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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남일의 시간여행]

사람, 개를 만들다… 조물주에 대한 도발인가

  • 보도 : 2019.05.10 08:20
  • 수정 : 2019.05.10 08:20

애견 사진

◆…사진=클립아트코리아

개가 사람과 친해진 시기는 대략 3만 여 년 전. 그러나 당시는 개라기보다 늑대에 가깝다 할 것입니다. 시간이 흐르며 그 늑대 후손들은 사람 생활에 맞춰 살다보니 개라는 새로운 종으로 탈바꿈 하게 됩니다. 개란 존재가 인간 때문에 지구상에 나타난 셈이지요. 이해를 돕고자 과거로 돌아가 야생 늑대와의 만남을 상상해 보겠습니다.

어느 날, 구석기인의 동굴 근처에 늑대 한 마리가 서성거립니다. 절뚝거리며 깡마른 모습이 아마도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것 같습니다. 놀랍게도 배는 한껏 부풀어 있어 첫 눈에도 새끼 밴 걸 알 수 있습니다. 측은한 마음에 여자 아이가 불에 구운 고기 한 점을 늑대에게 던져 줍니다. 놈은 꼬리를 엉덩이에 바짝 붙이고 경계의 동그란 눈초리를 보내면서도 배고픔에 허겁지겁 고기를 뜯습니다. 그날 이후, 늑대는 주변에 아예 자리를 잡고 사람이 주는 먹이로 지내면서 새끼도 낳습니다. 세월이 지나 어미는 늙어 죽고 새끼들도 야생으로 떠났지만, 무리 중 일부는 그대로 남아서 동굴 식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람 가족을 지키는 파수꾼 역할을 합니다.
 
한편, 사람과 같이 생활하던 늑대는 몸은 변해 갔습니다. 특유의 길쭉한 주둥이는 들어가고, 뇌의 크기가 줄면서 공격성도 눈에 띠게 떨어졌습니다. 그러는 사이 이들은 집지키는 것뿐만 아니라 사냥에 앞장서고 혹은 가축 몰이를 하며 그 역할이 다양해졌습니다. 심지어 인간의 먹거리 방편으로도 이용되기도 하였지요.

그렇게 만 년의 세월이 또 흘렀습니다. 이제 늑대와 개는 한 눈에도 확연히 구별되고, 개는 개만의 특징인 사람에 대한 절대적 복종과 친화력을 갖춥니다. 이는 오랜 세월을 거치며 터득한 개의 생존 방식이기도 하지만, 양이나 돼지 등 여타 사육종보다 인간의 사랑을 더 받을 수 있는 조건이기도 했습니다. 한마디로 '애완견'으로 평생을 살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지요.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흔적은 세계 도처의 동굴 벽화나 무덤, 암각화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한 예로, 만 이천 년 전 이스라엘의 '아인 말라하(Ain Mallaha)' 고대 무덤에서 개를 꼭 껴안은 채 죽은 여인과 강아지 유골이 함께 발굴되었습니다. 신석기 농경 사회를 거치면서 개는 종류나 마리 수도 크게 증가하고, 인류가 머무는 그 어느 곳이든 개도 함께 했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좁혀 우리 조상들은 개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요.
한마디로 사냥· 감시· 애견· 식용의 대상으로 삼았던 타 민족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문헌상 부여 5부족 연맹국가에서 마가 우가 저가 구가의 토템으로 개(狗)를 표방한 기록이 있습니다만, 우리 민족이 개와 함께한 모습은 고구려 벽화에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

무용총 수렵도를 보면 한 남자가 말에 앉아 호랑이를 뒤쫓으며 활을 당기고 있는데, 말 바로 옆에 용맹스럽게 함께 달리는 검은 동물이 개입니다. 개를 사냥에 이용하고 있는 것이지요. 안악3호 고분에는 당시 부엌 풍경을 벽화로 그렸는데, 한창 요리하느라 바쁜 여인 앞으로 두 마리의 개가 어슬렁거립니다. 얼핏 줄에 매어져 있는듯한데 아마도 집 지키는 개가 틀림없습니다. 중국 집안 현 각저총에도 두 마리의 개가 나옵니다. 사나운 맹견처럼 보이는데, 목줄을 한 채 무섭게 짖고 있습니다. 주인의 무덤을 목숨 걸고 지키는 충성심이 느껴집니다.

고분 벽화 외에도, 사비성이 함락되어 백제가 망하려하자 성 밖의 모든 개들이 왕궁을 향해 슬피 울었다는 전설과 고려 충렬왕 때 개성의 어느 개가 눈먼 고아를 먹여 살려 벼슬로 그 공적을 기렸다는 민담이 남아 있습니다. 통일신라 때는 당나라나 일본에 통상 예물의 품목으로 개를 선물했고, 고려 때는 '응방'에서 사냥매와 애완견을 키워 원나라에 조공하였다는 기록도 보입니다.

한자의 그릇 기(器)는, 개 견(犬)에 네 개의 입구(口)가 모인 말로 원래 뜻은 '개 한 마리가 네 식구의 몫을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렇듯 사람에게 이로운 개는 죽어서 고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개고기는 일반 가축과 달리 특별한 날에 특별한 의미로 먹었습니다. 즉, 큰 제사나 귀한 손님이 왔을 때 개를 잡았고, 집안 어른이 병 들었을 때도 탕으로 내었습니다. 궁궐에서는 외국 사신을 위한 연회에 개고기(犬肉)가 빠지지 않았으며, 혜경궁 홍씨의 회갑 잔칫상에 황구 찜이 올랐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농가월령가」에는 시집온 며느리가 친정집을 갈 때 시어머니가 개고기를 딸려 보냈다고 전합니다. 뿐만 아니라 민가에서는 하지가 지난 후 셋째 경일(庚日)인 초복, 넷째 경일인 중복, 입추 후 첫 경일을 말복이라 하여 이때 개고기를 맛볼 수 있었습니다. 이 시기는 더위에 지쳐 몸이 허약해질 때라 보신을 위해 개고기를 먹었습니다.

동의보감에서 허준은 몸의 기운을 북돋우는데 개고기만한 것이 없다고도 하였습니다. 이처럼 개고기는 특별 식이었지만, 근래에 식용으로 키워지며 사철 보신용으로 흔하게 먹게 된 것입니다. 반면, 뭐하나 빠질 것 없이 좋은 개를 빗대 '개××' 라며 욕하는 것은 참으로 아리송합니다. 사람에게 그저 맹목적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고려시대에 이미 통용되고 있었다니 놀랍습니다. 「고려사」 공민왕 2월 기록이라는데, 사헌부 벽에 '김존성은 성실하지 못하고, 최사정은 정직하지 못하며, 안경은 진짜 개다'라고 적었다합니다. 또한 충선왕은 간신 박의에게 '늙은 개'라고 욕했다는 걸 보면 오래전부터 개는 욕의 대명사로 불리고 있던 것 같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산업화에 따른 핵가족화와 독신 증가로, 개 문화에도 여러 변화가 보이고 있습니다. 식용용 개는 거의 사라지고 '애완견'은 언제부터인가 '반려견'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반려(伴侶)의 사전적 의미는 '생각이나 행동을 함께 하는 짝이나 동무'로 나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개는 집을 지키기 보다는 애정의 대용물이자 사람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애견 숍 대형 유리창 너머에 진열된 강아지를 보면 앙증맞아 데려다 키우고 싶기도 하지만, 한편 생각해 보면 엄마 품에서 젖을 물어야 할 어린 것이 너무 가엾다는 생각도 지울 수 없습니다. 설령 집에서 키운다 해도 짖지 못하게 성대 수술을 하고, 생산을 못하게 중성화시키는 것을 보면서 개를 사랑한다 말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듭니다. 비록 사람에 의해서 개라는 존재가 세상에 나왔지만, 지금에 와서는 사람의 욕심에 맞춘 개를 공장에서 물건 찍듯 하는 것이, 조물주에 대한 도발이 아닐까싶어 무서워집니다.    홍남일 한·외국인 친선문화협회 홍보이사

홍남일 한·외국인 친선문화협회 홍보이사

[약력] 한국외국어대 졸업, MBC애드컴 카피라이터, 한국전통문화진흥원 자문교수, 수필가, 문화칼럼니스트 [저서] 이야기가 있는 인천 관광 가이드, 시간이 담아낸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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