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신고세액공제와 세무사들

전자신고세액공제 존치, 지급명세서세액공제 폐지

연말 세법개정안 입법작업이 해를 넘겨 마무리됐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정부의 세법개정안과 의원입법안 등 세법개정안에 대한 심의는 지난해 마지막 날까지 이어졌고 밤늦게야 대안을 최종 마련해 기재위와 법사위를 거쳐 2014년 새해가 되고서야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그런데 이번 개정안에는, 지난 10년간 납세자나 세무사·회계사들이 법인세·종합소득세·부가가치세 등 모든 신고시 전자적인 방법으로 제출하는 경우 전자신고세액공제와 지급명세서 전산제출세액공제를 정부가 세수확충을 위해 전면폐지하겠다고 밝혀 과연 어떻게 될 것인지가 업계의 큰 관심사였다.

둘의 운명은 엇갈렸다. 전자신고세액공제는 유지된 반면 같이 거론되었던 지급명세서 전산제출세액공제는 결국 폐지되고 말았다.

그동안 노심초사해 온 세무사들의 입장에서 보면 더 큰 규모의 전자신고세액공제가 폐지되지 않아 천만다행이지만 당장 곧 다가올 연말정산 지급명세서 제출 분부터 일체의 세액공제를 받지못해 연간 50억원 넘는 손해를 감수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유사한 성질의 납세협력비용 보전성질의 세액공제를 놓고 하나는 존치하고 하나는 없어지게 된 희안한 결과는 여야 국회의원들의 줄다리기 때문이 아니라 폐지를 반대해 온 여야 의원들에 끝까지 강력하게 폐지를 주장한 정부 때문이다.

세무사회의 대응과 세무사들의 한 걱정

지난해 8월 전자신고 등 세액공제 폐지안이 나온 이후 즉각 세무사회는 기재부에 폐지하면 안된다며 조목조목 사유를 들어 폐지반대 건의서를 공식 제출했지만 일언지 하에 거절당했다.

다른 세수확보책이 없는 상황에서 간신히 마련한 근로자 소득공제의 세액공제전환과 세액공제 폐지방안이 거의 유일한 방책이었던 정부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이었다.

정부의 이같은 강한 의지를 확인한 세무사회 집행부는 세무사제도 창설기념식과 지역회장 간담회 등 기회있을 때마다 회원들에게 폐지를 막기 어렵다며 회원들의 이해를 구하곤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연간 500억이 넘는 엄청난 업계손실을 앞둔 세무사들은 세무사회의 미온적인 대응과 비관론에 이대로 가다가는 전자신고세액공제는 폐지되고 말 것이라는 불안에 휩싸였고 세무사고시회와 미래포럼 등 회원단체까지 나서 좀더 강력하게 대응해 줄 것을 촉구했지만 달리 뽀족한 수를 찾지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일시에 분위기와 상황을 급변시킨 것은 국회에서 세법개정안 심사를 시작하는 시점을 맞춰 열린 '2014 세제개편 간담회'였다.

폐지불가 분수령이 된 세제개편 간담회

개업세무사 출신으로 정부의 전자신고세액공제 폐지안으로 인한 세무사들의 불안감을 잘 아는 민주당 백재현 의원이 세무사고시회와 서울지방세무사회 임원․지역회장 등 세무사들을 초청해 폐지 여부의 열쇠를 쥐고있는 조세소위 위원들과 대화의 자리를 마련한 이 간담회에 참석한 세무사들은 전자신고세액공제가 납세협력비용 실액보전책으로 폐지되면 전자세정이 불가능해질 것이라며 폐지불가를 강력하게 주문했다.

이에 조세소위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있는 민주당 이용섭, 홍종학 의원은 물론 새누리당 나성린 위원장까지 "세무사들의 역할과 고충을 잘 알고 있다"며 "전자신고세액공제는 실액공제이므로 폐지할 수 없다"고 입장을 밝히는 성과를 얻어냈다.

이로써 조세계는 일순간 전자신고세액공제 비관론이 낙관론으로 변화되고, 국회에서 수세적인 입장도 세무사회가 아니라 폐지하겠다는 정부로 바뀌었다.

이러한 기조는 조세소위 심의과정에서도 의원들의 폐지불가론에 맞서 3년 유예 후 폐지까지 제시되었지만 흔들림없이 결국 전자신고세액공제 폐지불가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 

뼈아픈 지급명세서 세액공제 폐지

하지만 이 과정에서 지급명세서세액공제는 폐지됐다. 조세소위 위원들과의 간담회 이후 두 세액공제 폐지안 모두에 대해 여야 의원들이 폐지를 반대해왔고 이 또한 조세지원이 아닌 납세협력비용에 대한 보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폐지는 의아하다.

당초 정부 세법개정안에는 없었지만 소득세 최고세율을 적용하는 과표구간을 3억원에서 1억5천만원으로 대폭 낮추는 증세안이 마련되었기에 더욱 그렇다.

그런데다 이번에 통과하지 못한 전자신고세액공제 폐지안도 향후에 정부가 얼마든지 다시 들고 나올 수 있는 데다 이런 경우 지급명세서세액공제 폐지논리가 전자신고세액공제 폐지에 이용될 소지도 있기 때문이다.

부득이 폐지해야 하는 상황이라도 정부에게 더 이상 전자신고세액공제 폐지안을 제출하지도, 시행령에 규정한 공제금액을 축소를 위해 더 이상 손대지 않겠다는 약속하지 않았다면 최종 승자가 세무사들이라고 기뻐하기는 이르다.

세무사들이 '조세변호인'이 돼야 하는 이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전자신고세액공제를 일단 지켜 낸 것은 최근 부쩍 힘과 위상이 높아진 세무사들에게 또 다른 진일보의 의미를 갖는다.

2011년 세무사법 개정시 세무사회 집행부의 지휘 아래 전국의 세무사들이 들불같이 일어나 자동자격 부여를 폐지시키더니 이번에는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해 대응이 난감한 정부법안에 개별 세무사를 비롯한 회원조직들이 직접 나서서 대세를 바꾼 것은 선례를 쉽게찾기 힘들다.

경쟁적인 세무대리 단체간의 밥그릇 싸움이 아니라 강력한 의지를 가진 정부를 상대로 납세자와 업계의 권익을 지켜냈다는 면에서 조세계에서 하나의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세상에는 권력과 편견에 맞선 한 지방 변호사의 이야기를 다룬 '변호인'이라는 영화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있다.

당연히 국민들 사이에서 변호사라는 전문 자격사에 대한 인식도 덩달아 크게 높아졌다. 힘 있는 변호사협회 회장이 아니라 헌법과 국민만을 생각하는 정신이 바른 무명의 변호사 한명이 업계와 세상을 바꾼 것이다.

이제 세무사들도 이번 경험을 계기로 자신들이 세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함에도 제대로 대우받지 못한다는 피해의식이나 수동적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세무사 한 사람 한 사람이 우리나라 조세와 재정에 대해 사명감과 주인의식으로 세제와 조세현장을 개선하고 납세자 권익을 지켜내는 데 치열한 '조세변호인'이 돼야 한다. 그렇게 되면 세무사의 권익은 힘겹게 스스로 지키지않아도 국민들이 든든히 지켜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