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벨만 울리면 가슴이 답답해져와요"
수개월간 사무실에서 전화기만 들었다 하면 쏟아지는 폭언 탓에 어느새 깊은 마음의 병까지 얻어버린 한 국세공무원의 하소연이다.
이런저런 사연으로 세금을 부과받은 납세자들 중에는 기어코 자신의 분을 이기지 못하고 그 화풀이를 일선 세무서 직원에게 하는 경우가 있다.
세무서에 찾아와 폭언이나 폭행은 물론 심지어 분신자살을 시도하는 사람까지 있다고 하니 세무공무원들의 업무가 얼마나 거칠고 고된지 짐작할 만 하다.
그런데 이런 경우가 한 두번이면 참고 넘어갈 수 있겠지만 수개월, 길게는 수년간 지속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특정 직원에 대해 길게는 수년간 이어지는 폭언과 행패는 세무서 업무에 대한 지장뿐만 아니라 결국 그 개인의 삶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번에 소개할 악성민원의 사례는 특정 직원, 특정 세무서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 수개월에서 수년간 지속적인 민원제기, 폭언, 행패 등으로 괴롭힘을 가하는 납세자들의 이야기다.
5개월간 지속된 폭언과 행패…"담당직원 고발할거야!"
평소 모 업체 대표 D씨와 원한관계에 있던 A씨.
D씨에게 앙심을 품고 있던 A씨는 D씨가 운영하는 업체의 현금영수증 미발행분 신고 및 탈세제보 등 민원을 관할 세무관서에 제출하게 됐다.
하지만 별다른 근거없이 이루어졌던 A씨의 민원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에 화가 난 A씨는 일주일에 3~4차례씩 세무서 담당직원에게 전화를 해 폭언과 욕설, 모욕적인 발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A씨의 행태는 이에 그치지 않고 담당 공무원에게 직접 D씨의 업체에 세무조사를 나가 현금영수증 단말기를 설치한 뒤 사진을 찍어 자신에게 보고까지 하라는 민원을 넣는 뻔뻔함을 보이기도 했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자신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A씨는 감사관실, 검찰청에 담당공무원을 직무유기로 고발했고, 관련 일을 처리하느라 담당 직원은 거의 업무에서 손을 놓을 수 밖에 없는 지경이었다.
자신의 분노를 삭이지 못한 A씨는 이같은 폭언과 행패를 5개월간이나 이어갔으며, 이에 세무서 직원들은 A씨의 '열정'(?)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는 후문이다.
"감히 나를 건드려? 잘못 걸렸어"
얼마 전 세무서 민원실 직원을 폭행해 '공무집행 방해죄'로 벌금형을 선고받게 된 B씨.
B씨는 자신이 저지른 일은 생각치 않고 그저 억울하고 분통한 기분만 들 뿐이었다. 이에 B씨는 결국 세무서 직원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복수를 해줘야겠다고 작정하게 됐다.
방식은 바로 국민신문고에 지속적으로 민원을 제기하는 것이었다.
국민신문고에 민원이 올라올 경우 일선 세무서는 지방청에 소명을 하고 답글을 달아야하기 때문에 이같은 반복되는 민원제기는 세무서 직원들로서는 피로감과 업무지장을 초래할 수밖에 없었다.
B씨는 이후 사사건건 세무서 직원들을 걸고 넘어지기 시작했다.
세무서 직원이 불친절하다는 이유로 이들을 교육시킨 뒤 그 증거자료를 제출해달라고 하며 민원을 제기하기도 했고, 세무서 직원들의 회식 행태에 다소 문제가 있다는 '음해성' 민원을 제기하는 등 걸고 넘어지는 구실은 다양했다.
심지어 세무서 직원이 담배꽁초를 아무데나 버렸다며 이를 시정해달라고 민원을 제기하기도 하는 등 세무서 직원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전부 체크하는 B씨였다.
B씨는 이같은 내용으로 한달간 지속적으로 민원을 제기했고, 세무서 직원들은 B씨의 민원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뒤에야 안심하고 업무를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난 한놈만 노려"…수년간 민원글만 '1만여건'
모 세무서에 수년동안 매일 '출근도장'(?)을 찍고 있는 C씨.
수년 전 관할 세무서를 통해 재산세를 부과받게 된 C씨는 이에 원한을 품고 해당 세무서에 매일 출근을 하며 세무서 직원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해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넣게 된 것이었다.
C씨가 세무서에 오지 못하는 날이면 그 부인이 대신 나와 세무서 직원들을 감시할 정도로 C씨의 집요함은 상상을 초월했다.
이렇게 C씨가 수년간 제기한 민원 건수만 해도 무려 1만여건.
해당 세무서 직원은 "이들이 돌발행동을 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C씨와 그 부인을 '전담마크'하는 직원들 둘 정도"라고 하소연했다.
일선 세무서 직원들은 이렇게 장기간 지속되는 폭언과 행패, 민원제기로 인해 우울증에 시달리는 등 그 피해가 심각한 지경이라고 한 목소리로 지적한다. 심지어 모 세무서 직원은 "세무서 안에서 정신 멀쩡한 직원을 찾기 힘들다"고 말할 정도다.
국세청도 이같은 문제인식을 공유해 민원이 특히 많다고 알려진 일선 세무서 개인납세과 직원들을 대상으로 1박2일간의 휴식시간을 가지는 '국세청 힐링캠프'를 실시해 운영중이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보다도 먼저 한 명의 납세자들인 우리 자신들부터 일선 세무서 직원들을 '화풀이' 대상이 아닌 우리의 '이웃'이자 '가족'이라는 마음으로 배려하는 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기획취재팀 : 이희정, 이현재, 류성철, 박지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