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 출신 대통령, 판사 출신 장관 그리고 "의회주의 포기(?)"의 당혹감

국회, 이상민 장관 탄핵소추안 의결

이상민 "국민이 국회에 위임한 권한, 취지에 맞게 행사돼야"

대통령실 "의회주의 포기, 의정사에 부끄러운 역사로 기록될 것"

8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상정됐고, '재적 293명 중, 찬성 179명, 반대 109명, 무효 5명'으로 통과돼 이 장관은 헌법재판소의 탄핵결정이 있을 때까지 직무가 정지된다.

국회의 탄핵소추안 의결에 대해 이 장관은 "국민이 국회에 위임한 권한은 그 취지에 맞게 행사되어야 한다"며 "초유의 사태가 가져올 국민안전 공백 상태가 최소화되기를 기대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판사 출신인 이 장관이 헌법에 규정된 국회의 권한인 '탄핵소추권' 행사에 대해 취지에 맞지 않는 행사라고 에둘러 비판한 것으로 해석된다.

또 국민안전의 1차적 주무부서인 행안부장관의 직무정지에 따른 공백 상태를 우려하고 있는 점에서 국정조사 과정에서 보여줬던 이 장관의 책임회피성 발언을 떠올려보면 어딘가 부조화스러운 듯 보인다.

대통령실 역시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이 있은 후 밝힌 입장문에서 "의회주의 포기이다. 의정사에 부끄러운 역사로 기록될 것"이라는 다소 강한(?) 어조의 비판 입장을 내놓았다.

대통령실이 밝힌 '의회주의 포기'에 대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대통령실 관계자는 '어떤 의회주의를 의미 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통령, 의회, 사법부도 헌법과 법률에 따라야 한다"고 전제하면서 "(이상민 장관이) 어떤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는지 아직까지 드러난 게 없다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나라가) 삼권분립 체제로 이뤄지는데 한축에서 헌법, 법률에 따라서 국정행위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다른 한축에서 잘 잡아주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추상적인 대답이어서 해석의 문제가 남아있지만, 아마도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이 장관의 헌법과 법률 위반 행위가 드러나지 않았으니,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이 부당하고, 따라서 의회주의를 포기(?)한 것으로 보는 것 같다.

대통령실은 또 '대통령 명의나 대변인 명의가 아니다'는 지적에 "국무위원 탄핵안 의결은 굉장히 중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대통령실' 전체의 입장으로 내는게 좋겠다고 판단했다"는 답을 내놓았다.

역시 해석의 문제가 남아있지만, 대통령의 의중이 강하게 들어간 게 아닐까하는 추론이 가능해 보인다.

대통령실 관계자가 '의회주의'의 기본 개념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의회주의' 정의에 대해 두산백과에서는 '국가의 최종적인 정치적 결정이나 법률의 제정을 의회에서 다수결의 원리에 따라 행하는 정치방식 및 그 입장'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위 정의에 비춰 이번 국회의 이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안 의결이 과연 대통령실의 주장처럼 '의회주의 포기'에 해당하는지를 살펴보자.

우리 헌법(제65조)은 '대통령과 국무총리, 국무위원과 행정각부의 장, 헌법재판소 재판관과 법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 감사원장과 감사위원 기타 법률이 정한 공무원 등' 고위 공직자의 탄핵소추권을 국회에, 탄핵결정권을 헌법재판소에 부여하고 있다.

이해를 위해 형사법적으로 비유해 보면, 어떤 범법자에 대한 기소를 검사가 하고, 재판을 법원이 하는 것과 비슷하다. 기소를 담당하는 검사 역할을 국회가, 재판 권한을 법원이 갖는 것처럼 탄핵결정 권한을 헌법재판소가 갖는 구조다.

국회가 제출한 이 장관에 대한 44페이지 분량의 탄핵소추안에는 '탄핵심판'에 대해 "일반적인 사법절차나 징계절차에 따라 소추 또는 징계하기 곤란한 행정부의 고위공직자나 법관 등과 같이 신분이 보장된 공무원이 직무상 헌법 또는 법률 위배행위를 한 경우 그에 대한 법적 책임을 추궁하여 파면함으로써 침해된 헌법질서를 회복하고 수호하기 위한 절차"라는 헌재 결정문을 인용하고 있다.

이어 "현실적으로 고위공직자인 행정안전부장관이 국가공무원법상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징계사유에 해당하는 행위를 한 경우, 이에 대한 엄정한 조사와 그에 따른 징계가 이루어질 것이라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을 꼬집고 있다.

이런 경우를 상정해 우리 헌법은 '국회의 국무위원 해임건의제도(헌법 제63조)와 탄핵소추제도(헌법 제65조)'를 통해 고위공직자의 잘못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국회에 헌법상의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따라서 국회의 이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권 행사는 의회주의에 기반한 헌법상의 책무를 이행한 것으로 볼 수 있을지언정, 대통령실이 주장하는 '의회주의 포기'로 보는 것은 근거가 빈약한 억지 주장으로 보인다.

헌법상 탄핵소추 권한이 부여된 국회에서 정상적인 국회법의 절차를 밟아 행사되는 행위에 대해 '의회주의 포기'로 규정하는 대통령실의 입장이 생뚱맞은 이유다.

한편 전날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 후 많은 기사에서 국무위원에 대한 탄핵소추안 가결이 "우리 헌정사에서 최초"라는 보도를 내보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과거에도 장관이나 고위공직자들에 대한 해임건의나 탄핵소추 시도가 없지 않았다.

다만 탄핵소추안 가결 절차까지 가지 않았던 이유는 국회에서 해임건의나 탄핵소추 절차가 진행되면, 당사자인 장관이나 고위공직자 스스로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나는 게 일반적인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이 장관의 탄핵소추안 가결 사태의 본질을 따져보면 이미 제안된 이 장관에 대한 국회의 해임건의안이 대통령에 의해 거부되고, 파면에 대한 국민적인 여론이 높은 상황에서도 대통령이 계속해서 자기 사람 감싸기로 버텨왔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인 지난해 3월 10일 당선 인사차 박병석 국회의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의회주의를 존중하고, 의회와 늘 중요한 국가 현안을 상의하는 정부 운영을 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또 "늘 국정의 중심에 의회가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함께 머리를 맞대 고민하면 어떠한 어려운 국가적 난제라도 잘 풀어나갈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고도 했다.

스스로 의회주의를 존중하겠다고 약속했던 윤 대통령은 그러나 9개월이 넘도록 야당 대표와 회담을 하지 않고 있다. 역대 대통령 중 이런 대통령은 없었다. 대통령실의 표현을 그대로 돌려주면 '의회주의 포기'가 아닌가.

오히려 야당 대표에 대한 검찰의 계속된 수사와 압수수색으로 '정적 제거' 아니냐는 의구심을 받고 있다.

대통령실은 또 최근 정당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당무개입'이 노골적이라는 비판도 듣고 있다.

이준석 전 대표에 대해 윤 대통령의 '내부총질 하는 당 대표'라는 문자가 공개되면서 촉발된 갈등은 결국 무리한 당윤리위원회 개최와 '당 대표 직무정지'라는 징계를 통해 당을 비대위체제로 내몰았다.

또 내년 총선 공천권을 둘러싼 차기 당 대표 선출을 앞두고 이른바 윤심 논란이 제기되면서 '정당 민주주의'가 훼손되고 있다는 비판도 당 내부에서부터 쏟아져 나온다.

여론조사에서 가장 높은 지지율을 보이던 유승민 전 의원의 당선을 저지하기위해서 당 대표 선출 룰을 바꿔가며 나누기, 뺄셈 정치를 한다는 비판을 받았고, 이어 나경원 전 의원까지 갈등 상황으로 내몰아 당 대표 선거 불출마를 이끌어냈다.

나 전 의원에 이어 안철수 후보의 지지율이 높게 나오자, 이번에는 '윤안연대', '윤핵관' 논란으로 이른바 안철수 후보에 대한 파상 공세가 이어지고 있다.

결국, 국회의 이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안' 가결에 대해 '의회주의 포기'로 규정하고 강한 비판 입장을 밝힌 대통령실의 주장은 그동안 '야당 대표와의 회담 거부', '국민의힘 당 대표 선출 등에 대한 당무개입' 논란 등에 비춰보면 오히려 당혹감마저 불러일으키는 과장된 대응으로 보인다.

'의회주의 회복'을 위해서라도, 실종된 '정치 회복'을 위해서라도 헌법재판소의 탄핵결정이 있기 전에 대통령(실)의 결단이 필요해 보인다.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꼬인 실타래를 풀어갈 해법을 마련하는 게 대통령의 역할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