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 출마하는 유력주자 3인. 왼쪽부터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 황교안 전 국무총리, 오세훈 전 서울시장. (사진=연합뉴스)
2월 말 치러질 예정인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 나설 유력 당권 주자들이 모두 출마를 선언했다.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지난달 29일 가장 빨리 당권 도전을 선언했으며, 다음날인 30일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설 연휴가 끝난 7일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마지막으로 출마를 공식화했다.
세 후보의 출마 선언 시점에서 이들의 전대 전략을 옅볼 수 있다. 황 전 총리는 박근혜 전 대통령 권한대행에서 내려온 후 공식활동이 없다가 지난달 15일 한국당에 입당하면서 본격적인 정치인의 길로 들어선 정치 신인이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선 후보 지지율 1위로 나온 황 전 총리로서는 전대를 앞둔 상황에서 당내 세(勢) 결집에 나서기 위해서는 더 이상 정치활동을 늦출 수 없다고 판단, 가장 먼저 출마 선언을 한 것으로 보인다.
홍 전 대표는 그동안 전대 출마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말해오다가 황 전 총리가 출마를 선언하자 다음날 저서 '당랑의 꿈' 출판 기념회에서 출마하겠다고 발표했다. 홍 전 대표는 출마 선언 당시 "정치 경력도 전혀 없는 '탄핵 총리'가 등장해 탄핵 시즌2가 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부득이하게 나가게 됐습니다"라고 말했다.
탄핵 사태와 황 전 총리를 연관시켜 자신의 출마 명분을 얻는 한편, 전대 출마를 통해 당 대표 사퇴 후 '아우터 서클(Outer circle·외야)'에 머물던 위치를 다시 '이너 서클(Inner circle·조직 내부 핵심)'로 복귀한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오 전 시장도 홍 전 대표의 발표 다음날인 지난달 31일 부산에서 열린 북콘서트에서 출마 선언을 하기로 했으나 잠정 연기했다가 설 연휴가 끝난 7일 출마를 공식화했다.
출마여부가 확실치 않던 홍 전 대표가 당권 레이스에 뛰어들면서 '1강(황교안) 2중(홍준표, 오세훈)' 구도가 형성되자 설 연휴 여론 동향을 살피면서 출마 전략에 대해 고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 전 시장은 당시 "고민할 부분이 남아 고민을 숙성시킨 후 선언하겠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오 전 시장이 황교안 대세론·홍준표 전 대표의 출마 등으로 불출마를 선언할 수도 있다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이들 세 후보는 모두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고 보수대통합을 강조했으나 강조하는 포인트는 각자 다르다. 이들이 각자 내놓은 출사표에 담긴 핵심 메시지를 되짚어봤다.
◆ 黃, 당·탄핵 문제 대신 文정부 비판 집중…통합 의지 강조
황교안 전 총리의 전당대회 출마 선언문을 보면 한국당 내부 문제와 탄핵 사태에 대한 언급을 거의 배제했다. 그 대신 발언의 대부분을 문재인 정부와 여당 비판에 할애했다. 그는 기회가 사라지고 꿈을 꾸지 못하는 원인이 '문재인 정권의 폭정'에 있다고 주장했다.
황 전 총리는 "무덤에 있어야 할 386 운동권 철학이 21세기 대한민국의 국정을 좌우하고 있습니다"라며 정부의 경제와 안보 정책을 모두 비판했다. 경제정책에 대해선 문재인정부의 소득주도성장정책을 '철지난 좌파 경제실험'이라고 비판했고, 실업문제, 자영업 불황, 강성 귀족노조, 탈원전 등에 대해서 일제히 반대 입장을 보였다.
대북정책에 대해서는 "김정은을 칭송하고 북한을 찬양하는 세력들이 당당하게 광화문 광장을 점령하고, 80년대 주체사상에 빠졌던 사람들이 청와대와 정부, 국회를 장악하고 있습니다"라고 비판하면서 북한의 비핵화가 모든 것에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대선주자 지지도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고 있고 당권 경쟁에서도 가장 앞섰다고 평가받는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탄핵에 대한 언급을 의도적으로 배제해 얽히고설킨 자신의 '탄핵 총리' 굴레를 벗어나려 했다. 또 당내 문제 거론을 최소화해 정치신인이자 유력 대선 주자로서의 입지와 통합 이미지 심기에 주력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반면 현 정부를 강도높게 비판해 자신의 보수 색채를 확고히 드러내고 대선까지 이어지는 연장선상에서 여권에 대항할 수 있는 당권주자라는 점을 강조했다.
반대로 황 전 총리는 정치 경험이 일천한 점과 탄핵 정국에서 총리 및 권한대행을 역임했다는 점이 아킬레스건으로 지적된다. 군대 면제 이력 또한 본인은 정당한 절차로 처리됐다고 해명했지만 약점으로 거론된다.
◆ 洪, '홍준표가 옳았다'…'탄핵 총리' 황교안 맹공
홍준표 전 대표는 한국당 내부에 반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지난 대선 때 자신이 했던 말들이 옳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황 전 총리 비판에 집중했다.
홍 전 대표는 출마 선언에서 "문재인 정권에 맞서 싸워야 할 우리당이 여전히 특권 의식과 이미지 정치에 빠져 '도로 병역비리당' '도로 탄핵당' '도로 웰빙당'이 되려 합니다"라고 황 전 총리와 그를 따르는 당내 분위기에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제가 정치생명을 걸고 당원들과 함께 악전고투할 때 차갑게 외면하던 분들이 이제 와서 당을 또 다시 수렁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라고 말해 지난 대선 및 총선에서 황 전 총리와 오 전 시장이 상황을 관망하면서 조용히 지냈던 행보를 비판했다.
황 전 총리와 달리 탄핵 정국을 언급하면서 그는 "탄핵의 폐허 속에서 지지율 4%에 불과한 궤멸 직전 정당의 대선 후보로 출마하여 24.1%의 지지를 얻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또 "탄핵의 여파, 여당의 위장평화 공세가 전국을 휩쓸고 있는 최악의 상황에서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비록 패하긴 했지만 28%에 달하는 득표를 했습니다"고 했다.
'홍준표가 옳았다'라는 구호를 내세워 당이 위기에 빠졌을 때 희생한 사람은 자신이며, 황 전 총리는 박 전 대통령 덕분에 권한대행까지 지냈지만 정작 퇴임 후 상황을 지켜만 봤다며 비판하는데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
이미 당 대표와 대선 후보를 역임한 홍 전 대표로서는 전대 출마를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재확인하는 한편 탄핵 정국에서의 노력을 보상받고자 하는 심리도 일정부분 있을 수 있다. 동시에 역사상 보수 정당 최대 위기였던 탄핵 정국에서 2선에 빠져있던 황 전 총리는 물론 오 전 시장까지 상황이 정리되자 무임승차하듯 당권 경쟁에 뛰어드는 모습에 각을 세우고 있다.
다만 출마 선언 이후 오 전 시장과는 후보 단일화 가능성이 있고, 이를 위해 실무진들이 접촉하고 있다고 밝혀 현재 지지율이 가장 높은 황 전 총리를 의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 전 시장은 단일화 가능성에 대해 일축한 바 있다.
두 후보에 비해 이미 당 대표와 대선 후보를 지내면서 이미지 소진이 한 차례 됐다는 점도 약점으로 지적된다. 황 전 총리는 정치 신인이고, 오 전 시장도 오랜만에 복귀하는 입장이라 비교를 피할 수 없어 보인다.
◆ 吳, 내가 바로 수도권 공략 적임자…"박 전 대통령 극복하자"
오세훈 전 시장도 황 전 총리처럼 문 정부 실정을 조목조목 비판하면서도 다음 총선에서 수도권을 책임질 적임자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차별화했다. 또 탄핵 사태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직접 밝힌 점도 눈길을 끈다.
오 전 시장은 출마 발언에서 "설령 영남의 65석을 석권한다 하더라도 수도권의 122석에서 과반 이상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우리 모두의 희망인 '정권 탈환'은 한낱 꿈에 머물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당권 주자와 비교해 수도권·젊은층·여성층에 강점이 있다고 평가되는만큼 이 부분을 부각시켰다.
그는 이미 서울 시장 출신의 중견 정치인이지만 황 전 총리, 홍 전 대표에 비해 젊은 나이와 출중한 외모, 온화한 분위기 덕에 보수 텃밭이 아닌 회색지대에서도 표를 끌어당길 수 있다. 이는 보수 정치인 중에서는 흔치 않다.
그는 '정치인 박근혜'를 극복하자고도 했다. 그는 출마하면서 "지도자 한 사람을 중심으로 권력을 좇아, 편 가르고 싸워왔던 구태정치의 과거에 대해 국민들에게 사죄해야 합니다. 이명박, 박근혜로 나뉘어 싸워왔던 지난 10여년부터 반성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직까지 우리 당에 덫 씌워진 '친박 정당'이라는 굴레에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용기를 내어 좀 더 솔직히 말씀드립니다"면서 "국민적 심판이었던 '탄핵', 더는 부정하지 맙시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인간적 안타까움은 큽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대통령으로서 박근혜는 국민들과 당원들의 바람에 큰 실망을 안겨드린 게 사실입니다"라고 했다.
오 전 시장의 이같은 발언은 표면적으로는 보수대통합을 위한 계파 청산으로 비춰질 수 있지만 지난 2011년 무상급식에 반대해 서울 시장에서 사퇴한 뒤 황 전 총리처럼 탄핵 정국에서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한 점을 스스로 의식한 발언일 수 있다.
탄핵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그에 따른 잠재적 계파의식이 당내에서 표출돼봐야 한동안 야인으로 있던 오 전 시장으로서는 득이 될 것이 없는 셈이다.
더욱이 오 전 시장은 탄핵 정국 당시 탈당해 바른정당에 입당, 지난 대선에서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을 지원하기도 했다. 수포로 돌아가자 20대 총선에서 서울 종로에 다시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했지만 정세균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큰 차이로 낙선했다. 박 전 대통령과는 이미 그때부터 루비콘 강을 건넌 것이다.
세 후보 모두 각자의 장단점이 극명해 어느 때보다 치열한 전당대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이번 전대 결과가 길게는 다음 대선까지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세 후보의 각축전이 예상된다.
현재 황 전 총리가 가장 앞서고 있지만 단일화 여부, TV토론회 향방에 따라 얼마든지 순위가 뒤바뀔 수 있어 결과는 끝까지 지켜봐야할 것으로 전망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