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방궁 인생'을 즐긴 말년이 비참한 이유

◆…그림=한정희 칼럼니스트

발가락이 닮았을까?

민 사장과 아들은 얼굴이 전혀 닮지 않았다. 민 사장이 딴 데서 낳아왔거나 마누라가 바람피워 낳았거나 했을 법 하다.

그들의 등장에서 김동인의 「발가락이 닮았다」의 주인공 M을 연상하고 스토리를 떠올린 것은 터무니없는 상상일까?

민 사장은 상대를 나와 회계사·세무사 자격증을 가졌고 국세청 출신으로 동문회 때 만난 인연이 있다. 아직도 재벌그룹의 재경팀 사장으로 있는 그는 삶의 변곡점에서 가끔씩 나타났다.

그의 명은 축(丑)월, 무자(戊子)일, 경신(庚申)시로 기억하는 바 재능이 탁월했다.

인품은 속 다르고 겉 다르고 이며 현직에 있을 때 기업과의 밀착으로 국고엔 손실을 끼쳤지만 실속은 어지간히 챙겼다. 그가 아들을 결혼시켰으면 하고 명을 내놨다.

아들은 정묘(丁卯)년, 경술(庚戌)월, 신축(辛丑)일, 기축(己丑)시 대운3.
며느리 감은 정묘(丁卯)년, 경술(庚戌)월, 을사(乙巳)일, 정축(丁丑)시 대운5.

“결혼시켜도 되겠습니까?”<조상지덕이 문제가 되겠군. 애들을 잘 낳아야 될 텐데...>
“좋은 날 낳도록 도와주시면 안 되겠습니까?”<실력이 없어서...>

얼버무렸다. 내키지 않았다.

아들의 턱은 유난히 뾰족했다. 좋은 후손은 물 건너갔다고 봐도 좋았다. 시는 둘 다 축시여서 좋은 후손과는 결코 인연이 없다고 할 수 있었다.

“초등학교 동창생인 둘이 늦은 나이에 만난 것은 인연이 있기 때문이니 저희들이 좋다고 하면 결혼 시킬까 합니다.” <그러시게나>

민 사장은 겉으론 되게 멋있고 중후했다. 대신 밝힘증이 대단해 밤만 되면 화려한 시간을 즐겼다. 수도 없는 여인을 섭렵했고 많이 울렸다.

술집 아가씨가 말썽을 일으키면 술집 주인으로 하여금 조용하게 만들었다. 그 대가로 세무 편의를 봐주면 그만이었다. 「세무 편의」를 아주 잘 활용한 탓에 부자도 됐고 엄청 즐겼으며 퇴직 후에도 잘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아방궁 인생」의 말년은 대체로 「비참함」과 연결된다. 아들의 턱이 칼날끝처럼 뾰족한 것은 「비참함」을 잉태하고 있다고 봐도 좋다.

더욱이 명에는 재(財)가 없다시피 약하다. 할머니의 덕 쌓음으로 아버지와 잘 나갔을 뿐, 아버지가 덕을 쌓지 않고 「개판 인생」으로 살았으니 집안의 몰락은 준비돼 있다고 보였다.

머리 좋아 공부 잘하고 고시 합격해서 잘 나갔던 인생들이 삶의 지혜가 부족해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것을 수없이 보게 된다. 잘 사는 지름길은 「깨달음」에 있음을 아는 것이 중요하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