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대화국면과 지방선거 완승으로 안정적인 집권2기를 맞는듯했던 문재인정부가 경제상황 악화로 일대 궁지에 몰렸다. 6ㆍ13 지방선거 직후 조사에서 78%를 기록했던 문대통령의 국정지지도는 불과 한 달 만에 10%포인트 이상 빠졌다.
특히 최저임금 인상 및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정책추진 이후 크게 나빠졌다는 것은 예사롭지가 않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자영업자들이 더 힘들어졌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일자리가 줄어들었다”는 여론이 각각 70%를 넘었다.
근로시간 단축의 경우 시행 전에는 여론의 지지가 높았지만 막상 시행된 이후 실질 근로시간이 달라지지 않았다는 응답이 48%, 실질 급여가 감소했다는 비율은 64%에 이르렀다. 주요정책의 긍정적 측면보다는 부정적 측면이 더 부각되는 상황이다.
집권 1년여가 지난 지금 J노믹스(문재인정부 경제정책)의 성적표는 초라하다. 소득주도 성장이 내세웠던 '성장'도, 일자리 정부로 자임했던 그 '일자리'도 둘 다 신통치가 않다.
그렇다고 분배가 개선된 것도 아니다. 올해 1분기 하위 20%의 소득은 8% 줄고 상위 20%는 9.3% 늘어 소득격차가 관련 통계 작성 후 최대로 벌어졌다. 더 늦기 전에 정책궤도를 근본적으로 수정해야한다는 삿대질도 사방에서 쏟아지고 있다.
더구나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에서 정부는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에서 2.9%로 낮추고 내년 성장률 전망치도 2.8%로 0.1%포인트 내렸다.
2001~2010년만 해도 우리 경제는 연평균 4.4%의 성장을 지속했지만 2015년과 2016년에 2%대로 추락했다. 지난해 3.1%로 올라서면서 성장률 하향 추세가 일단 멈추고 당분간 3%대 성장을 지속할 수 있다는 기대를 낳았지만 이내 물거품이 됐다.
특히 설비투자 증가폭은 지난해 말 전망(3.3%)의 절반도 안 되는 1.5%로 내렸다. 취업자 증가폭 전망도 지난해 말 32만 명에서 18만 명으로 대폭 내려 잡았다. 성장률과 고용전망을 다시 낮춰 잡은 상황에서 무엇으로 '일자리 정부'라고 내세울 것인가.
정부는 일자리 정책과 소득주도 성장정책을 통해 고용창출이 소득증대로 이어지고 소비·투자가 활성화되는 선순환을 기대해왔다. 하지만 소득주도성장은 단기적으로 소득불균형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고, 고용시장의 거듭된 부진은 경기둔화와 함께 비교적 좋은 흐름을 보여 오던 소비마저 위축시키는 딜레마를 안기고 있다.
특히 고용부진은 전체 취업자 수뿐 아니라 청년층, 취약계층의 취업난 등 구조적으로 악화추세다. 우리 경제가 세계 경기회복세와 수출 호조에 힘입어 3% 성장했음에도 그 성장세가 고용창출로 이어지지 않고 있는 탓이다.
고용부진의 원인은 구조적이고 복합적이다. 반도체 등 수출증가를 주도한 업종이 고용유발 효과가 작은 데다 자동차 조선 등 산업 구조조정 여파로 제조업 전체 취업자 수가 감소세로 돌아섰다.
인구구조 변화로 학령인구가 줄어들면서 교육서비스업 일자리 수와 취업자 수가 줄어들었고, 건설 및 부동산 경기가 둔화되면서 건설업과 부동산업 취업자 수도 크게 줄고 있다.
도·소매업, 숙박·음식업에서 취업자 수가 줄어든 것은 지난해 사드 사태 이후 중국인 관광객 감소 및 회복지연에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한마디로 '고용 없는 성장'의 가속화 등 우리 경제의 고용창출력이 구조적으로 약화된 데 따른 것이다.
작년 최저임금 16.4% 인상은 지난 7개월 동안 550여만 명의 월급을 10만원씩(연간 총 7조원)끌어 올렸다. 세계 12위, 경상 GDP(국내총생산) 1700여 조원의 경제규모에서 최저임금인상 때문에 나라가 망할 것처럼 아우성치는 것은 지나친 정치공세다.
문재인 정부 소득주도성장 제1항의 정책이 '가계의 실질 가처분 소득 증대' 즉 최저임금인상이다. 다음 2항이 이를 뒷받침하는 '영세 상공인 부담 완화를 위한 일자리안정자금 지원, 카드수수료 인하, 공정질서 확립'이다. 최저임금을 올리면서 이들 영세상공인 부담완화조치를 함께 시행해 충격을 최소화해야 했었는데 첫 단추를 잘못 꿰어 화를 키운 것이다.
최저임금은 근로자의 생계를 보장하기 위해 정한 임금의 최저수준이다. 실질 급여라기보다는 기준임금이다. 노동시장을 개선하고 불평등을 완화해 내수확대를 통한 성장을 추구하는 데 최저임금은 핵심적인 한 전략이다.
문제는 내수확대, 일자리의 질과 생산성 제고, 산업구조 고도화 같은 긍정적 효과는 시간이 걸리는 데 반해 고용취약계층의 일자리 감소와 한계 사업체의 퇴출 등 구조조정효과는 당장 나타나는 데 있다. 영세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이 먼저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하지만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은 포화상태의 자영업시장, 가맹본사의 갑질, 불공정한 카드수수료, 천정부지의 임대료가 문제의 핵심이다. 한정된 내수규모에 자영업자수가 570만,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28%를 점한다.
음식점 창업해 1년 못 버티고 망하는 게 전체의 70%다. 주말만 도와주는 대학생 알바 말고는 가게를 거의 혼자 운영해도 법정 최저임금도 벌지 못하는 일인 자영업자도 허다하다. 최저임금 인상이 벼랑 끝에 내몰려있는 이들의 등을 떠민 격이다.
따라서 자영업 문제는 실직자 또는 반(半)실업자들이 비자발적 자영업자로 내몰리는 길목을 차단하는 노동시장 개편에서 근본해법을 찾아야 한다.
소득과 부의 불평등 심화는 경제의 지속 가능성과 성장 잠재력을 모두 훼손한다. 저소득층 소득 지원으로 경제의 기반을 다지고 혁신성장과 공정경제가 이를 뒷받침하면서 신성장동력을 확충해 지속적으로 좋은 일자리를 늘려나갈 수 있을 때 소득주도성장은 성공할 수 있다.
단기간에 최저임금을 올리고 일자리를 늘리고 성장도 해야겠다는 정부의 성과조급증과 준비부족이 '시장의 반란'과 정치공세적인 '소득주도성장 때리기'를 자초한 면이 크다.
야권 등 비판세력 역시 이렇다 할 대안 없이 '규제원죄론' '시장주의맹신' '노조망국론' '의료산업 대망론' 등 지난 정권들의 경제 패러다임에서 한 치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어차피 20년 내로 현재 직업군의 65%가 사라진다고 한다. 눈앞의 일자리 못지않게 앞으로 어떤 세상이 펼쳐질 것인지 그림을 그리고 그에 맞는 인력수급계획과 정책을 준비하는 일도 중요하다. 단기성과에 집착하기보다 긴 호흡이 필요하다.
개혁은 임기 내에 얼마나 많이 하느냐가 아니라, 5년, 10년 뒤에도 얼마나 많이 유지․지속될 수 있는 가로 평가받아야 한다. 정권이 바뀌면 뒤집어질 개혁이라면 아니 감만 못하다. 임기 초반 지지율이 높을 때 속전속결로 밀어붙일게 아니라 초심을 잃지 않고 정책의 선후와 경중을 신중히 저울질하며 일체감과 진정성으로 국민에게 다가가는 자세가 더 없이 중요한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