자녀나 부양가족에 대한 공제는 부부 중 한쪽에서만 받을 수 있다.
이 장관측은 '실수'라고 하지만 배우자 공제의 경우 그 이전인 2004년과 2005년에는 두 사람 모두 신청조차 하지 않았던 점에서 매년 해오던 연말정산 중 인적공제부분만 갑자기 실수로 틀리게 체크했다는 점은 같은 근로소득 납세자들에게 신뢰를 주기 어려운 부분.
□ 이중소득공제 장관들도 몰랐다(?)
이중소득공제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 것은 이번뿐만이 아니다. 특히 장·차관급 인사청문회에서 이중소득공제에 대한 의혹은 단골메뉴였다.
불과 1년 전인 2008년 2월 27일, 이명박 정부 초기 내각이 구성될 당시 통일부 장관에 내정된 남주홍 경기대 교수는 2002년부터 무려 6년동안 연말정산에서 자녀 교육비 4800만원을 이중공제 받은 의혹이 사실로 밝혀졌고, 남 교수 역시 이 장관처럼 당일 오전에 탈루한 세금 1500만9106원을 뒤늦게 납부했다.
결국 가족의 이중국적문제, 부동산 투기 및 축소신고 의혹 등이 추가되면서 남 교수는 스스로 사퇴하기에 이르렀고, 당시 그는 사퇴 해명을 통해 "6년간 이중공제를 받았다는 사실을 보도를 통해 알게 돼 송구스러우며, 연말정산의 유의점을 숙지하지 못한 선의의 무지와 어이없는 실수를 인정한다"고 밝혔다.
이 장관과 같이 무지해서, 몰라서 그랬다는 것.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지난 2006년 2월에는 유시민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 내정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도 이중소득공제 문제는 화두가 됐다.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은 당시 "유 내정자가 자신의 배우자가 인하대 등으로부터 받은 소득에 대해 기본공제와 소수자 추가공제까지 신청했음에도 자신의 연말정산 서류에 배우자를 기본공제 대상으로 신고해 이중으로 소득공제 신청을 했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또 같은 시기 인사청문회를 거친 이택순 당시 경찰청장 내정자도 연간 500여만원의 소득이 있는 부모를 2000년 이후 연말정산 소득공제 대상에 포함시킨 중복공제 사실이 확인돼 도덕성 논란을 겪었다.
당시 이 내정자 역시 "부모의 추가 소득공제 포함 부분은 소득세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발생한 일"이라며 '무지'에서 비롯된 잘못임을 강조한 바 있다.
□ '고의'에 의한 부당공제인가 '무지'에서 비롯된 실수인가
당사자들이 박사체면을 구기면서도 '무지'에 의한 실수임을 강조하고 있지만 의문점은 남아 있다. 이 장관의 경우 가장 의문이 되는 것은 2004년과 2005년에는 배우자 공제를 신청하지 않고 정상적으로 해 왔던 것을 2006년과 2007년에는 갑자기 배우자 공제를 신청한 사실이다.
부당공제가 확인될 경우 국세청은 원천징수의무자인 회사에 우선 추징을 하기 때문에 회사에서도 기본적인 실수부분은 체크하게 된다.
또한 대부분 대학에서도 일반 회사와 같이 경리담당자들이 있고, 때문에 경리담당자들이 연말정산 서류를 취합하는 과정에서 이런 단순한 공제사실에 대해서는 본인확인을 거치게 마련이기 때문에 실수조차 쉽지 않다는 것.
실제로 A기업 경리 담당자는 "배우자공제의 경우 서로간에 사인이 안 맞아서 실수를 할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이달곤 장관 내정자의 경우 2004년과 2005년에 매년 각각 정상적으로 해오다가 갑자기 2006년에만 다르게 적용했다는 점에서 고의일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며 "직장에서 경리담당자들이 놓칠 수도 있겠지만 체크가 그렇게 됐다면 고의적일 수 있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반면 실수에 의한 이중공제를 너무 과도한 법 위반으로 몰아간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납세자연맹의 김선택 회장은 "배우자공제 등 이중공제의 경우 고의적으로 받았다기보다는 복잡한 세법을 이해하지 못해서 실수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며 "박사나 지식인이라고 해서 소득공제 관련 세법을 다 알고 있으란 법은 없다. 국가가 세금을 거뒀다가 연말에 다시 환급해주는 복잡한 세법을 만들어 놓고선 국민들에게 중복공제니 뭐니 하는 틀까지 씌우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영수증을 허위로 기재하거나 조작해서 공제를 더 받거나 하는 것은 처벌받아 마땅하지만 복잡한 세법 때문에 몰라서 부당공제된 부분은 오히려 국가가 책임질 부분이라는 것.
□ 일반인도 이중공제 '수두룩'
유명대학 교수쯤 되는 박사급 인재들도 몰라서(?) 그랬다는 이중공제라면 일반인들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이중공제를 하고 있을까?
국세청은 지난 2003년 11월, 2001년 귀속분 근로소득 연말정산 내용에 대해 사후관리를 실시해 본 결과, 앞서 장관 내정자들처럼 인적공제를 잘못 적용하거나 부실영수증을 사용한 사례를 포착했다.
의료비공제의 경우 근로자가 의료기관의 백지영수증으로 지출액이나 질병명을 직접 기재하는 등 770개 의료기관에서 1만2600건의 영수증 부실처리가 적발됐으며, 기부금공제를 조작하기 위해 교회·사찰 등 일부 종교단체나 복지단체에서 허위 기부영수증을 판매하거나 근로자가 컴퓨터로 기부영수증을 조작하는 행위도 확인됐다.
2001년 귀속분의 경우 국세청이 보유한 전산자료의 검색으로만 배우자나 부양가족공제, 기부금공제, 의료비공제, 교육비공제, 보험료공제, 연금기여금 공제 등 7개 공제항목에서 무려 19만명의 부당공제자가 확인돼 195억원을 추징했다.
이에 따라 국세청은 2003년 귀속분부터는 기획세무조사 등 철저한 사후관리를 하겠다고 밝혔으며, 2004년에도 2001∼2003년 귀속 연금저축공제 성실도 분석에서 대부분 위변조 영수증으로 공제받은 5만건(4만명)의 부당공제를 확인했으며, 2002∼2003년 귀속 배우자소득공제를 부당하게 적용받은 38만건(30만명)을 적발해 총 400억원의 세금을 추징한 바 있다.
□ 해마다 발생하는 부당공제, 국세청은 뭘 하나
이중 부당공제가 정말 실수이든 아니든 이 장관처럼 부당공제를 받고도 세정당국이나 당사자조차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은 모든 연말정산 관련 전산자료를 취합해 관리하고 있는 국세청의 검증시스템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수십만명의 부당공제자가 적발되는 동안 유독 장관후보자들만 검증을 피해간 것일까.
문제는 국세청의 연말정산 검증시스템에 있었다.
국세청이 연말정산 부당공제를 적발하기 위해 거치는 검증시스템은 크게 2단계로 나뉘는데, 우선 1차로 국세청통합전상망의 전산스크린을 통한 검증작업을 거치고, 이후 1차 검증결과 혐의자에 대한 2차 세부검증을 실시하고 있다.
허점은 1차 검증에서부터 드러난다.
국세청의 1차 전산검증은 20여개 연말정산 공제항목 중 매년 1∼3개 공제항목에 대해서만 집중되기 때문.
예를 들어 올해는 '보험료공제' 분야에 대해 검증한다는 식으로 항목이 결정되면, 1300만명의 연말정산 자료 중 보험료공제부분을 집중 적으로 전산스크린 한 후 여기에서 부당공제 사실이 의심되는 적발사례에 대해서는 다른 공제분야에까지 부당공제 여부를 확인한 후 일선 세무서를 통해 추징한다는 것.
실제로 2008년에는 교육비공제부분이 국세청의 검증대상이었다.
국세청 관계자는 "통상 3년치를 보는데 연도별로 어떤 공제항목을 검증할지를 선택해서 검증을 실시하고 있다"며 "작년에는 교육비 공제에 대해 검증이 진행됐다"고 말했다.
영세법인을 제외한 98%의 법인에 대한 원천징수자료를 전산으로 취합하고 있는 국세청이 이들 정보를 전산스크린 하는 것만으로도 부양가족공제 등 단순한 부당공제를 골라낼 수 있지만 전산검증 자체가 이처럼 매년 특정항목을 중심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1차 검증 대상이 아닌 공제부분에는 허점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매년 부당공제자를 적발해 발표하던 국세청이 지난 2005년부터 방식을 바꾼 것도 이런 자체조사 허점과 한계를 알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2005년 1월 국세청은 2004년 귀속분 연말정산에서 착오 등으로 부당하게 배우자 공제를 받은 10만명을 적발했지만 곧바로 추징하지 않고, 그 해 종합소득세 신고기한(5월말)까지 해당 근로자에게 사실을 안내하고, 스스로 자진 신고·납부할 수 있도록 기회를 부여했으며, 이후부터는 부당공제 적발현황도 공개하지 않았다.
종전에는 부당공제 혐의 근로자의 원천징수의무자(회사)에게 부당공제 사실을 통보해 세액을 추징했지만 회사측의 번거로움과 근로자의 신분상 불이익 등이 발생한다는 납세자들의 항의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 국세청 "토털시스템 구축 중"‥부당공제 해결될까
국세청은 이같은 검증시스템의 한계에 대해 인정하면서도 근로자 본인에 대한 도덕성을 강조하고 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연말정산이 끝나고 전산시스템에 반영이 될 때까지는 5월말 종합소득세 신고이후 최종작업을 거치는 등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며 "1300만명의 근로자가 있는데 예를 들어 5만원의 세금을 더 받아간 것을 일일이 찾아서 추징하기에는 인력문제나 일의 중요도 측면에서 한계가 있다"고 전수조사에 대한 인력이나 시스템 한계를 언급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근로자 각자가 연말정산을 하기 때문에 원천징수의무자인 회사는 잘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는 본인이 체크한 대로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점검에 한계가 있다"며 근로자 개인 각자의 도덕성문제에도 무게를 뒀다.
국세청은 현재 표본조사의 허점을 해결하기 위해 20여개의 전체 공제항목을 한번에 전산검증할 수 있는 '토털시스템'을 구축중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모든 전산검증을 할 수 있는 토털시스템을 금년중에 개발하려고 한다"며 "개발에는 특별한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토털시스템이 구축되고 20여개 소득공제항목에 대해 일시에 전산검증을 거칠 경우 배우자 중복공제와 같은 기초적인 부당공제는 1차검증에서도 충분히 걸러질 수 있게 된다.
그러나 토털시스템이 개발되더라도 적발된 사례에 대한 추가검증에는 일선 세무서 직원들의 발품이 필요하기 때문에 고의성 여부를 100% 확인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국세청의 설명이다.
조세연구원의 한 선임연구위원도 "어떤 제도이든 100% 완벽할 수는 없다. 시스템에서 전부 걸러진다고 보긴 어렵다"며 "이중공제문제는 실수도 있을 수 있겠지만 고의적으로도 할 수 있을 텐데, 예를 들어 가짜 병원비 영수증을 만들어서 공제를 신청한 것을 모두 밝혀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