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3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제48회 납세자의 날 행사 치사를 위해 단상에 오른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세금을 다 내면 바보'라거나 '월급쟁이만 봉'이란 말이 진실인 양 통용되는 불편한 현실을 반드시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불과 이틀도 채 안돼 현 부총리가 이끄는 기획재정부는 성실히 세금을 납부한 이들을 '바보'로 만드는 정책을 내놨다. 성실납세자는 바보가 되고 탈세자들에게는 특혜를 주는, 조세형평에 어긋나는 정책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지만 정부는 어쩔 수 없다는 설명만 내놓고 있다.
정부가 주택 임대차 시장을 선진화하겠다며 연일 쏟아내고 있는 대책들에 대한 불만여론이 가시지 않고 있다. 특히 주먹구구식 대책은 납세의무를 성실하게 이행한 일부 집주인들의 '주먹'을 울게 만들고 있는 형편이다.
정부가 집주인들의 성난 민심을 달래기 위한 목적으로 내놓은 보완책은 민심을 달래기는 커녕, '조세저항' 수준으로 번지면서 불난 집에 기름을 확 끼얹는 꼴이 돼 버렸다.
기획재정부를 비롯한 5개 부처가 지난달 26일 발표한 '서민·중산층 주거안정을 위한 임대차시장 선진화 방안'은 현행 월세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하고 2주택 이하·연간 임대소득 2000만원 이하 임대소득자에 대해 분리과세 한다는 내용이었다.
대책이 발표되자 마자 벌떼처럼 일어난 집주인들의 반발여론에 정부는 수 일만에 백기투항을 했다. 분리과세를 2년 유예하고 필요경비를 45%에서 60%까지 상향조정해주는 한편, 과거 소득분에 대해선 묻지도 따지지도 않겠다는 '유화책'을 들고 나왔다.
□ 성실납세자 '바보' 만든 어이없는 조세정책 = 유화책을 받은 시장의 분위기는 대책을 처음 발표했던 당초와는 기류 자체가 달라진 모습. 정부가 정책을 처음 발표했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세금폭탄'에 대한 우려가 높았지만 지금은 또 다른 형태의 반감이 생겨나고 있다.
핵심은 정부가 2주택 보유자로서 주택임대소득(수입금액) 연 2000만원 이하 임대소득자의 경우 그 동안 세금을 내지 않은 부분에 대해 사실상 '면책권'을 부여했다는 점에서 파생되고 있다.
당초 시장에서는 국세청이 국토부로부터 전월세 확정일자 자료를 넘겨받게 되면서 과거 세금을 내지 않았던 부분에 대한 대대적인 세금추징이 뒤따를 것이라는 불안감이 팽배했었다.
이 같은 집주인들의 불안감 해소를 위해 정부가 내놓은 카드가 면책권이다.
구체적으로 확정일자 자료는 2013년분만 넘겨받고 이 중 3주택 이상 소유자(3주택 이상, 2주택 보유자 중 임대소득 연 2000만원 초과자, 1주택자 중 기준시가 9억원 초과 주택 소유자) 등에 대해서만 신고안내 자료로 활용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다.
2012년 기준 임대소득이 있는 것으로 추산된 신고대상자는 136만5000명. 국세청은 이 중 34만명에 대해서만 신고안내를 했고 이중 임대소득을 자진신고한 인원은 8만3000명 수준이었다.
국세청에 따르면 정부가 설정한 면책 가이드라인(2주택 이하·연 임대소득 2000만원 이하)에 속한 이들 중 대부분이 세금을 내지 않았지만 문제는 적은 액수라도 성실하게 세금을 납부한 임대소득자도 상당한 숫자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정확한 숫자를 계산할 수 없지만 자진신고를 통해 세금을 납부해 온 임대소득자들도 상당수다"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정부의 면책권 부여는 성실히 세금을 냈던 임대소득자들은 '바보'로 만들고 '탈세자'를 용인한 셈이 된 것이다.
정부도 이 정책방향의 문제점을 인지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과거 임대소득에 대한 것을 따지지 않겠다는 것은 기존에 세금을 냈던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조세형평성에 어긋날 수 있다"며 "임대소득자들의 불안감 해소를 위해서는 방법이 없었다"고 말했다.
'지하경제 양성화'라는 정부의 정책의지를 스스로 꺾은 꼴이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상 그동안 소액 임대소득은 세금 '무풍지대'나 다름없었다. 확정일자 자료 확보는 정부의 의지 여하에 따라 임대소득 세원을 대폭 넓히는 한편 과거의 비정상 관행을 정상으로 돌릴 수 있는 기폭제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정부는 조세형평성 저해를 무릎쓰고 과거분 면책권과 함께 향후 2년 동안 비과세 혜택까지 부여, 기회를 발로 차 버렸다. 일각에서는 2주택 이하·연간 2000만원 이하 임대소득자들에 대한 과세권 행사가 효과(세수)에 비해 비용(행정력)이 과다, 실익이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에 과거 소득을 불문율에 부쳐 소수의 성실납세자가 아닌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탈세자들의 민심을 얻는 전략이 정부로서는 더 이득이라는 이야기다.
□ 허점투성이 보완책, '의구심' 팽배 = 시장의 동요를 잠재우기 위해 내놓은 보완책에 대해 집주인을 비롯한 부동산 시장에서 강한 불신을 표출하는 근본적 이유는 '현장'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만들어진 정책이라는 의구심이 자리잡고 있다.
시간에 쫓겨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뚝딱 정책을 내놓았지만, 수많은 경우의 수가 발생하는 시장의 현실을 담아내기는 역부족이었다는 것이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들은 과세를 2년 유예하고 필요경비를 45%에서 60%로 늘리는 방안에 대해서도 강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현재 일반 임대사업자는 45.3%의 필요경비가 적용되고 있으며 국토교통부에 임대사업등록을 한 장기임대사업자의 경우 60.2%를 적용하고 있다. 정부는 이를 근거로 필요경비를 60%로 인상했지만 현장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방향이라는 지적이다.
KD D&C 김기덕 대표(부동산컨설팅)는 "집주인들은 실제 집수리에 쓰인 금액을 필요경비로 인정받고 싶어한다. 노후된 집일수록 보수비용이 많이 들고 신축일수록 비용이 적게 든다"며 "월세 40만원씩 받아도 보일러 한 번 고치면 수십만원이 깨지는데 필요경비를 60%로 일괄 적용하는 것은 임대주택의 지출구조를 제대로 조사하지 않은 '탁상행정'의 산물"이라고 지적했다.
임대소득을 연 2000만원 이하로 끌어내리기 위해 집주인들이 이면계약서나 다운계약서를 강요, 월세 세입자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상황이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도 계속되고 있다.
김 대표는 "막상 세금이 부과되기 시작하면 집주인들이 가만 있지 않을 것이다. 이면계약은 90% 정도 이뤄질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세입자에게 돈을 계좌이체로 안 받고 현찰로 가지고 오라고 하는 경우도 발생이 예상되며 정부의 의도와는 달리 임대소득 세원 투명화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