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회장직이 뭐길래…", 십 수년 친구·동지 '숙청'

제23대와 27대, 28대 등 3번(6년)에 걸쳐 한국세무사회장직을 꿰찬 정구정 세무사회장.

특히 지난 2013년 치러진 제28대 세무사회장 선거 출마는 말 그대로 세무사업계의 대분열을 초래했다. 수 많은 반대 목소리에 귀를 닫은 채 무리수를 써가며 3선 출마를 강행했기 때문이다.

3선 회장 당선 후 정 회장이 가장 먼저 추진한 사업은 세무사회 공익재단 설립이었다. 꿈도 컸다. 무려 120억원의 기부금을 모아 '매머드급 공익재단'을 만들겠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 시도 또한 무수한 논란을 낳았고, 그 논란의 후유증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사업 추진 초반부터 정구정 회장은 회원들에게 수차례에 걸쳐 기부를 독촉하고, 민간후원인 2명 이상을 모집하지 않는 경우 회직에 참여할 수 없다는 강제규정을 만드는 등 상식밖의 회무집행으로 회원들의 빈축을 샀다.

특히 공익재단과 관련해서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23대 회장 재직시절 회원들이 모아준 제도개선기금에 대해 공금유용 논란이 일자 사용하고 남은 돈(1억원)을 후임 회장(조용근 전 회장)에게 기탁해 논란을 가라앉힌 후, 조용근 회장의 임기가 끝난 뒤에 자신이 다시 회장이 되자 그 돈을 빼내 마치 사재인 양 공익재단 출연금으로 내놓고, 이를 바탕으로 임기 4년의 이사장직을 꿰차고 앉는 대목이다.

세무사회장의 연봉을 대폭 올려놓은 것도 논란거리다.

말이 연봉이지 정확한 명칭은 임원수당과 특별수당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액수는 무려 3억원이다. 무보수 명예직인 세무사회장직이 대통령에 버금가는(혹은 그 이상의) 연봉이 보장된 자리로 업그레이드 됐다.

이 같은 정구정 회장의 비상식적 행보가 본격적으로 나타난 시기는 '3선 당선'을 전후해서다. 그는 3선 당선을 위해 3선을 반대하는 십 수년 친구를 비롯해 뜻을 같이 하던 동지들을 내쫓았다.

편법 갓길통행, '중임제한' 규정 유권해석

한국세무사회회칙 제23조 제6항에는 '회장 및 감사는 1차에 한하여 중임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다. 대부분의 법률전문가들은 이 중임제한 규정에 대해 '평생 2번만 할 수 있는 것'(갑설)으로 해석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 세무사회에서는 다른 시각으로 이를 해석한 사람도 있었다.

이 문제의 논란을 촉발시킨 역대 회장은 제10대, 14대, 15대 세무사회장을 지낸 임영득 전 회장과 제16대, 17대 회장을 지낸 나오연 전 회장 등 2명이다.

임 전 회장은 지난 1987년 4월 상임이사회를 통해 '임기를 건너 뛸 경우, 3번까지 세무사회장을 할 수 있다'(을설)는 유권해석을 받아낸 뒤 3선 출마를 강행, 당선됐다.

후임이었던 나 전 회장은 논란의 소지가 큰 이사회 유권해석이 아닌 '정공법'을 택했다. 아예 3선 출마가 가능하도록 세무사회 총회를 통한 회칙개정을 시도한 것이다. 결과는 회칙 개정안 '부결'.

제18대 회장에 당선된 방효선 전 회장은 임 전 회장이 이사회를 통해 받아냈던 유권해석을 취소하고 평생 2번만 할 수 있다는, 갑설에 따른 유권해석을 선포해 이 문제를 깔끔히 정리해버렸다.

그러나 나 전 회장은 이후 소송까지 제기하며 3선 출마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나 전 회장은 법원으로부터 '회칙을 제정한 세무사회에서 판단할 사안'이라는 판결을 받아 제19대 한국세무사회장 선거(1995년)에 출마했지만 고배를 마셨고, 이후 그 누구도 3선 출마를 거론하지 않은 채 방 전 회장 재임시절 유권해석이 완전히 굳어져 왔다.

2013년 제28대 한국세무사회장 선거를 앞두고, 정구정 회장은 "주변에서 2년만 더 세무사회장직을 수행해 달라는 간곡한 부탁이 많았다"는 명분으로 지난 20여년간 관습법으로 굳어진 '3선 금지'에 이의를 제기하며 3선 출마의지를 드러냈다.

그리고 그는 이를 가능케할 가장 빠른 지름길을 찾았다.

상임이사회를 통한 회칙 유권해석 변경이었다. 현실적으로 총회를 통한 회칙개정이 어렵다고 봤기 때문이다.

'숙청(肅淸)'의 시작

중임제한 조항의 '중임'을 '연임'으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상임이사회의 결의가 필요했다. 상임이사 과반수 출석에 과반수 찬성이 필요했다.

하지만 당시 상임이사회 구성원 22명 중 14명이 3선 출마에 강하게 반대했다.

14명의 상임이사 뿐만이 아니었다. 안팎에서 3선 출마에 대한 반대목소리가 높게 형성됐다.

정 회장은 상임이사 설득에 실패하자, 임시총회를 소집해 유권해석을 회원 투표에 맡기는 방식을 택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3선 출마를 반대하던 14명의 상임이사들은 임시총회 소집건이 상정된 상임이사회를 보이콧하는 한편, 정 회장에게 임시총회 안건에 포함된 회칙 해석건 철회를 강하게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강행된 임시총회에서 회칙 유권해석 변경안이 가결(총 유효투표 3728표 중 찬성 2281표, 반대 1442표)됐다 (이 때 찬성표를 던진 사람은 전체 세무사회 등록회원 1만1000여명의 20%다).

이후 정 회장의 대대적인 숙청이 시작됐다.

임시총회 한 달 뒤였던 2013년 4월10일, 정 회장은 상임이사회를 소집해 백정현 업무이사, 구재이 연구이사, 배형남 법제이사 등 상임이사 3명을 전격 해임했고, 이창식 감리이사와 지준각 업무정화위원장에게는 사표를 받아냈다.

이들에 대한 해임안에 잉크도 마르기 전, 즉각 후임자들을 인선했다. 모두 정 회장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인사들이었다.

이 아수라장 속에 2년 동안 함께 회를 이끌어왔던 김형상 부회장과 정 회장의 '소울메이트'나 다름없었던 김종화 상근부회장까지 사표를 내고 세무사회를 떠나는 사태가 빚어졌다.

어제의 동지들은 그렇게 '적(敵)'이 되어 잘려나갔다.

지난 제28대 한국세무사회장 선거는 정구정 vs 반(反) 정구정 구도로 짜여졌다.

실제 정 회장과 과거 혈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던 이창규 전 서울세무사회장이 후보단일화(손윤, 한헌춘)에 이어 정 회장의 소울메이트 김종화 전 상근부회장과 손 잡고 정 회장의 3선을 저지하기 위해 선거전에 뛰어들었다.

2013년 6월28일, 정 회장은 총 유효투표 7109표 중 3683표(51.8%)를 획득하며 세무사회 역사상 두번째 3선 회장이 됐다(당시 정 회장은 투개표 직후 미사용 투표지를 모두 파쇄하도록 조치했고 특정지역에서 정 회장의 몰표가 나오는 등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어 개표에 참여한 여러 세무사들이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이 문제는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다).

욕망의 그늘

정구정 회장은 이처럼 어렵게 3선 당선증을 쥐었지만 업계 분열이라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겼다. 박수칠 때 차마 떠나지 못한, 그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제29대 한국세무사회장 선거와 관련해서도 비상식적인 행보를 거듭하면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대체 그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3선 출마를 반대하다 숙청된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전임 A상임이사는 "당시 22명의 상임이사 중 14명이 3선 출마를 반대했고 실제로 상임이사회 불참 등을 시도하며 강하게 저항했다"며 "상임이사회에 참석하면 중임 제한 유권해석이 뒤집어질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전임 B상임이사는 "정 회장이 반대하는 상임이사들에게 '그렇게 반대할 생각이면 사직서를 내라'고 이야기 했다. 그래서 '차라리 해임을 하라'고 맞섰고 결국 해임됐다"며 "당시 많은 회원들이 '어떻게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느냐'며 격분했던 것을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임 C상임이사는 "상임이사들은 세무사회장의 수족이나 다름없다. 정 회장은 수족을 자르면서까지 또 회장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며 "정 회장의 측근이라 불렸던 사람으로 그를 볼 때 '나 이외에 열정을 가지고 세무사회를 이끌 사람이 없다'는 확신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