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과 물가·고용의 딜레마 빠진 韓 경제
자산시장 연착륙 유도해 가격급락 피해 최소화
청년층 금리인상, 중장년층 부동산 거품붕괴에 집중한 가계부채 대책
누적된 가계부채와 부동산가격 거품붕괴 위험이 금융-실물부문에 전이되면서 복합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음이 들려왔다. 이러한 악순환이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하락)의 단초가 될 가능성에 대비해 금융-실물부문 동시안정을 꾀하는 광의의 금융안전망(新 금융안전망) 구축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나왔다.
김동환 한국금융연구원 은행연구실 선임연구위원은 9일 ‘한국경제의 복합위기 가능성과 금융안전망’ 보고서에서 “한국경제는 물가를 잡다가 성장이 어려워지고, 경제가 성장해도 고용이 늘지 않는 성장과 물가·고용의 딜레마에 빠져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한국의 가계부채는 2020년에 국내총생산(GDP)의 100%를 초과해 주요 선진국 중 최고 수준이며 금리상승, 부동산거품 붕괴 시 부작용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또 최근 원화가치 하락 등 금융시장 불안요인이 부동산가격 거품붕괴의 트리거(방아쇠)가 될 가능성도 있다.
금융안전망은 최종대부자, 예금보험 등 기능을 통해 금융불안이 실물경제로 전이되는 시스템 리스크를 차단하는 공적 인프라를 말한다. 김 연구위원은 기존의 금융안전망이 복합위기를 효과적으로 예방·수습하는 데 한계가 있는 만큼 새로운 금융안전망을 설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新) 금융안전망의 3대 과제로는 ▲자산거품 대책 ▲가계부채 대책 ▲디플레이션 대책을 제시했다.
우선 자산시장의 연착륙을 유도해 자산가격 급락의 피해를 최소화할 것을 강조했다. 주택담보인정비율(LTV),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등 미시정책에 중점을 두고 필요시 기준금리와 지급준비율을 조정하는 등 거시정책을 보조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김 연구위원은 “하우스푸어·렌트푸어 대책을 마련해 채무가구의 주거와 경제 안정을 꾀해야 한다”며 “장기적으로는 자산시장을 재테크의 장으로부터 건전한 실물투자의 장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봤다.
부동산은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 ‘이용’의 대상이 돼야 하며, 주식시장은 기업공개(IPO), 합병 및 구조조정 등 자본시장 본연의 목적을 살려 기업 장기자금 조달 및 생태계 혁신의 장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설명이다.
가계부채 대책에 대해서는 “부동산거품 붕괴, 금리인상의 부작용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며 “저소득·청년 가구에는 금리인상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중장년층 이상의 가구에는 부동산거품 붕괴의 피해를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부채의 구성과 원인에 따라 가계부채 대책을 차별화할 것도 강조했다.
또 그는 디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재정·통화정책의 조합, 산업·금융정책의 조합, 노동·금융정책의 조합이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김 연구위원은 “짧은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상승) 이후 긴 디플레이션이 시작되면 기준금리를 크게 인하할 빌미를 제공해 그만큼 통화정책의 효과를 제약할 가능성이 있다”며 “장기불황, 소비지출 감소, 과중한 복지예산, 반복된 추경편성은 재정정책의 효과도 제약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한국경제의 공급측 애로 요인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성장엔진을 개선하고 자립기반을 강화하며 새로운 먹거리·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며 “산업정책의 목적에 따라 금융정책 수단을 차별화해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고용 없는 성장’의 딜레마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한국경제의 공급측 애로 요인도 동시에 해소할 필요가 있다”며 “노동정책과 금융정책 수단을 동원해 새로운 일자리 창출, 직무능력 개발 및 전직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 연구위원은 금융·실물부문의 동시안정을 꾀하는 신(新)금융안전망이 ‘금융안정기구’와 ‘실물안정기구’, 이들을 조정할 최종 ‘의사결정기구’가 유기적으로 연결돼야 한다고 봤다.
또 정보공유시스템(가칭)을 구축해 금융·실물정보의 공유 및 협조를 돕고, 한국판 ‘테마섹’을 설립해 한국경제의 공급망 확보, 국부창출 등에 기여토록 할 것을 제안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