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뻔히 알면서 '하지마라' 계도만…대책마련 시급
새로 도입된 국제회계기준(K-IFRS)이 어려워 상당수 기업들이 재무제표 작성업무의 일부를 외부감사인에게 위탁하는 행위가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돼 충격을 주고 있다.
현행법에서는 재무제표 작성 등의 회계처리는 회사가 직접 하도록 하고, 회사의 회계처리가 회계기준에 따라 적정하게 이뤄졌는지를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외부감사인이 회계감사를 통해 검증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회사 재무제표를 회계법인 등 외부감사인들이 일부라도 작성한 뒤 회계감사까지 한다면, 스스로 만든 재무제표를 자신이 회계감사를 통해 검증하는 것이어서 객관적인 회계감사를 기대할 수 없는 데다 '외부(外部)감사'라는 회계감사 본연의 목적도 달성하기 힘들다.
더 중요한 문제는 외부감사인 제도자체가 흔들릴 만큼의 불법이 이뤄지고 있는데도 이를 감독할 금융당국은 기업들이나 외부감사인에 대한 제재를 가하기보다 기업 스스로 자체적인 결산능력을 제고할 수 있도록 계도(啓導)한다는 방침 외엔 수수방관하고 있다.
지난 8월 금융감독원이 상장사를 대상으로 재무제표 작성업무의 일부를 외부감사인에게 의존하는 관행을 근절 할 것을 요청한 것이 전부. 이에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공인회계사회도 회계법인과 회계사들에게 감사인 모니터링을 강화겠다는 뜻을 밝혔다.
재무제표 작성의 외부감사인 의존 행위는 기업이 재무제표·연결재무제표를 직접 작성해 일정기간 내 감사인에게 제출하는 '외감법'과 감사인이 피 감사회사의 재무제표를 작성하는 것을 금지하는 '공인회계사법'을 위반하는 것.
그러나 기업과 회계법인 양측간 이해관계가 얽혀있고 위법을 행한 기업에 대한 법적 제재가 없어 이 같은 편법적 감사 관행이 이어지고 있다.
A회계법인의 한 회계사는 "국제회계기준(IFRS)에 맞춰 감사인이 원하는 재무제표를 작성하는데 있어 중소기업 회계 실무자의 이해도 수준이 현저히 떨어진다"며 "이 같은 상황을 아는데 기업에게 무조건 기준에 맞춰 작성·제출하라고 할 수도 없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B회계법인에 근무하고 있는 회계사는 "IFRS 도입 1년이 지난 현재 대기업을 제외한 상당수의 기업들이 예전 K-GAAP 재무제표를 감사인에게 제시하고 있고 그것을 토대로 회계사들이 IFRS로 변환하는 형식으로 감사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이어 그는 "자율수임제로 인해 회계사들은 회사 니즈를 들어 줄 수밖에 없는 것이 한계이다"며 "이 같은 문제를 전환하기 위해선 회계법인이나 회계사가 아닌 감사대상 기업에 제재를 가할 수 있는 제도를 금융당국에서 만드는 것이 가장 적절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감사인 의존관행 현실은 부분적으로 인정 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라며 "예를 들어 주석사항 작성에 있어 기업이 회계법인에 모두 위탁했는지 일부 자문을 구했는지 등 기업마다 천차만별이라 제재를 가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고 말했다.
또한 금감원 관계자는 "2008년부터 기업들에게 감사업체에만 의존하지 말고 용역업체(프라이빗 어카운턴트)에 부담을 전가해 기업과 감사인 사이에 발생할 수 있는 이해상충 문제를 피하도록 당부해 왔다"고 강조했다.
'프라이빗 어카운턴트'란 회계 전문 인력이 부족할 경우 감사인이 아닌 타 회계법인의 자문을 받을 수 있는 제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