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널 : 송재현 중소회계법인협의회 회장
회계사가 제공하는 회계감사는 이를 제공 받는 기업의 입장에서 필요로 하는 용역이 아니다. 그에 따른 보수가 회계감사의 질적인 요인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모든 용역이 이를 제공 받는 자의 입장에서 필요로 하거나 유익하기 때문에 공급자에게 보수를 기꺼이 제공하고 의뢰한다. 양질의 용역을 공급받고자 가급적이면 최고의 전문가를 선정하는데 회계감사의 경우는 기업이 제공 받는 일반적인 용역과는 전혀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반면 회계감사로 인해 혜택을 보거나 이를 필요로 하는 자들은 피감 회사가 아닌 채권자, 투자자, 직원, 공공단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등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회계감사는 당연히 공공재라고 봐야 한다.
회계감사보수에 대한 문제를 거론함에 있어 근본적인 문제는 바로 공공재에 해당함에도 이를 전적으로 시장경제의 원리에 따라 결정되도록 운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피감 회사가 감사인을 선정함에 있어 감사 수행 능력에 따라 판단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회계감사 능력이 떨어지는 감사인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을 정도로 피감 회사의 입장에서는 감사를 철저하게 수행하는 회계사를 선정하지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다.
피감 회사는 감사 수행 능력과는 상관없이 경영자와의 인맥이나 회계감사 이외의 서비스를 기준으로 감사인을 선정하는 것이 현실이다. 또 절대적으로 수수료가 저렴한 감사인을 선정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향후 회계감사에 대한 수수료는 계속해서 하락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회계사 숫자가 증가함에 따라 수임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데 이렇듯 경쟁이 심화될수록 감사보수가 저렴하게 결정될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그러나 회계사의 입장에서 보수가 적으면 그에 상응하는 정도의 시간이나 노력의 용역을 제공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감사 용역의 질적인 수준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아무리 표준 감사 시간을 정하고 이를 준수하도록 해도 일거리가 없어 놀고 있는 회계사가 있는 상황에서는 감사보수가 하락할 수밖에 없다. 또 보수가 하락하면 회계사의 소득은 그만큼 줄어들게 되어 능력 있는 회계사가 업계에 진출하지 않을 것이고, 감사를 수행하는데 집중하는 대신 수주하는 역할이나 다른 업무에 신경 쓰게 된다.
회계감사 업무의 시장은 유한한데 이를 수행하는 회계사만 급증하면 회계사의 소득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럴 경우 능력 있는 회계사는 점점 줄어들게 돼 그만큼 우리나라 경제의 파수꾼 역할을 하는 회계사의 기능이 약화되어 사회적 손실이 커진다.
따라서 회계감사인의 선정권을 공적인 기관이 수행해야 한다. 경쟁의 논리에 따라 감사인을 선정해야 한다면 공적인 기관이 다수의 회계사로부터 입찰 받아 결정하면 된다. 경쟁 원리를 이유로 피감 회사에 결정권을 줄 이유가 없다고 본다. 이렇게 공적인 기관이 감사인을 선정하면 적정한 감사 업무 수행 시간이 지켜지고, 이에 상응하는 감사보수를 수수하게 될 것이다.
변호사나 의사와 다르게 회계사를 그냥 회계사라고 부르지 않고 공인회계사라고 부른다. 정부에서 전문가의 명칭을 부여함에 있어서 이와 같이 '공인'이라는 명칭을 회계사 앞에 붙인 것은 회계사의 역할이 공적인 기능을 위임 받아 수행하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본연의 업무 영역인 회계감사는 공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것임을 분명히 선언하는 것이라고 본다.
어쩌면 공인중개사나 감정평가사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훨씬 더 공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이 수행하는 중개나 감정평가 업무에 대한 수수료에 대해 정부는 공적인 것으로 보고 표준이 되는 수수료를 정해 실행하고 있다. 공인중개사 업무는 공인중개사법 및 부동산 거래신고에 관한 법률에서, 감정평가 업무의 경우 부동산 가격공시 및 감정평가에 관한 법률에서 정하고 있다.
따라서 회계감사 업무에 대한 표준 수수료도 법에서 정하고 이를 준수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회계감사를 공공재로 볼 때 적정한 수수료율을 정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정부가 적정한 감사 시간과 합리적인 수수료를 산정해 줌으로써 오히려 피감 회사와 감사인 모두에 유익하게 운영할 수 있다고 본다.
지정제 확대가 감사인 간의 경쟁을 완화해 감사품질이 저하될 것이라는 주장이 있는데 이는 지극히 관념적인 주장이다. 현실적으로는 오히려 감사품질이 향상될 것이다.
감사품질은 감사 업무를 수주하기 위한 노력으로 높아지는 것이 전혀 아니다. 감사를 잘한다고 업무가 수주되는 것이 아니며, 피감 회사가 감사인을 선정할 때 감사 수행 능력이 높은 감사인을 선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왜 경쟁이 없어지면 감사품질이 하락할 것이라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수주를 위한 시간 낭비나 담합을 제거하는 지정제를 확대할 경우 감사품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교육과 관리 체계를 구축하는 시간 및 재원을 투입할 수 있다.
감사인이 감사품질을 유지하고자 하는 것은 감사 업무를 수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감사 위험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다. 결과적으로 감사 위험이 증가할 때 감사품질이 유지될 수 있다.
감사 위험은 손해배상책임과 같은 금전적 책임과 업무 제한과 같은 일신상의 책임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부실감사에 대한 관리 강화로 감사 위험에 대한 강도를 높이는 것이 이러한 책임을 발생시키지 않기 위한 노력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지정제 확대와 함께 감사 위험에 대한 관리 제도를 강화하고 적정 감사 시간을 투입함으로써 이에 상응하는 표준 감사보수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한편 지정제의 확대에서는 공정한 배정의 중요성이 부각된다. 현재의 대형 회계법인에 우선 배정하는 배정 방법을 즉시 개선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배정 방법이 특정 감사인에 편중되도록 운영할 경우 업무량이 과중되는 반면 능력 있고 시간 많은 감사인은 업무량이 없어 배고픈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 이때 사회정의와 공정성이 훼손될뿐 아니라 감사보수의 덤핑이나 부실감사의 부조리는 만연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감사인의 업무 능력 수준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동시에 공적인 기관에서 감사인 선정권을 행사하고 피감 회사의 상황에 따라 회계감사 업무의 표준 시간을 정해야 하며, 그에 따른 시간당 감사보수를 공적으로 정해 어느 회계사가 업무를 수행해도 동일한 수준의 회계감사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