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국회에 제출된 국세청법의 핵심은 '국세청장 임기제'로 요약된다. 적정한 임기를 보장함으로써 인사권을 행사하는 '권력자(대통령)'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껏 국세청 조직을 운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는 것이 임기제의 취지다.
이주성 전 국세청장과 전군표 전 국세청장 등 개인 비리에 연루, 감옥행 운명을 맞은 일부 전직 국세청장을 제외하고 사회적 풍파를 일으킨 '불명예 청장'들의 특징은 정치와 직·간접적으로 엮여있다는 점이다.
최고 권력자의 의중에 따라 수시로(?) 기관장을 갈아치우는 한국만의 공직 인사풍토에서 일정한 임기를 법적으로 보장하지 않을 경우 해당 권력기관장들이 자신의 자리유지 또는 더 높은 곳으로의 진출을 위해 정권 주변을 기웃거리는 행보를 할 소지가 크다는 것이다.
검찰총장과 경찰청장 등 인신구속력을 가진 권력기관장의 경우 특수조직법과 함께 임기를 보장(2년) 해주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즉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기 위한 최선의 수단이 임기제라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국세청장 임기제 도입 필요성은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다만 문제는 임기보장이라는 법적 장치가 제 기능을 다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국세청장 임기제 무용론자들의 주장이다.
실제로 검찰과 경찰의 경우 법적으로 보장받은 임기를 제대로 채우고 퇴직한 경우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훨씬 많았다. 이에 국세청법 반대론자들은 임기제를 포함한 정치중립 의무를 국세기본법에 명문화하는 소극적 접근법이 더 현실적이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2013년형 국세청법, 주요 내용은?
민주당 정성호 의원이 대표발의한 국세청법의 내용은 국세청장 임기제 도입만 담긴 것은 아니다. 1999년 국세공무원법, 2007년 국세청법에 비해 한층 내용이 업그레이드 됐다.
국세청장 임기제는 2년 단임이 원칙. 중요한 부분은 국세청장 자격조건을 우회적으로 명시했다는 점이다. 기획재정부 산하 '국가세무위원회'를 만들어 이 위원회를 통해 국세청 소속 1급(고위공무원 가급) 중 국가세무위원회가 추천한 인물을 국세청장에 임명토록 했다.
사실상 국세청장 내부승진제롤 법제화한 것이다. 이는 검찰총장, 경찰청장 인선 시스템과 유사성이 있는 대목이다. 국세청 조직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외부인 출신은 원천적으로 국세청장에 임명될 수가 없도록 한 것이다.
주목할 부분은 국가세무위원회의 존재다.
이는 미국 국세청을 관리감독하는 기구인 '내국세입청 감독위원회(IRS Oversight Board)'를 벤치마킹 한 것으로 9명의 내·외부 인사로 구성해 ▲국세청장 후보자 추천 ▲국세청 예·결산 ▲직원 감찰 및 징계 ▲비정기 세무조사 추인 ▲직제개편 등 주요사항 의결권 등을 부여받는다.
국가세무위원회 회의 내용은 원칙적 비공개이며 국세청장은 이 위원회의 심의·결정을 존중하고 따르도록 의무화했다. 보기에 따라 국세청장의 권한을 초월하는 막강한 권한을 부여받는, 사실상 국세청을 운영하는 협의체가 되는 셈이다.
이와 함께 사무차장(기획·인사·예산·감사·국제조세 관장)·과세차장(세원관리·세무조사·개별과세업무 관장)으로 구분되는 복수차장제를 도입하고 현재 고위공무원 나급(2급)으로 분류되어 있는 납세자보호관을 별정직 가급으로 격상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납세자보호관을 별정 가급으로 격상한다는 것은 객관적 시각으로 납세자보호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독립성과 권한을 강화하겠다는 복안이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필요시 3급(부이사관) 국세공무원을 세무서장에 임명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는 그동안 국세청 안팎에서 제기됐던 '광역세무서' 체계 구축을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또한 효과적 국세통계 생산과 국세공무원 대상 교육을 전담하는 국세연구원을 1급 상당 별정직으로 신설하는 내용도 담겼다.
또 다른 핵심 포인트는 2만 국세공무원을 특정직공무원으로 전환하고 보수 또한 직무 특수성을 고려해 정할 수 있도록(시행령) 규정한 부분이다. 이는 사실상 국세공무원 보수 인상을 위한 '장치'다. 다만 금품 등 각종 비리행위에 대한 처벌 강도를 대폭 높여, 고임금에 대한 '반대급부(청렴성)'를 확보한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 셈이다.
'타임머신'을 바꿔 탄 與野
국세청법이 올해 정기국회 문턱을 넘어설 수 있을지 여부는 현재로서는 장담하기 힘들다. 법안 발의자인 정성호 의원이 속한 당(민주당)이 국세청법을 당론으로 채택, 추진동력은 확보된 측면이 있지만 이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이 문제다.
우선적으로 정치적 고려가 가미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를 내어주고 하나를 받는 것이 정치의 속성이지만 집권당인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국세청법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의미를 고려할 때 '딜(Deal)'의 대상으로 삼기 힘든 구석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2007년 국세청법 논의 과정에서도 어느 정도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당시 야당 주도하에 법률안이 입법발의 됐다. 세부 조항에 대한 극심한 찬반 논란에 영향을 받은 측면도 있지만 당시 국세청법 논의가 흐지부지 된 것은 대통령 선거의 영향이 컸다.
어차피 정권이 교체되면 정부 조직의 변화를 가하는 시도가 이루어진다는 측면에서 새 정부 출범 후 논의하는 것으로 정리가 되면서 수면 아래로 내려갔고, 이듬해 이명박 정부 출범 및 18대 국회 출범과 함께 입법안 자체가 폐기됐다.
정치적 상황은 2007년과 2013년은 분명 다르다. 다만 당시 국세청법 제정을 반대하던 여당(열린우리당, 현 민주당)이 현재는 야당이 되어 국세청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당시 국세청법 제정을 추진했던 야당은 현재 여당(새누리당)이 됐다.
정치의 영역을 떠나서도 난점은 존재한다. 십 여년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국세청법의 세부내용에 대한 찬반이 팽팽히 맞서는 부분은 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국세공무원들을 특정직화 한다는 점, 즉 '보수인상'을 수반하는 특정직화에 대한 공직사회의 알레르기 반응은 여전하다. 보수인상은 예산과 연동된다는 실리적 측면을 고려할 때 정치권의 합의는 정부 차원의 합의, 국민적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국세청법 도입 시도가 또 다시 심연(深淵)으로 가라앉을 개연성은 충분하다는 것이다.
기획취재 : 김진영 정책팀장, 이희정·이현재·강상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