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 제로'…정책검증만 했던 완벽한(?) 청문회

◆…"맥 빠진 청문회(?)" = 이날 인사청문회에서는 한 후보자에 대한 신상검증보다는 정책검증이 주로 이뤄지면서 배우 송혜교 씨 탈세 사건으로 시끌벅적했던 임환수 국세청장 인사청문회 때와는 분위기가 확연히 달랐다. 당시 인사청문회에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던 국세청 간부들도 이날 청문회에서는 복도에 있거나 기재위 전체회의장에서도 여유있는 모습을 보였다.

한승희 국세청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는 한 후보자 개인 신상 검증보다는 정책 검증이 주로 이루어졌다. 

30여년 동안 공직자로 살아오면서 철저한 자기관리로 재산형성 과정, 병역 등 딱히 문제가 될 만한 것이 없어 무언가를 잔뜩 노리고 덤벼들었을 일부 의원들 입장에서는 말 그대로 맥 빠진 청문회가 됐다. 

특히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이 부동산 관련 문제에 대해 사전 보도자료를 내는 등 공세적 자세를 취했지만 정작 청문회에서는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고, 여야 의원들은 주질의와 보충질의에서 했던 질의를 계속 반복했다.

야당에서는 주로 문재인 정부 공약 이행을 위한 재원 마련을 위해 국세청이 무리한 징세행정을 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쏟아냈고 최순실 일가의 은닉재산에 대한 세무조사와 정치적 세무조사 중단 요구도 이어졌다. 

여당도 최순실 세무조사를 제대로 해줄 것을 요청했다.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순실 여동생이 소유한 유아용품 생산 회사인 서양네트웍스가 2013년 모범납세자로 선정됐다"며 "세무조사를 회피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이 회사는 네덜란드 회사로 되어 있고 홍콩투자회사를 통해 2000억원을 투자했다"며 "이 자금이 불법자금으로 의심된다. 조사할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다.

한 후보자는 "살펴보겠다"고 답했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최순실이 실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관리하고 있다는 단서를 국세청이 확보했느냐"며 "국가적 문제다. 박 전 대통령의 통치자금을 공동 관리한 것이 아니라면 최 씨와 박근혜 전 대통령이 경제공동체라는 것이 설명되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송 의원은 이어 "박 전 대통령의 통치자금은 개인의 것이 아니다. 국고로 환수해야 한다"고 요구했고 한 후보자는 "조사가 진행 중인 사건"이라고 애매한 답변만 내놨다.

이종구 바른정당 의원은 "최순실 국정농단과 관련된 탈세를 철저하게 조사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 실세들이 저지른 탈세 의혹이 있다. 이것도 철저하게 조사해달라"고 주문했고 한 후보자는 "법과 원칙에 따라 하겠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 일가의 탈세 의혹과 관련해 "국세청이 조사를 하고 있는데 조사 결과, 국세청이 관련된 (봐주기 등)비위가 드러나면 책임지겠냐"고 묻자 한 후보자는 "특정납세자에 대해 말하기는 어렵지만 국세기본법에 규정된 사유에 해당된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밝혔다.

野 '마른수건 쥐어짜기' 의혹…한승희 해명 '진땀'

야당 의원들은 특히 문재인 정부의 공약을 이행하기 위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세무조사통'인 한 후보자가 세무조사를 강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했고 한 후보자는 "세무조사와 사후검증을 축소하겠다"는 답변으로 해명하느라 진땀을 뺐다.

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은 "한 후보자가 모두발언에서 국세청이 정부의 공약 재원 조달을 최우선 과제로 하겠다고 했는데 자칫 세무행정을 강화하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박명재 의원 역시 "문재인 정부의 대선공약 이행에 176조원이 쓰이는데 국세청이 탈루 세금에 대해 과세를 강화해 연간 5조9000억원을 확보하겠다고 한다"며 "조사통인 한 후보자를 내정한 것도 마른수건을 쥐어짜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한 후보자는 "그것은 국세청의 기본적인 책무에 대해 말한 것이고 기본적으로는 납세자에게 부담이 되는 세무조사와 사후검증을 줄여나갈 것"이라고 해명했다.

근로소득자 면세비율을 축소하는 것을 놓고도 설전이 이어졌다.

심재철 의원은 "근소세 면세비율이 높다고 보냐, 낮다고 보냐. 이를 그냥 둬도 되겠냐"라고 물었고 한 후보자는 "그 문제는 조세정책적인 측면이 있어서 사회적 합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유보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그러자 심 의원은 "한 후보자가 영혼이 있는 공무원이라면서 있다면서, 왜 대답을 하지 못하냐. 면세자 비율을 낮춰야 한다는 소신도 없냐"고 다그쳤고 한 후보자는 "집행기관에서 단언적인 말을 하는 것은…"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한승희 "직을 걸고 정치적 세무조사 안할 것"

정치적 세무조사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여야 의원들의 요구에 한 후보자가 직을 걸고 하지 않겠다는 맹세 아닌 맹세를 해야 했다.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세청이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한 이후 태광실업을 1년 동안 세무조사했다. 그러다가 대통령이 돌아가셨다"며 "국세청이 청와대 하명을 받아 편파적 조사를 했던 경우는 있어도 국세청 스스로 화약을 들고 정치 한복판에 뛰어든 것은 전무후무한 사례"라고 지적했다.

김성식 국민의당 의원은 한 후보자가 본청 조사국장 재직시절 진행한 세계일보 관련 기업(통일교 재단 등)에 대한 세무조사와 관련, "한 후보자가 본청 조사국장 시절 세계일보 관련 기업에 대한 시작됐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조한규 전 세계일보 사장은 언론 탄압 차원의 정치적 세무조사인 것으로 보이냐는 말에 동의한다고 했다. 무엇을 느끼냐"고 추궁했다.

한 후보자는 "의혹이나 오해가 있는 세무조사가 있었다면 대단히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며 "앞으로 조세목적 외에 다른 요인이 개입되는 세무조사와 국세행정 집행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추경호 의원은 한 후보자가 본청 조사국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정치적인 의도를 가지고 세무조사를 진행한 적이 있느냐고 질의했고 한 후보자는 "(그런 일은) 없었다"고 답변했다.

추 의원이 "직을 걸고 (정치적 세무조사 요구를) 거부하라"고 요구한 것에 대해 한 후보자는 "네"라고 발언했다. 정치적 세무조사를 할 경우 기록을 남겨 국세청이 경각심을 갖도록 해달라는 요구에 한 후보자는 "생각해 보겠다"고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부가세 대리징수 도입·다주택자 전수조사 방안" 검토

한 후보자는 부가가치세 탈루율을 낮추기 위해 카드사가 직접 국세청에 부가세를 납부하는 부가세 대리징수제 도입과 더불어 부동산 다주택자에 대해선 전수 조사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그동안 부가세가 많이 탈루된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부가세 징수방법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은 국세청 공무원들이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고 지적했고 한 후보자는 "여러가지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부가세 대리징수제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일단 시행할 때 단계적으로 시행하는 것이 맞다. (만약 시행된다면)특정 업종에 대해 시행하면서 납세자에게 부담이 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부동산 다주택자는 187만명인데 반해 소득신고는 2.6%인 4만8000명에 불과하다는 지적에 대해 한 후보자는 "부동산 다주택자를 전수 조사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며 "앞으로는 과세 대상을 좀 더 면밀히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한 후보자는 부동산 전세자금 출처 조사 기준도 현행 9억원 이상에서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피력하기도 했다.

국세청 고위직이 영남·행정고시 편중이 심하다는 지적과 9급 세무직 시험에서 회계와 세무가 제외된 것에 대한 문제가 심각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세청 고공단의 출신지역을 분석해봤더니 영남 출신이 16명이다. 지난 정권에서 인사편중이 얼마나 심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라며 "임용구분별로 봐도 행정고시 출신이 고위직에서 83%나 된다"고 지적했다.

한 후보자는 "영남 출신이 많은 것은 인력분포상에 많은 이유가 있다"며 "비고시 출신들도 꿈과 희망을 가지고 일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9급 세무직 공채 때 세법과 회계학이 의무과목에서 제외된 것과 관련해 한 후보자는 "회계학, 세법을 9급 공채 시험에서 필수로 전환하려고 관계부처와 협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세청 고위직 여성 비율과 관련해 한 후보자는 "신규직원들은 여성과 남성의 비율이 각 50%지만 5급 이상은 굉장히 낮다"며 "그런 부분들은 적극적으로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김성식 국민의당 의원은 "6급 직원들이 본청보다는 세무서에서 있다가 노후를 준비하려는 경향이 강한데, 이는 조세행정이 왜곡될 수도 있고 해서 열심히 일하는 분들은 (본청에서 일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지적했고 한 후보자는 "전적으로 공감한다"고 답변했다.

한편 이날 인사청문회에서는 특별한 논란거리 없이 정책검증만 이루어지는 등 무난하게 진행됐지만 한 후보자가 고민하는 시간 없이 바로 "네"라는 답변을 하자 일부 의원들은 "생각이나 고민을 하고 답변하라"고 언짢은 기색을 내비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