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세무·회계업계, 법인세 신고 연장 "공감"
"세무조정·회계감사 '중복', 업무 과중"
"현행 제도 기업 투명성 저해 부작용"
"서류 전자화, 분기감사 등 대안 모색 필요"
법인세법 제정과 함께 지난 65년 동안 유지되어 온 법인세 신고 기한을 연장(또는 조정)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일까. 최근 관련 업계 종사자들을 중심으로 법인세 신고 기한을 연장하자는 요구가 많아지면서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법인세 신고와 기업 재무제표 감사를 한꺼번에 해야 하는 회계업계에서는 더욱 절실함이 묻어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법인세 신고 기한의 연장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기업과 연구원, 회계사, 세무사가 바라보는 현행 제도의 문제점들을 짚어봤다.
"3월 말 법인세 신고 마감, 업무 비효율 낳고 있다"
현행 법인세법은 12월 결산 법인이 3월 말까지 법인세를 확정해 신고·납부하도록 하고 있다. 결산 이후 3개월의 시간이 주어지는 것. 문제는 이 기간이 외부감사 시기와 겹치며 과도한 업무의 집중현상을 낳고 있다는데 있다.
권민용 EY한영 전무는 "많은 기업의 재무제표가 감사 일정에 의해 2월 말, 3월 초에 확정된다. 하지만 감사인과 이견이 있으면 3월 중순이 되어서야 확정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통상 법인세 신고 서식이 2월 중순 배포되는데 회계사들은 신고 서식을 작성하기 전 필요한 정보를 제출받기 위해 다시 기업에 정보를 요청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덧붙였다.
3월 초 법인세 신고서 작성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이 기간 동안 대부분의 회계사들은 하루 16시간 이상을 여기에 매달리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
권 전무는 "세액 계산의 정확성을 위한 작업 뿐 아니라 법인세 신고서에 포함될 필수 서식 작성에도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특히 대기업의 경우 당해 사업연도의 법인세 계산과 직접적 연관이 적은 해외 관계사 명세서를 만드는 데에도 3~4일이 걸린다"고 말했다.
이러한 업무 과중이 회계와 세무의 투명성을 저해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길모 회계법인 원 대표는 "회계와 세무는 숫자를 다루는 일이다. 업무가 제대로 수행되려면 기업 내부의 실무자나 기업 외부의 회계사 둘 다 충분한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부분의 비상장 외부감사 법인은 회계감사와 세무조정 기간이 2~3월에 중복되어 있어 많은 회계사들이 피로도 증가는 물론 주의 깊은 업무 수행이 어렵고 시간 부족으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문 대표는 비상장회사의 업무 지연에 의해 결산 마감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인력 운용의 비효율을 낳고 있다는 문제도 제기했다.
문 대표는 "경영자 입장에서 특정 시기에 업무가 몰리면 인력 운영의 차질이 생긴다. 인건비 부담이 늘거나 반대로 바쁘지 않은 시기에는 유휴인력이 생겨 경영상 부담으로 작용한다"며 "어쩔 수 없이 회계감사와 세무조정이 짧은 시간 안에 동시에 끝나도록 회계사들을 내몰고 있다"고 어려움을 전했다.
세무업계 또한 회계 인력이 적은 중소기업의 경우 장부 마감→결산 및 재무제표 작성→세무조정→법인세 납부 등 업무를 3월 말까지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부담이 과중하다는 입장이다.
이준 대원세무법인 세무사는 "장부를 마감하고 2~3개월 안에 모든 걸 다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며 "주주총회 준비도 해야 하고 정신없다보니 결산 종료 이후 세무조정까지 주어지는 시간이 짧다”"고 말했다. 기업 관계자들도 법인세 신고의 어려움에 동감하고 있다.
특히 국제회계기준(IFRS) 도입 이후 재무제표 작성 업무가 가중되고 있다는 의견에 힘이 실린다.
김종수 삼성증권 경영지원실 재무팀 차장은 "IFRS 도입 이후 연결재무제표가 주재무제표가 되며 업무 부담이 증가했다. 사업연도 종료일부터 3개월 안에 주주총회, 사업보고서 공시 등 업무를 병행하기 때문에 업무 과부하가 있다"고 설명했다.
김준철 KDB대우증권 재무실 세무회계팀장은 "IFRS 도입으로 결산 절차가 어려워지고 그 기간도 길어지는 등 회사 전반의 업무가 많이 늘었다.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고 말했다.
최복희 중소기업중앙회 정책총괄실장은 "일반 기업들은 보통 3월에 주주총회가 있기 때문에 감사 기간 등을 고려하면 재무제표를 확정하고 세무조정을 마무리하는데 있어 3월 말은 너무 촉박하다"고 했다. 정승영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정책연구실 선임연구원은 "기본적으로 기업회계와 세무회계 사이의 간극이 있기 때문에 이를 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3월 기업회계 결산 이후 주주총회 보고가 이뤄지고 법인세 신고를 하는데 결국 법인세 신고를 할 수 있는 실질적 기간은 매우 짧다"고 지적했다.
신고 기한 연장 합리적일까, 적정 연장 시한은?
법인세 신고 기한을 연장해야 한다는 의견에는 기업, 회계, 세무 업계가 모두 공감하는 분위기다.
권민용 전무는 "특정 기간에 과도하게 집중된 업무를 분산시키는 효과가 기대된다"고 예상했다. 문길모 대표는 "신고 기한을 늦추면 보다 신중하게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5월31일까지 종합소득세를 신고해야 하는 점을 고려할 때 이와 중복되지 않도록 4월30일까지 한 달 정도 연장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을까 한다"는 의견을 전했다.
기업 관계자들도 신고 기한을 1~2개월 정도 늦추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김종수 차장은 "사업연도 종료 후 4개월 안에 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판단된다"고 제안했다. 최복희 실장도 "4월 말이 적정하다고 생각된다. 다른 대안보다 기한 연장이 문제 해결에 가장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준철 팀장은 "회사 결산이 끝난 뒤 부가가치세 신고, 분기 결산 등을 고려해 5월 말이 적정하다고 생각된다"고 제안했다. 정승영 선임연구원은 "신고 기한을 연장해 기업의 부담을 덜어줄 필요가 있다"며 "법인과 개인 사업 간 균형을 고려하면 종합소득세 신고 기한(5월31일)과 12월 결산 법인의 법인세 신고 기한을 일치시키는 것이 하나의 방안이라 생각된다"고 전했다.
불필요한 서류 줄이고 분기 감사하는 대안 모색 필요
신고 기한을 연장하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은 없을까. 이해관계인들은 서류의 전자화나 감사 기간을 나누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을 냈다.
권민용 전무는 "법인세 신고 기한까지 제출해야 하는 서류를 최소화해 업무량을 분산시키는 방법이 있다"고 제안했다. 즉, 표준재무제표·법인세 과세표준 및 세액 계산서·법인세 과세표준 및 세액조정 계산서·소득금액 조정합계표 등 필수 서류는 전자 신고하고 나머지의 경우 차후 제출하는 것이다.
문길모 대표는 "12월31일로 몰려 있는 기업의 회계연도를 연중 평균으로 분산하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예를 들어 업종별로, 회사 설립 시기별로 회계연도 개시 기일을 나눠 적용하는 것이다. 세무업계도 원활한 법인세 신고를 위해서는 재무제표 감사 업무를 분산시키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의견.
손윤 세무법인오늘 대표는 "회계감사를 2월에 몰아넣은 것을 앞당겨 1월 초쯤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더불어 "기업들이 법인세 결산을 빨리하도록 유도해 회계사가 원래보다 보름 전에 감사하면 공평해질 것 아니냐"고 했다.
이준 세무사는 "감사를 연말에 몰아서 한꺼번에 하려다보니 업무가 몰리는데 분기에 한 번씩, 중간 감사를 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