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우일렉 인수 취소된 이란 다야니 가문에 지급할 배상금
- 법률분쟁과 대이란 제재로 10년간 계좌에서 '휴면'
◆…600억 원 대의 대형 횡령 사고가 터진 우리은행 본점 건물.
우리은행에서 벌어진 대형 횡령사고는 이런 궁금증을 갖게 한다. 첫 횡령이 이루어진 시점이 2012년이기 때문이다. 범인 A씨는 이후 2015년과 2018년 등 모두 세 차례에 걸쳐 614억원을 횡령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10년 동안 은행 안팎의 누구도 문제의 자금이 무사한지를 챙겨보지 않았다는 얘기가 된다. 매일의 일과를 시재 확인으로 마무리하고 해마다 회계감사를 받는 은행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이 돈의 사연은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11월 대우일렉트로닉스(현 위니아전자, 이하 대우일렉)의 채권단은 채권 회수를 위해 대우일렉의 매각에 나섰다. 2010년 4월 이란 가전업체 엔텍합의 소유주인 다야니 가문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고 다야니는 싱가포르에 세운 특수목적법인(SPC) D&A를 통해 계약금 578억 원을 지급하고 실사에 들어갔다.
문제는 실사를 마친 D&A가 투자확약서(LOC)를 제출하는 과정에서 인수대금을 깎아줄 것을 요구하면서 꼬이기 시작했다. 채권단은 다야니늬 요구를 거부하고 계약해지와 함께 계약금을 몰취했다. 이에 다야니가 한국 법원에 매수인 지위 인정 소송 등을 제기하면서 문제의 계약금은 채권단 대표인 우리은행의 계좌에 묶였다.
이후 한국법원이 다야니의 소송을 기각하자 다야니는 다시 2015년 한국 정부를 상대로 유엔 산하 국제상거래법위원회 중재판정부에 ISD를 제기했다. 이 사건은 수년을 끌다 2019년 12월 20일 다야니 가문에 계약금과 이자를 포함, 730억 원의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최종 판정이 확정됐다, 한국 정부가 ISD에서 패소한 첫 사례였다.
그러나 ISD 패소 후에도 문제의 자금은 여전히 우리은행 계좌에 묶였다. 이번엔 미국의 대이란 경제제재가 문제였다. 다야니 가문에 대한 송금 거래를 미국 정부가 제재조치 위반으로 간주할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앞서 유사한 사례도 있었다. IBK기업은행이 2011년 대이란 제재를 위반한 기업의 송금을 중개한 이유로 미국 사법당국으로부터 벌금 1049억 원 납부 판결을 받았던 것. 당시 기업은행은 직접 대이란 제재를 위반한 건 아니고 위반 기업의 송금을 중개했을 뿐인데도 자본세탁방지법 위반으로 간주된 것이다.
이런 점을 우려한 정부는 다야니에 대한 배상금 지급을 미룬 채 미국 정부에 입장을 조회했다. 그 바람에 배상금 지급이 지연되자 이란 다야니 가문은 한국의 해외 자산에 대해 압류를 시도하기도 했다.
이 문제의 물꼬가 트인 것은 올해 1월 6일이었다. 미 재무부 산하 해외자산통제실(OFAC)이 다야니에 대한 한국 정부의 송금을 허용하는 특별허가서(specific license)를 발급한 것. 다야니 측에 배상금을 지급하기 위해 금융시스템 활용을 승인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따라 드디어 우리은행이 다야니측에 배상금을 송금하기 위한 업무에 착수했는데 정작 계좌를 열어보니 A씨의 횡령으로 텅 빈 잔고만 확인하게 된 것이다. 참으로 기구한 사연의 돈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