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 “자사주 제도 개선방안 검토...구체적 방향 미정”
자사주 매입, 주가부양 의지와 기업가치 저평가 알리는 효과
인적분할 시 지배주주 지배력 강화하는 ‘자사주 마법’ 문제
재계 “지주회사 전환 꺼릴 것...경영권 방어 장치 필요”
금융당국이 코리아 디스카운트(국내증시 저평가) 해소를 위해 자사주 제도를 손본다. 자사주 매입 후 소각이 의무화되면 주가 상승효과가 기대되나 재계에서는 경영권 방어에 걸림돌이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10일 "일반투자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자사주 제도에 대한 개선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라면서도 "아직까지 구체적인 정책 방향이 확정된 바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도 향후 관계부처·기관 및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견수렴이 선행돼야 할 사안이라고 검토 여지를 남겨 두었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도 지난 2일 ‘2023년 증권·파생상품시장 개장식’에서 기업의 자사주 처분과 관련해 "제도 개선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앞서 한 매체는 자사주 매입 후 소각 의무화와 인적분할 시 자사주에 대한 신주 배정 금지 등 내용이 금융위 신년 업무계획에 포함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자사주 매입이 지배주주의 지배력 강화에 악용되거나 매물로 나와 주주가치를 훼손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기 때문이다.
자사주 매입은 기업의 잉여금을 유통시장에 투입해 주식을 사들여 주가 부양에 즉각적 효과를 가져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매수 주체가 없는 상황에서 기업이 능동적 주체로 나서면서 수급 안정성을 높이고, 유통주식 수를 감소시켜 실질적인 주당순이익(EPS)과 자기자본이익률(ROE)을 높인다. 또 기업의 주가 부양 의지와 기업가치 저평가 사실을 시장에 알리는 '시그널링 효과'도 있다.
주가 상승효과를 위해서는 실제 유통주식 수를 감소시키는 자사주 소각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최유준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소각되지 않는 자사주는 추후 유통시장으로 다시 풀릴 수 있다"며 "이는 자사주 매입이 주가 부양보다 자금 조달 목적으로 되는 것이며 물량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자사주를 소각해 주주환원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상장기업은 2.3%에 불과하다. 기업이 보유한 자사주를 지배주주의 사적이익을 위해 악용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경영권 분쟁 상황에서 자사주를 지배주주의 우호적 주주에게 매각해 경영권을 방어하는 수단으로 이용하거나 내부자거래와 결부되기도 한다.
특히 인적분할 과정에서 지배주주가 아무런 비용 없이 지배력을 강화하는 '자사주 마법'도 대표적인 부작용으로 꼽힌다. 자사주 마법의 문제는 지배주주와 일반주주 간 부의 배분에 왜곡을 일으킨다는 점이다. 자본연에 따르면 자사주 마법을 동원한 인적분할 이후 지배주주의 존속회사와 신설회사에 대한 지분율은 15%p, 11%p씩 증가하는 반면, 일반주주의 시가총액 보유비중은 6%p 감소했다.
김준석 자본연 선임연구위원은 "지배주주의 비용이 아니라 배당가능이익을 바탕으로 취득한 자사주를 이용해 지배력 강화를 꾀하는 것은 정당성에 대한 논란을 피할 수 없다"며 "자사주의 취득은 곧 소각을 의미하는 것이어야 경제적 실질에 부합할 뿐만 아니라 지배주주의 자사주 남용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같은 자사주 제도 개선이 기업에는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포이즌필, 차등의결권 같은 경영권 방어수단이 전무한 상황에서 기업의 자사주 활용을 막으면 적대적 인수합병에 대응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재계 관계자는 "자사주를 소각하면 지주회사 전환 시 지배주주의 지분이 약화할 수 있어 경영권을 노리는 세력에 대응하기 어려워진다"며 "경영진이 보유한 지분으로 경영권을 안정화할 수 있도록 차등의결권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이미 미국 등 많은 나라에서 도입한 제도"라고 말했다.
이어 "자사주 제도는 기업의 순환출자를 해소하고 지주회사 전환을 유도하는 차원에서 활용됐는데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한다면 기업들은 지주회사 전환을 재고할 수밖에 없다. 지배구조 상으로도 올바른 방향인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