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수액 전체 6.02%인 2065억원(2009년~2022년 6월)
의료생협 설립조건...최소 조합원 300명·출자금 3000만원
전문가 "사무장병원설립 강력 제재·조사역량 강화"
◆…지난 2018년 화재로 총 159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밀양 세종병원이 경찰수사 결과 사무장병원으로 밝혀졌다. 사진:연합뉴스
#투자자 5명으로부터 투자금을 모아 직접 의료법인을 설립한 비의료인 A씨는 요양병원을 개설했다. 이후 투자자들과 그 배우자들을 법인 임원으로 등재해 급여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투자수익금을 챙겼다. 이렇게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타낸 요양급여 등은 124억원에 달했다.
#의료기기판매업자인 B씨는 의사를 고용한 후 비뇨기과 의원을 개설했다. 이후 자신이 직접 수술실에서 의사와 함께 수술을 하는 등 무려 65건의 무면허 의료행위를 저질렀던 것으로 밝혀졌다.
#고령의 약사를 고용해 약국을 개설한 사무장 C씨는 주 3일만 출근하는 약사를 대신해 자신이 마치 약사인 것처럼 의약품을 조제·판매하다 적발됐다.
지난 6월 경기도 민생특별사법경찰단이 적발한 의약분야 불법행위 사례들이다. 이처럼 불법 사무장병원, 면대약국의 부당수령 금액은 의료시장의 건전성뿐만 아니라 건강보험 재정에도 악영향을 끼치면서 건강보험 재정 누수의 주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최근 13년 동안(2009년~2022년 6월) 총 1677개 사무장병원으로 인한 건강보험 재정 누수 규모는 누적 3조4377억원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징수액은 전체 약 6.0%에 불과했다.
현행법은 의료기관 개설 권한을 의료인이나 국가, 지자체, 의료법인 등에만 부여한다. 다만 의료소비자생활협동조합(의료생협)은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에 따라 최소 조합원 300명에 출자금 3000만원만 있으면 설립이 가능해 그 조합 명의로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다. 제도적인 허점을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사무장병원으로 적발될 경우 의료기관 개설허가 취소 및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에 해당하는 형사처벌을 규정하고 있다. 환수 규정 역시 부당한 방법으로 보험급여비용을 받은 경우 해당 보험급여비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징수하게 돼 있다.
하지만 법규정이 무색할정도로 환수율은 6%에 불과한 게 현실이다. 문제는 부당이득 징수 권리 소멸시효 기간이 10년이어서 10년을 넘기면 환수할 수 없게 된다는 점이다.
그동안 사무장병원을 적발하기 위해 건보공단은 총력을 기울였지만 재산 은닉과 단속 한계로 환수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비의료인이 병원을 설립하기 전에 수익을 빼돌리거나 적발된 경우 폐업으로 책임을 회피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설사 급여비를 환수했다 하더라도 증거 불충분 등으로 검찰이 불기소하거나 법원이 무죄판결을 내리면 병원에 다시 돈을 돌려줘야한다는 게 건보공단측 설명이다.
앞서 지난달 대법원은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요양급여와 건강보험료 명목의 돈 2500억 원을 부정하게 지급받은 혐의로 기소된 대형 요양병원재단 이사장에게 무죄를 선고한바 있다. 최근 이 사례처럼 ‘의료법인형 사무장병원’으로 의심받아 재판에 넘겨진 의료법인들에 대한 법원의 무죄 판결이 이어지고 있다. 법원은 의료법인 명의로 개설돼 적법하게 운영된다면 의료법 위반으로 속단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
◆…자료:국민건강보험공단 제공
사무장병원 행정소송 현황 자료에 따르면 이 기간(2017~2021년)에 이뤄진 209건의 재판 중 항소 취소나 각하 판결 등으로 건보공단이 사실상 패소한 건수는 125건(패소율 60%)이며 승소한 건수는 84건에 그쳤다.
아울러 사무장병원에 대한 요양급여비용 전액 환수가 부당하다는 판결 역시 부당금액 징수에 어려움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건보공단 측은 설명했다.
실제 지난해 6월 대법원은 건보공단의 불법개설기관에 대한 징수를 ‘재량행위’로 보고 전액을 징수하는 것은 재량권의 일탈·남용에 해당한다며 전액 징수 불가 판결을 내렸다.
이에 건보공단은 불법개설의료기관의 문제점을 알리기 위해 올들어 불법개설기관 행정조사 사례집과 불법개설기관 사례 24건을 담은 폐해 사례집을 연이어 발간했다. 아울러 '특별사법경찰권(특사경)' 도입도 추진하고 있다. 현재 특사경 관련 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전문가들은 사무장병원 근절을 위해 사무장병원설립 자체를 엄두내지 못할 만큼 강력한 제재와 전수조사 등 조사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는 지난달 26일 정책현안분석 보고서를 통해 ‘사무장병원’ 설립을 막기 위해 의료법인 설립 자격을 의료인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고서는 "대법원조차 비의료인이 의료법인을 설립하고 병원을 운영하는 경우 사무장병원인지에 대한 명확한 판단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다보니 사무장병원 판단에 있어 하급심 판결이 나뉜다”며 “의료법인제도는 그 운영에 있어 점차 의미가 퇴색돼가고 있는 가운데 제도 설립 취지 목표와 다른 차별적 제도의 모순으로 많은 의료법인 병원들이 운영상 어려움을 겪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비의료인도 설립할 수 있는 의료법인제도는 사실상 사무장병원 형태를 법률로 인정하는 것으로 의료법인은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만 설립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산정책처는 ‘2021 회계연도 공공기관 결산 위원회별 분석 보고서’에서 "건보공단이 환수결정을 하는 경우 초동조사를 철저히 해 증거를 확보할 수 있도록 조사역량을 강화하는 방안 등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