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판례...자녀 상속포기하면 배우자·손자녀 공동 상속인
재판부 "자녀 상속포기하면 배우자만 단독상속인이 된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청사 사진=연합뉴스
사망한 채무자가 남긴 빚에 대해 자녀들이 상속을 포기했다면 손자녀도 채무자의 빚을 갚지 않아도 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기존 판례에서는 자녀가 상속을 포기한 경우 배우자와 손자녀가 공동으로 상속인이 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23일 채무자 A씨의 손자녀 4명이 채권자 B사를 상대로 낸 '승계집행문 부여 이의 신청' 사건에서 이의신청을 기각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앞서 B사는 지난 2011년 채무자 A씨를 상대로 구상금 소송을 걸어 승소했다. 2015년 A씨가 사망하자 A씨의 배우자는 A씨가 남긴 재산 내 범위에서 채무만 책임지는 '상속한정승인'을 했지만 4명의 자녀들은 빚도 재산도 모두 포기하는 '상속포기'를 신청했다.
B사는 2020년 A씨 배우자와 손자녀에 대한 승계집행문(채무자의 승계인에 대한 집행을 위해 내어주는 문서)을 부여받았고 A씨의 손자녀와 배우자에게 빚 상환을 요구했다.
이에 손자녀들은 '자신들은 A씨의 상속인이 아니다'라고 맞서면서 이의를 제기했다.
1심 재판을 맡은 부산지법은 '망인의 손자녀는 망인의 배우자와 공동상속인'이라는 2015년도 판례를 근거로 이를 기각했고, A씨 손자녀들은 법원의 판결에 반발해 대법원에 특별항고했다.
이날 대법원은 기존 대법원 판례와 달리 "망인의 배우자와 자녀들 중 자녀 전부가 상속을 포기하면, 손자녀나 직계존속이 있더라도 배우자만 단독상속인이 된다고 봐야 한다"라며 "종래 판례에 따른 원심 결정은 파기돼야 한다"라고 판단했다.
이어 "상속을 포기한 자녀들은 피상속인의 채무가 자신은 물론 자신의 자녀에게도 승계되는 효과를 원천적으로 막을 목적으로 상속을 포기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라며 "그런데도 자녀 전부가 상속을 포기했다는 이유로 피상속인의 배우자와 손자녀 또는 직계존속이 공동 상속인이 된다고 보는 것은 당사자들의 기대와 의사에 반하고 사회 일반의 법 감정에도 반한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동원·노태악 대법관은 "민법상 손자녀는 자녀보다 후순위 상속인이지만, 자녀나 손자녀 모두 배우자와는 같은 순위"라며 반대의견을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