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한가로운 시간에 TV 클래식음악 프로를 보다 오감이 흥분되는 때가 있다. 바로 음악의 클라이맥스 순간이다. 연주자들의 이마에 송송 맺힌 땀과 긴장감 넘치는 지휘자의 손놀림과 함께 청각에서부터 가슴 속까지 전해지는 광음의 합주를 눈으로 보게 되는 순간이다.
삶에도 클라이맥스가 필요하다. 그중 하나가 여행에서 온다. 사람마다 다를 수는 있지만 여행에서 느끼는 설렘과 기대 그리고 경험과 추억의 4단계는 무엇보다 중요한 삶의 클라이맥스 요소이리라. 그것은 낯섦에 대한 떨림일 것이다.
최고의 청정지역 '교래'
한라산 동쪽의 중산간, 해발 450미터 높이에 교래리라 불리는 작은 농촌마을이 있다. 예로부터 다리가 많아 도리마을이라 불려왔던 이곳은 지금도 한라산에서 흘러내려 온 하천 중 가장 길고 복잡하다는 천미천이 마을을 돌아나간다.
제주에서 비교적 강수량이 많아 숲이 울창한 이곳 천미천은 새왓내라고도 불리는데, 항상 맑은 물이 고여 있다. 봄이면 올챙이들이 헤엄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아름다운 숲길과 천연유산의 오름으로 둘러싸여 있는 교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물맛이 좋다는 삼다수가 나오는 수원지로도 유명하다. 지금은 제주도 최고의 청정 지역이자 문화 예술의 중심지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승용차를 이용한다면 교래 주민회관 주차장에 차를 세우자. 차에서 내려 맞은편 다리를 건넌 후 삼다수숲길이라는 작은 푯말을 따라 5분 정도 걸어가면 천미천의 작은 소(연못)가 나온다. 옛날 마을 주민들은 이곳에서 물을 길어 먹었고 지금도 가까운 목장에서는 이곳 물을 떠다 가축에게 먹이고 있다.
물이 얼마나 맑은지 바위와 나무들의 그림자가 물에 비쳐진 아래에 작은 돌멩이도 제 얼굴을 내밀어 보인다. 그 길을 따라 왼쪽으로 돌아 100여 미터 걷다보면 두 갈래 길이 나온다. 왼쪽은 마을 안길로 들어가는 길이고 오른쪽은 삼다수 숲길로 들어서는 길이다.
삼다수 숲길은 예로부터 신선들이 사는 숲이라 해서 솔안이 또는 살안이라 불렸던 사려니 숲길과 이어지는 숲을 삼다수공장이 들어서면서 마을 주민들을 위해 조성해준 숲길이다.
◆…삼다수 숲길 안내표지판
위로가 필요한 날 걷기 좋은 길
삼다수 숲길은 위로가 필요한 날 마음이 통하는 친구와 함께 걷기 좋은 길이다. 관광객들이 많이 오지 않기에 아직은 조용하고, 숲이 화려하지도 적막하지도 않은 편이다.
◆…삼다수 숲길의 고요함
걷는 코스는 2개로 나뉜다. 간단히 두 시간 안에 돌아 나올 수 있는 길과 물찻오름까지 돌아 4시간 정도 걸을 수 있는 길이 있다. 사려니 숲길에서 물찻오름을 지나는 길목은 사람이 많으므로 숲의 숨소리만 들으려는 사람에게는 권하고 싶지 않다.
◆…천미천의 소가 있는 삼다수 숲길의 아름다운 풍광
숲길 한쪽으로 천미천이 있어 비가 온 뒤는 시냇물 흐르는 소리도 들을 수 있다.
삼나무가 울창한 숲과 작은 언덕길을 돌아 갈대숲 길로 연결된 1코스는 어린아이나 노약자들도 충분히 삼림욕을 하며 걸을 수 있다. 삼다수 숲길은 아직까지 주차비나 입장료를 받고 있지 않다.
◆…삼다수 숲길 안에 우거진 삼나무 숲
숲길을 돌아 나와 제주돌문화공원을 향해 가다보면 아이들이 좋아하고 기차놀이동산이라 불리는 애코랜드 입구가 오른쪽에 나온다. 왼쪽에는 곶자왈인 교래자연휴양림이 있다.
◆…애코랜드 테마파크
애코랜드는 골프장과 연결돼 있다. 곶자왈을 개발해 만든 골프장은 천연비료를 사용해 골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곳이기도 하다. 27홀로 만들어진 퍼블릭 골프장으로 2명이 경기보조원 없이 카트를 직접 몰고 운동할 수도 있어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제주에 없는 기찻길 여행은 작은 기차로 만들어진 이곳 애코랜드에서 즐길 수 있다. 제주도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기도 해 주말은 피하는 것이 좋다.
프로방스 느낌이 물씬 풍기는 유럽풍 스타일의 골프텔에서 숙박이 가능하므로 가족 여행객이나 4명 정도 팀을 꾸린 골퍼관광객에게 인기가 높다.
◆…애코랜드 미니기차
1박 숙박료는 평일 30만원 주말50만원이며 골프텔에서는 요리를 할 수 없다.
애코랜드 입장료는 어른이 1만2000원, 어린이가 1만원이다.
◆…교래 자연 휴양림 입구
교래 휴양림을 들어가는 입구는 작은 숲길로 되어 있다.
길을 빠져 나가면 매표소와 매점, 화장실이 나오고 숲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이 자리에 있었을 것 같은 돌로 쌓은 전통초가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교래자연 휴양림 매점과 화장실
숙박 시설과 야영 시설 겸비된 휴양림
휴양림은 대부분 숙박 시설과 야영시설이 함께 갖추어진 곳이다. 교래 휴양림 안은 왼쪽에 초가로 된 숙박시설과 오른 쪽 야영을 할 수 있는 지역이 나누어져 있다.
숲속의 초가에서 하룻밤을 자고 나면 몸과 마음이 한껏 힐링 될 것 같다. 자그만 초가 한 채는 숲으로 에워싸져 있어 한 폭의 그림 같다.
◆…조용히 지낼 수 있는 초가로 만들어진 숙소
미리 인터넷 예약을 해야 휴양지구에 있는 숲속의 초가와 숲속의 휴양관에서 숙박을 할 수 있고 야영지구에서 캠핑을 할 수도 있다.
굳이 하루를 자지 않고 고자왈 숲길만 걸어도 좋은 이곳은 생태관찰로와 오름 산책길 두 코스로 나뉘어져 있다. 40분 정도 소요되는 생태관찰로는 5개의 야외교실이 있어 아이들과 함께 숲 해설가의 숲 설명을 들으며 걸어도 좋다. 3시간 정도 소요되는 오름 산책로는 1940년대까지 산전을 일구며 살았던 흔적을 그대로 엿볼 수 있는 산전터와 숯가마터를 지나 큰지그리오름의 전망대까지 가서 돌아오는 길이다.
◆…큰지그리오름을 향하는 길목
점심을 먹고 오후에 산책삼아 걷기에도 괜찮다. 숲길은 나무를 피하고 큰 바위를 돌아 최대한 자연을 해치지 않고 걸을 수 있게 만들어져 있다. 자연이 준 선물을 그대로 잘 다듬어 놓은 듯 발끝으로 느끼는 작은 돌멩이의 촉감에도 마냥 행복하다.
이 곶자왈 숲은 특이하게도 난대성 식물과 온대성 식물이 함께 원시림을 이루고 있다. 용암이 녹으며 생긴 자연 그대로의 돌출과 함몰지 모두에 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있다. 돌출 부위에 선 나무는 비바람을 견디기 위해 뿌리를 밖으로 뻗었으며, 함몰지 바위에는 이끼와 고사리 등 음지 식물이 많이 자라고 있다.
◆…곶자왈을 그대로 볼 수 있는 숲
입장료는 1000원이다. 또 매월 첫째 주 월요일은 무료입장 할 수 있다. 다자녀 가정은 숙박료가 특별 할인되는 방이 있다.
돌문화공원서 특별한 체험을
교래 여행코스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제주돌문화공원은 그야말로 제주예술 그 자체다. 제주의 문화 역사가 돌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 돌의 문화와 역사가 이곳 제주돌문화공원에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다.
몸과 마음에 새로운 영양소 공급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휴양림에서 1박을 한 후 이곳 제주돌문화공원에서 하루를 보내자.
◆…제주 돌문화공원
공원 내 돌박물관을 내려가는 입구 벽천에는 물은 흘러도 달은 흐르지 않는다는 '수급불유월'(水急不流月)이란 글이 씌어 있다. 이곳을 기획하고 지금까지 만들어 온 백운철 단장의 아름다운 공원에 대한 의지가 들어있는 글귀이다.
야외 전시장에는 옹기 등 제주도에서 만들어진 돌의 모든 것이 전시되어 있고 초가마을에는 옛 제주도민들의 생활을 쉽게 엿볼 수 있다.
오백장군 갤러리에서는 일년 내내 기획전이 열리고 매년 오월이면 설문대할망제가 한 달간 다양한 볼거리로 채워진다. 너무도 아름다운 야외 물의 무대인 하늘연못도 있다. 이곳에서 펼쳐지는 공연은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아름다운 무대라 할 수 있다.
◆…오백장군 갤러리
공원을 제대로 다 돌아보려면 3시간은 족히 걸린다.
공원을 다 돌고 나면 돌 하나, 나무 한 뿌리 그냥 세상에 버려져 있는 것은 없음을 느끼게 한다. 입장료는 5천원이다.
교래에서는 흐린 날이면 언제 비가 올지 모르니 우비나 우산을 챙기는 것이 좋다. 산책길이 돌길로 되어 있어 운동화나 등산화도 필수다.
여행에서도 클라이맥스는 늘 존재한다. 숲길을 걷다 우연히 들리는 새소리와 한물소리에 가던 길을 멈추고 주위를 바라보자. 눈부신 햇살이 초록에 빛을 던져 주고 있을 때나 낯선 길을 걷다 길에 핀 이름 모를 꽃을 보았을 때, 날아온 나비 한 쌍을 우연히 발견했을 때 '와우' 하고 크게 소리치자. 아주 소소한 작은 것에 마음이 떨리는 시간을 기억하자.
사진을 찍어도 좋고 글로 기록해도 좋다. 어쩌면 여행에서 오는 마음의 여유가 오랫동안 살면서 힘들 때 한번 씩 꺼내어 볼 수 있는 묘약이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이경화 칼럼니스트(제주시대 발행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