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시 정치 다원화 되지만 의원 수 증가 불가피
여론, 개편 찬성하지만 의원 수 증가 반대 모순 입장…용어부터 제대로 알려야
◆…지난 14일 문희상 국회의장 주재로 만난 여야 5당 원내대표들. 이들은 다음날인 15일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합의했다. (사진=더 팩트)
12월 국회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한 거대양당과 야3당의 첨예한 줄다리기로 시끄러웠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지난 7일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예산안 처리에 전격 합의한 후부터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요구하며 국회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에서 단식농성을 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도 곧바로 동참했으며,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는 청와대 앞 1인 시위를 펼쳤다.
오랜만에 등장한 '단식 정치'는 지난 15일 여야 5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 검토에 합의하면서 9일 만에 끝났다. 하지만 합의문이 발표된 지 이틀도 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완전합의가 아닌 각각 '원론적 동의'내지 '논의할 것을 합의'했다고 입장을 내놓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둘러싼 선거제 개편의 향방이 정해지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 여전히 생소한 '연동형 비례대표제'
여야 5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 방향에 합의하지 못하고 있는 만큼 국민에게도 이 용어는 여전히 생소하다.
유권자 입장에서 보자면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 우선 국회의원 인원 증가가 불가피하다. 지역구 의석은 정해져 있으므로 비례대표를 늘리며, 총선에서 집계된 정당명부제(지지정당 투표) 결과에 비례해 각 당에 의원수가 배정된다.
가령 총선에서 정당 득표율 30%를 얻었다면 20대 국회 정원 300명을 기준으로 할 때 총 90석의 의석을 가져간다. 그 중 자기 당 소속 지역구 당선자가 70명이면 나머지 20명은 비례대표로 채우는 식이다.
소선거구제 승자독식으로 지역구 당 1명의 의원만 선출했던 방식에 비하면 정당명부제에서 지지율을 가져간 군소정당들이 비례대표로 의석을 채울 수 있어 일반적으로 소수정당에 유리하고, 다당제 같은 정치 다원화를 촉진할 수 있으며 지역 편향이 강한 호남, 영남에서의 민주당, 과거 새누리당의 의석 싹쓸이 현실을 어느 정도 보정할 수 있다고 평가된다.
비유하자면 대학입학에 지원(총선)할 때 수능 성적(지역구 투표 결과)을 저조하게 받더라도 내신 성적(지지 정당 투표 결과)이 좋으면 총점을 높일 수 있는 식이다.
이와 관련해 정유섭 한국당 의원도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국회의원 간선제와 같다. 지역구 의석이 적을수록 비례의석을 가져가는 방식"이라며 "극단적으로 말하면 내신 성적이 안 좋으면 수능 성적에 가중치를 둬 합격률을 높이자는 인위적인 조정"이라고 설명했다.
◆ 20대 총선 '연동형'이었다면 정의당 '우뚝'
연동형 비례대표제 아래서는 정당 지지율이 최우선적인 기준이 된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민주당은 정당 득표율 25.5%에 123석, 새누리당은 33.5%에 122석, 국민의당은 26.7%에 38석, 정의당은 7.2%에 6석을 차지했다. 득표율로는 3위인 민주당이 의석수에선 1위가 된 것. 기존 병립형 비례대표제에 따라 지역구는 소선거구제로 뽑고, 비례대표 의석만 정당별 득표율에 따라 나눴기 때문이다.
정의당의 당시 상황을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적용하면 총 정당 지지율 7.2%에 따라 총 22석을 확보할 수 있어 현재보다 무려 16석을 더 가져갈 수 있게 된다. 따라서 현재의 원내 군소 정당에 유리한 제도로 인식된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현재의 원내 정당(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구도가 그대로 유지된다는 전제 아래서의 계산이다. 막상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된다면 다른 많은 원외 군소 정당들의 국회 진입이 더 수월해지기 때문에 기존 원내 정당들의 기득권이 잠식될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2016년 총선에서 정의당(7.23%)에 이어 5위를 차지한 기독자유당은 2.63%의 정당 득표율을 얻고도 원내 의석을 하나도 얻지 못했다.
현행 선거법은 정당투표에서 유효득표의 3% 이상을 얻은 정당에만 의석을 배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적용하려면 이 3% 조항이 철폐돼야하기 때문에 이 경우 기독자유당은 지역구 의원을 한 명도 배출하지 않고서도 9명가량 국회 의석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선거구 개혁을 촉구하며 단식 농성을 벌이고 모습. (사진=더 팩트)
◆ 사표(死票) 방지, 정치 다원화 VS 정부 추친력 저하, 의원 늘리기 국민정서 반해
이처럼 연동형은 정당 득표율과 의석수 간 비례성을 높임으로써 사표(死票)를 줄이고, 소수세력의 의회 진출을 용이하게 만든다.
최대 수혜자는 정당 지지율이 높은 정의당이 될 것이라는 점에 이견이 없다. 민주주의의 핵심가치인 다원성의 심화와 참여의 확대라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대통령제 하에 집권 여당의 힘이 빠져 국정 추진력이 훼손될 수 있으며 국민이 직접 뽑지 않는 비례대표를 대폭 늘리는 것이 과연 직접민주주의에 맞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을 수 있다.
20일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의원 정수가 무한 확대될 위험성과 정당 간 야합 우려 등이 있다"고 말했다.
최병길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도 "의회민주주의 원조 영국과 미국에도 비례대표제 자체가 존재하지 않고, 모든 대통령제 국가에 연동형 비례제가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아시아에서 의원내각제가 가장 오래된 일본도 병립형 비례제를 채택하지만 연동형은 채택 안 하고 있다"며 "우리나라에 맞지 않는 선거제"라고 말했다.
◆ 여론조사, 개편 찬성하지만 의원 수 증가 반대…모순된 반응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 중 절반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찬성하지만 국회의원 정수 확대에는 절반 이상이 반대하고 있다.
바른미래당 싱크탱크인 바른미래연구원이 의뢰해 한국갤럽이 지난 14일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00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응답률 13.4%, 표본오차 ±3.1%p, 95% 신뢰수준)를 보면,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도입 여부에 '찬성한다'(47.6%)는 의견이 '반대한다'(35.1%) 의견보다 높게 나왔다.
이 결과는 단편적으로 해석하면 국민이 국회의원을 늘리는 것에 강하게 반대하며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해서는 찬성 입장이 소폭 우위 정도가 된다.
하지만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시행하려면 비례대표 수를 크게 늘릴 수밖에 없다. 여론조사 결과가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찬성하는데 국회의원은 늘리면 안 된다니 모순(矛盾)이다. 국민이 여전히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해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 10월에 있었던 한국리서치의 조사에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찬성하는 국민 중 66%가 '선호하는 선거제도'에 대해서는 지역구 투표를 선호한다고도 답했다. 여야 5당의 논의에 앞서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한 대국민 여론 수렴이 우선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대학원 교수는 "현실적으로 국민들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잘 모른다. 제도 자체가 복잡하고 어렵기 때문"이라며 "학생들은 물론이고 국회의원 중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꽤 되는 것으로 안다. 이 문제부터 해소해야 다음 단계로 제대로 나아갈 수 있다"며 국민들을 설득해야 선거제도 개편이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