⑤ 대림산업, 기술력 발판… 글로벌 디벨로퍼 도약

우리 건설이 해외에 처음 진출했던 1960년대. 해외에 나간다는 설레임을 안고 동남아나 중동에 도착한 근로자들은 처음 겪는 혹독한 날씨와 원도급자인 선진국 엔지니어들의 매서운 눈초리와 싸우며 한푼두푼 모은 돈을 한국으로 송금했다.

특별한 기술이나 경험이 없어 선진국 건설사의 재하청을 받아 일하는 우리 노무자들은 현장의 궂은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낮은 임금과 열악한 작업환경을 감수해야만 했다.

그러던 우리 건설사들이 제3국이나 현지 업체를 고용해 재하청을 주는 원도급자로 성장했다. 세계 각국의 정부나 발주자들이 설계부터 공사, 관리까지 모든 프로세스를 일괄적으로 맡기는 이른바 EPC 형태로 우리 건설사들에게 발주를 한지 오래기 때문이다.

대림산업은 한발 더 나아가 이제는 EPC도 넘어설 때가 됐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세계 곳곳을 찾아 다니며 그 나라에 필요한 인프라나, 플랜트 등을 찾아내 우리가 먼저 개발을 제안하고 그 나라 국민들을 설득해 사업을 리드하는 디벨로퍼의 길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우리 건설의 역량과 자질이 무르익었다는 얘기다.

■ 해외진출 1호, 중동진출 1호...노동력 의존하다 기술력 수출

대림산업은 우리건설의 해외진출 1호 역사를 썼다. 1966년 미국 해군이 발주한 베트남 항만 공사를 수주받아 당시 비행기도 한번 못타본 노동자들을 데리고 처음 느껴본 열대 더위와 싸우며 외화획득의 꿈을 실현했다.

그후 1973년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중동으로 진출해 수건으로 코와 입을 막고 뜨거운 모래먼지와 싸우며 오일달러를 벌어 들여 중동붐의 기폭제가 됐다.

당시 중동에 나가있던 건설사 임원은 “선진국 엔지니어들은 욕실과 에어컨이 있는 1인실을 제공받았는데 우리 노무자들은 선풍기 두 어 대가 고작인 막사에서 20~30명이 땀에 젖은 몸을 부대끼며 잠을 잤다”며 “임금도 그들의 절반도 안돼 우리는 언제나 그들과 같은 대우를 받을 수 있을까 부러워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나 이런 부러움은 옛말이 된지 이미 오래다.

열악한 조건속에서도 끊임없이 해외공사를 치루며 기술력과 경험을 쌓은 대림산업은 1970년대 후반부터 설계, 자재조달, 공사까지 건설의 전공정을 책임지는 EPC 수주를 따내기 시작했다.

이러한 일괄도급공사를 통해 공정관리 능력을 강화해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 제3국 노무자들을 고용하고 현지의 건설업체에게 재하청을 주게 됐다. 해외진출 초기 선망의 대상이었던 원도급자로 성장한 것이다.

물론 우리의 엔지니어들은 선배들이 꿈에 그리던 욕실과 에어컨이 설치된 1인실에서 사업을 계획하고 관리하고 있다.

대림산업의 성과는 특히 사우디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사우디는 중동 최대의 플랜트 발주국이다. 전세계 선진 건설사들이 각축을 벌이는 만큼 엄격하고 까다로운 공정 관리와 공사 자격을 요구한다.

이 때문에 세계 건설업계에서는 사우디에서 얼마나 많은 건설실적을 올렸느냐에 따라 그 회사의 기술력을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대림산업은 지난해 사우디 누적 수주액 150억달러를 돌파했다. 아람코본사 사옥, 알주베일 정유공장, 리야드 공공주택, 고밀도 폴리에틸렌 공장 등 1973년 이후 끊이지 않고 사우디의 주요 공사수주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한국건설은 사우디건설시장에서 1위를 하고 있고 대림산업은 그런 한국건설사 중에서도 1위의 실적을 자랑하고 있다.

                              중동지역 국가별 건설시장 점유율 (단위 %)

                                                                                                                자료 : 국토부

■ EPC도 모자란다...이제는 디벨로퍼다

공사의 전공정을 책임지는 EPC의 강자로 부상한 대림산업은 최근 또 다른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대림산업은 최근 글로벌 EPC 강자라는 현재의 명성에 안주하지 않고 디벨로퍼(Developer) 위치를 선점해 글로벌 경쟁 우위를 확보하겠다는 경영전략을 밝혔다.

디벨로퍼란 설계ㆍ조달ㆍ시공 뿐만 아니라 지분 투자와 시설의 운영 관리까지 전분야를 아우르는 토탈솔루션(Total Solution)사업자를 말한다.

이미 디벨로퍼 사업은 세계적인 화두다. 특히 동남아, 아프리카 등 재원이 부족한 개도국에서 각광받고 있다. 자원은 풍부하지만 자금과 경험이 부족한 개도국들은 민간 업체의 자금을 수혈 받아 적은 예산으로 공장, 도로 등 사회기반시설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림산업은 이러한 세계적인 기류를 포착해 디벨로퍼 사업을 전담하는 사업개발실을 올해 조직했다. 사업개발실은 사업성 검토, 실행, 관리 등 디벨로퍼 업무 전반을 관장하고 이와 연계된 추가 프로젝트를 수행하게 된다.

특히 민자로 추진되는 발전분야인 IPP분야를 집중적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IPP는 민간 업체가 투자자로 참여해 발전소를 소유하고, 공사 후에는 운영을 통해 운영수익으로 투자비를 회수하는 비즈니스 모델이다.

당연히 공사 대금만 받고 건설하는 도급 사업보다 수익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대림산업은 해외 IPP사업을 추진하기 앞서 2010년 국내에서 포천복합화력발전소를 IPP 사업으로 추진해 경험을 쌓아가고 있다.

현재 공사 중인 포천복합화력발전소는 1560MW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어 민자 복합화력발전소로는 국내 최대 규모이다. 2014년 완공후 대림산업이 발전소를 직접 운영하면서 연료 조달, 발전소 정비, 효율적인 전력 공급 등 운영 노하우를 축척할 수 있게 된다.

■ 글로벌 사업영토 확장...'건설의 꽃' 디벨로퍼에 도전

대림산업은 EPC 공사를 통해 기술력과 공사경험을 축적한 바탕위에 이제는 프로젝트 발굴, 기획, 금융, 시공, 운영관리까지 담당하는 디벨로퍼로서의 역량을 축적해 우리 건설의 글로벌 영토를 확장한다는 포부다.

공사를 해주고 공사비를 받는 공사수주와 달리 개발사업은 토지와 건축물, 운영권을 직접 소유하고 현지에서 수익기반을 확보하기 때문에 그 파급효과가 커 그야말로 사업측면에서는 새로운 영토를 확장하는 수준이라는 설명이다.

대림산업 김윤 부회장은 “차별화된 제품개발과 고부가가치화 등 비가격 전략으로 새로운 사업기회를 포착해 급격한 환경 변화에 대비할 것”이라며 “업종의 특성을 분석하고 핵심 요소를 집요하게 끌어 내 글로벌 디벨로퍼로서 자리 매김 할것”이라고 향후 경영방향과 추진방법을 설명했다.

몸뚱이 하나에 의지해 의지와 열정만으로 낮선 외국 땅에서 고군분투하던 우리 건설이 이제는 그 나라 사람들도 미처 생각해 내지 못한 사업을 찾아내고 건설ㆍ운영관리까지 해주는 글로벌 디벨로퍼를 넘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