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북협상가들 "北 주장은 실체가 모호한 지연전술"
"협상 성격과 목표 따라 '적대시 정책'을 수시로 바꾸고 늘려왔다"
"북한 주장, 의미 없는(meaningless) 수사일 뿐" 일축
◆…판문점 군사분계선에서 조우한 북미 정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6월 30일 판문점 군사분계선(MDL)에서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사진=더팩트)
북미 비핵화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진 가운데 북한이 연일 '미국의 적대시 정책'을 대화의 걸림돌로 내세운데 대해 미국의 전직 외교 당국자들은 '실체가 모호한 지연전술'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미국내 협상가들은 북한과 협상 테이블에 앉을 때마다 어김없이 제기되는 이 같은 요구를 '적대시 정책 신화(myth)'라고 불러왔다는 것이다. 국무부와 백악관, 정보기관 등에서 북한 문제를 다뤄온 전직 당국자들은 북한이 수십 년간 반복해 온 수사라고 강조했다고 VOA가 25일 전했다.
이 매체에 따르면,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수석부차관보는 "북한의 '적대적 의도' 혹은 '적대시 정책' 비난 대상은 움직이는 목표물"이라며 "그들이 그런 말을 하는 순간 그들의 리스트에 올라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해당된다"고 비유했다.
적대시 정책 리스트에는 북한이 순간순간 염두에 두고 있는 미국의 어떤 행동도 포함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가령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지정은 1990년대에 북한이 주장한 대표적인 '미국의 적대시 정책'이었다고 리비어 전 수석부차관보는 회고했고, 여기에 한미 연합군사훈련, 대북 제재 등을 추가하는 등 북한은 협상의 성격과 목표에 따라 '적대시 정책'을 수시로 바꾸고 늘려왔다고 VOA는 전했다.
조셉 디트라니 전 6자회담 미국 측 차석대표는 "25년 동안 북한은 미국이 '적대시 정책'을 펴고 있다고 비난해 왔다"면서 "우리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자주 물었지만 대답 듣지 못했다.우리는 아직도 그 뜻을 모른다"고 말했다.
북한이 미국을 향해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라고 촉구하면서도 정작 요구 사항을 구체화해달라는 질의에는 답하지 않는 이런 양상은 최근 진행된 북미 협상에서도 달라지지 않았다고 VOA는 전했다.
미 중앙정보국(CIA) 출신의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 재단 선임연구원은 지난달 5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실무협상을 두고 "미국 관리들은 북한이 '안보 보장', '종전 선언', '적대시 정책'의 정의가 무엇인지 북한에 물었지만 대답을 듣지 못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2011년 방북해 김계관 당시 외무성 제1부상을 만났던 로버트 킹 전 국무부 북한인권특사 역시 "미국이 하는 모든 것이 '적대시 정책'의 일부분이고, 북한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은 미국의 적대시 정책(hostile policy)"이라고 북한의 주장은 결국 의미 없는(meaningless) 수사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킹 전 특사는 이어 북한의 '적대시 정책' 주장은 40년 동안 계속돼 왔으며, 어떤 의미를 담은 게 아니라 일종의 '지연전술(stalling tactic)'로 이용됐다고 주장했다.
결국 비핵화 의도가 전혀 없는 북한이 비핵화 요구를 하는 미국의 어떤 행동이든 '적대시 정책'으로 트집 잡아 이를 일축하는데 주력해왔다는 지적인 셈이다.
반면 북한이 수많은 불만을 '미국의 적대시 정책'으로 비난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일정한 범위가 정해져 있다는 견해도 나왔다고 VOA는 전했다.
프랭크 자누지 맨스필드 재단 대표는 "미국의 적대시 정책을 설명할 때 북한이 사용하는 여러 가지 다른 공식들이 있다“고 주장했다.
자누지 대표는 미북간 외교관계 부재로 평양에 미 대사관이 설치돼 있지 않다는 불만에서 시작해, 대북 제재, 한미 연합군사훈련, 미군의 핵 위협, 북한 인권상황 비난과 개선 요구 등을북한이 수년 동안 '미국의 적대시 정책'으로 언급해온 항목들로 꼽았다.
그는 북한이 상황에 따라 비난 대상을 바꾸거나 늘려왔다는 전직 미 협상가들의 지적과는 달리, 이미 적대시 정책으로 규정한 광범위한 항목들 가운데 한두가지 요소를 그때그때 강조점을 두는 것일 뿐 큰 틀에서는 일관성을 보였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미 전직 고위관리 대부분은 북한의 '적대시 정책' 논리에 일관성이 있었다는 지적에 동의하지 않고, 오히려 과거의 비난과 요구 수준을 훨씬 넘어 미국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터무니없는 조치들을 요구하기에 이르렀고, 그 수위는 계속 높아지고 있다는 비판이 주를 이룬다고 이 매체는 강조했다.
게리 세이모어 전 백악관 대량살상무기 조정관은 “북한이 '적대시 정책' 표현을 사용하는 이유는 이를 마음대로 늘렸다 줄였다 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일부러 모호하게 놔둠으로써 범위를 확대하려는 게 북한의 의도”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면서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라는 북한의 요구는 모든 경제 제재 해제 뿐 아니라 한미 군사동맹 파기, 미군 철수, 북한의 핵보유국 인정, 북미 외교관계 수립 등 모든 조치를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북한이 거듭 걸림돌로 제기하는 '미국의 적대시 정책'을 해소해주려는 노력은 실효성이 없다는 게 전직 관리들의 대체적인 입장인 셈이다.
하나의 장애물이 사라지면 또 다른 요구를 들고 나오는 북한의 전형적인 협상 방식이 무한 반복될 것으로 보는 것이라고 VOA는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