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 차라리 떳떳하게 지정감사 받으시죠

 “오얏나무 밑에서 갓끈을 매지 말라”는 속담은, 아무리 떳떳해도 오해받을 일을 절대 하지 말라는 조상들의 생활지혜이다. 서구는 중세암흑기 탈피후 산업혁명에 성공하여 생산력과 해군력이 강대해져서 북미·남미·호주·아프리카대륙 등 세계를 제패했다. 중국대륙에서는 명·청이 교체되는 와중에,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당해 너무나도 허약해진 조선이, 중국에 먹히지 않고 500년을 버틴 것은 “선비들의 相避制度(상피제도)”가 건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선말기에 안동 권씨 등 세도가가 기승을 부리고 민비가문 득세와 대원군의 폐쇄정책 등 자기네끼리 해먹으면서 상피제도가 무너졌다. 그래서 조선은 총 한번 못 쏴보고 제대로 전투 한번 치르지도 못하고, 거대 중국도 아닌 왜국 일본에게 멸망당한 것이다. 특히 소수 양반 동족지배세력끼리 서로 피하지 않고 족벌끼리 해먹었기 때문에, 백성도 포기하면서 나라가 없어진 것이다.

한국의 대통령제 정부들도 대통령 본인, 아들, 형제, 최순실 등 특정인맥이 대통령의 판단력과 국정운영을 장악하여 누적 1,000만명 이상의 탄핵찬·반 열기가 운집하는 국론분열상태가 되었다. 이런 것도 상호견제와 균형이 마비된 우리끼리 정실인사와 특수관계 연고주의 때문이다.

청와대 비서관과 장·차관들도 대통령을 독대한 적이 드물다는 보도다. 국가재정과 국부의 대부분을 기업이 창출하고, 국민의 대다수가 기업에 근무하는 현대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의 자산·부채·매출·비용 등의 총괄회계정보는 국가재정과 국민생활재원인 매월 급여의 거의 전부를 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회계정보는 절대 투명하게 제공되고 만천하에 공지되어야 한다.

기업의 투명회계와 공익외부공시를 보장하는 확실한 수단은 지정감사 등 감사공영제이다. 독립적 외부회계감사는 철도나 고속도로 같이 전국이 직선이며 단일로 연결되어야 하는 절대 공공재이다. “감사”라는 단어는 “감시”와 “조사”의 합성어이다. 따라서 서로 친분관계 없는 외부인이 독립적으로 수행하여 기업에게 경고하고, 외부이해관계자에게 투명정보를 공개하여야 한다.

외부감사인은 감사의뢰한 피감회사를 위해서가 아니고, 외부의 불특정다수 국민의 알 권리를 만족시키고 정부정책자료를 제시하여 공익을 보호함이 기본사명이다. 쉽게 말하면 감사인은 회사와 친근한 연고관계가 없어야 하고, 숨기지말고 외부에 모두 일러바쳐야 하는 가장 공익적 직업이다.

그러나 현행의 외감법은 감사주체와 이용주체도 아니고 겨우 감사대상객체에 불과한 피감기업이 자유롭게 외부감사인을 선임하도록 했다. 이는 100년 이상 소유와 경영이 잘 분리된 미국·유럽에나 적합한 제도이다. 소유와 경영이 실제로 동일한 한국 현실에서는 혈연·지연·학연·사회연고 등을 따져 가장 믿을만한 자기사람을 선임한다. 조선 500년을 지탱한 “상피제도”와는 거리가 멀다.

한국에서는 “우리가 남이가”라고 말할 수 있는 제식구 같은 관계가 아니면 외부감사인으로 선임되기 어렵다. 어찌 보면 감사인은 피감기업과 감사계약하자마자 “감시파수꾼”이 아니고 고맙다는 “感謝감싸인”으로 전락한다. 피감기업 입장에서도 자신의 약점이나 감추고 싶은 내용을 절대 누설하지 않고 비밀을 잘 지켜줄 수 있는 심복을 여러 혈·지·학연 등 연고자 중에서 가리고 가려 뽑는다.

한국의 내노라하는 삼성·현대·LG·SK·롯데 등 모든 대기업 뿐 아니라 중견기업 오너들도 주로 특정회계사나 회계법인 한 곳을 외부감사인으로 선임하여 왔다. 피감사기업의 신입경리직원부터 CEO까지와, 외부감사회계법인의 수습회계사부터 대표급 파트너까지가, 약 20년을 함께 일하면서 같이 성장하고 승진했다. 이들 관계가 혈족은 아니지만 실제로는 아주 친밀한 관계이다.

물론 각 기업이 각 회계법인과 법인대 법인의 고객관계이지만, 실제는 각 기업의 임직원과 회계법인의 파트너 회계사 자연인들이 일하는 것이므로, 오랫동안 매년 여러 차례 만나면서 같은 일을 하다보면 혈·지·학연이나 동향·동창보다도 더 친해진다. 친구나 친척이 많은 출생지에 평양감사로 부임하지 않는다는 “상피제도”가 요즘의 회계감사 자유선임에서는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

원래 “감사(Audit)”는 모든 것에 의구심을 갖고 반대로 분석해야 하므로, 발주자의 기피업무이다. 의심하려면 서로 모르던 사람이 처음 만나서 묻고 듣고(Audition)하는 팽팽한 긴장관계에서 회계자료와 기타 재무상태 경영자료를 분석하여야 제격이다.

서로간에 비슷한 업무를 하면서 같이 크고, 매년 자주 만나서 10년 이상 너무나 잘 아는 피감기업 경리책임자와 감사인 회계사간의 관계는 서로간에 너무나 가까운 관계이다. 가까울수록 피하라는 “상피제도”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고인 물은 썩는 자연이치대로, 10년 이상된 감사계약은 한번쯤 끊어주어야 한다.

그래서 충심으로 권하고 싶다. 대기업과 중견기업 등이 모두 투명회계를 공개하고 싶고 국민과 국가 등 공익을 위하며 스스로 떳떳하기를 입증하려면 스스로 자원해서 먼저 지정감사를 받아 보는 것이 어떨까 한다.

현재 외감법 전면 개정안은 2년 유예 후 6년 자유＋3년 선택지정제이다. 경영자가 먼저 회계감사인을 마음대로 고를 수 있다 하더라도, 자유선임욕구를 잠시 접고 3년 지정 먼저 또는 1년 단위로라도 금융당국에 지정감사해 달라고 자발적으로 요청했으면 한다. 가끔 회장님이 원해서 스스로 지정감사를 자원신청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박윤종 안세회계법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