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간 채무 보증규제로 주택PF 보증을 서준 건설사들이 이중 삼중고를 겪고 있다.
재벌 기업의 무분별한 확장을 막기위해 다른 기업에 대한 채무보증를 규제하도록 한 세법이 일상적인 건설사업 과정에서 생긴 채무보증에 대해서도 무차별적으로 적용, 건설업계의 시름을 가중시키고 있다.
정부는 당초 재벌기업 특수관계인 사이의 채무보증만을 규제했으나 범위를 넓혀 일반 기업간 채무보증으로 인한 대위변제 손실에도 법인세를 부과하도록 규제를 강화했다. 이로 인해 당초 제도권 범위에 속해 있지 않았던 건설업계가 직격탄을 맞고 있다.
주택시장의 장기침체로 미분양이 속출하자 주택건설사업을 위한 PF(프로젝트 파이낸싱)대출에 보증을 섰던 건설사들이 분양실패로 빛을 떠안는 피해사례가 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대신 갚아준 빚에 대해 세금까지 고스란히 부과되고 있어 건설사들의 고통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지난해 건설업계는 중소건설사는 물론 대형건설사들도 실적이 크게 악화돼 이익이 급감하고 적자로 전환된 건설사가 눈에 띄게 늘었다. 업계는 실적악화의 한 원인으로 국내 미분양주택의 PF대출 대위변제 손실이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실제로 삼성물산의 경우도 지난해 영업이익이 20% 가까이 감소했는데 영업악화의 가장 큰 이유를 오랫동안 묶여있던 국내 PF대출관련 손실 때문이라고 발표했다. 이렇게 빚을 떠안아 발생한 손실을 이익으로 간주해 세금을 물리고 있는 현행 세법 때문인 것이다.
건설업계는 조세논리를 떠나 상식적으로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현행 법인세법에는 금융회사가 아닌 일반기업들이 타사에 지급보증을 서는 것을 업무무관행위로 간주하고 이로 인해 발생된 손실에 법인세를 부과하고 있다.
건설사 관계자는 "건설업의 경우 건설사가 PF대출을 보증하지 않으면 은행들이 돈을 빌려 주지 않아 사업자체를 할 수 없는데도 다른 제조사들과 똑같이 법을 적용하고 있다"며 "사업이 망해 공사비도 못받고 빚까지 대신 갚았는데 거기다 세금까지 내야 한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IMF 당시 기업확장 막으려 만든 세금규제, 17년 '요지부동'
조세업계에 따르면 이런 세금규제가 생기게 된 이유는 과거 재벌 기업이 출자와 지급보증을 통해 무분별하게 사업을 확대하는 것을 방지하자는 취지에서 생겨났다고 설명한다.
1998년 IMF사태를 맞으면서 정부는 재벌기업의 기업확장 및 차입금을 억제하기 위해 출자제한에 더해 기업간 채무보증까지 규제하는 법안을 입법화했다.
당초 재벌기업의 특수관계인 간의 채무보증만을 규제했으나 점차 기업경영 투명성을 강조하면서 모든 기업으로 확대 시행해 공정거래법 뿐만이 아니라 세법에서도 채무보증으로 인한 대위변제 손실에 법인세를 부과하는 지금의 형태가 만들어 졌다.
무분별한 기업확장을 막는다는 논리로 사업현장의 특수성이든 기업이 이중 삼중으로 손해를 보든 상관없이 일괄적으로 세금을 부과하고 있다는 얘기다.
조세전문가들 "입법취지 공감하지만 현실 반영 필요"
조세전문가들도 입법취지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업종의 특성을 감안한 세부적인 적용 기준을 따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안창남 강남대 교수는 "PF에 대한 시공사보증이 관례화 되어 있는 건설업의 특성이 간과되면서 초래된 문제"라며 "실질과세 측면에서도 손실에 대한 세금부과는 비정상적이라는 논란의 소지가 많으므로 관련 법규는 개정되야 한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하지만 채무보증이 영업활동과 무관하게 이루어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는 장치도 함께 마련해 당초 입법취지를 훼손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홍기용 인천대 교수는 "부동산침체에 따른 건설사들의 어려움을 해소해주는 차원에서 법개정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대손상각, 감가상각 등과 같이 손금인정 한도를 두거나 조세특례법을 통해 한시적으로 손금을 인정해 주는 방법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이와 관련해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부동산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곳곳에서 대위변제로 인한 손실로 경영자체가 위험해 지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며 "과거 부동산경기가 좋던 시절 만들어진 규제인만큼 손실이 쌓여 가고 있는 지금은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최근 규제완화 정책에 세제상의 규제도 포함시켜 달라고 요청했다.
이밖에도 건설업계는 부동산과열 시기에 투기 억제를 위해 만들어진 재개발 중단 손실을 불인정 하는 규정이나 사업추진이 어려워 비사업용으로 전환된 토지에 대한 중과세 등의 규제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