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에서 30일 열린 이현동 전 국세청장의 국고 등 손실, 뇌물수수 혐의 등 첫 공판에서 이 전 청장이 관련 혐의를 부인했다.
이명박 정부 당시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뒷조사에 협조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현동 전 국세청장이 국정원에 김 전 대통령의 해외재산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도록 승인한 것은 인정하지만 국정원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적은 없다며 관련 혐의를 부인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재판장 조의연 부장판사) 심리로 30일 열린 이 전 청장의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국고 등 손실) 등 혐의 관련 첫 공판에서 이 전 청장 측은 "국세청 차장 재직 당시 박모 전 차장(당시 국제조세관리관)을 통해 국정원으로부터 정보 제공을 요청받아 김 전 대통령의 해외비자금과 관련한 정보를 수집하도록 승인한 것은 인정하지만 나머지 혐의는 모두 부인한다"고 밝혔다.
이날 재판에서 이 전 청장의 변호인단은 "이 전 청장은 묵묵히 세무공무원의 길을 걸어왔는데 (재판에 넘겨진) 자체만으로도 참담한 심정"이라며 "앞으로 재판 과정에서 이 전 청장의 무고를 입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전 청장은 2010년 5월부터 2012년 3월까지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 국정원 직원과 공모해 해외정보원에게 '김 전 대통령 해외 비자금 추적 비용'을 지급한 혐의(국고 등 손실)로 지난달 2일 구속기소됐다. 이 전 청장은 '데이비슨 프로젝트'로 알려진 DJ비자금 소문 추적 작업 과정에서 이 전 청장이 해외정보원에게 14회에 걸쳐 총 5억3500만 원과 미화 5만 달러를 전달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이 사건은 원 전 원장으로부터 'DJ 비자금'을 추적해 달라는 이례적인 전화를 받고 이 전 청장이 박 전 차장한테 지시해서 시작된 것"이라며 "이 전 청장은 당시 검찰조사에서 처음에는 관련 사실을 부인했다가 변호인과 이야기한 뒤 다시 인정했는데 이것이 바로 직접적인 증거"라고 말했다.
이어 "'비자금 추적이 국정원장의 요구라고 했는데 아무런 단서도 없이 소문만으로 시작할 수 있느냐'는 검찰의 질문에 '소문과 풍문만으로도 충분히 단서가 될 수 있다'고 당시 이 전 청장이 진술했다"고 지적했다. 이 전 청장이 국정원으로부터 비자금 추적에 대한 정보제공을 아무런 근거도 없이 요청받았다는 것이 검찰 측 주장이다.
검찰은 "특히 당시 박 전 차장으로부터 해외정보원에게 활동비 30만 달러를 지급했다고 보고받았다고 진술했다"면서 "이후 박 전 차장과의 저녁식사 자리에서 '해외정보원에게 얼마 준 것이냐'고 물어보니 30만 달러를 준다고 했는데 지금 보니 (그 돈이) 맞는 것 같다고 이 전 청장이 말했다"고 밝혔다. 이 전 청장이 당시 해외정보원에 자금이 지급된 사실과 액수를 보고받아 알고 있었다는 취지다.
하지만 이 전 청장 측은 검찰의 공소사실이 모두 추측에 불과하며 관련자들의 진술 또한 신빙성이 결여됐다고 반박했다.
이 전 청장 측은 "이 전 청장은 당시 역외탈세에 큰 관심이 있었던 시기라 역외탈세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는 것이 직무범위에 포함된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았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국고 손실에 대한 고의가 없었다"며 "정치적으로 상당히 민감한 사안에 첩보 단계라서 다른 직원들에게는 알리지 않고 박 전 차장을 통해서만 관련 내용을 공유했다"고 주장했다.
이 전 청장의 뇌물수수 혐의에 대해서도 이 전 청장 측은 "기본적으로 (이 전 청장이) 뇌물을 받은 적이 없으니 국세청 직원들에게 활동비 등 격려금을 줄 이유가 없다"면서 "활동비를 받은 적 없다는 국세청 직원들의 검찰 진술을 뇌물을 받은 증거로 볼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
뇌물을 받을 당시 박 전 차장과 김 전 국장이 함께 배석했다는 검찰의 주장에 대해서는 "이 전 청장은 박 전 차장인지 누구였는지 정확히 기억을 못 한다"면서 "검찰은 일부 공소사실로 마치 사실인양 주장하는데 언론에 이같은 사실이 보도되면 여론으로부터 이미 죄인이 된다"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이 전 청장은 2011년 9월 국세청장 접견실에서 원 전 원장으로부터 DJ비자금 추적 지시를 받은 김모 전 국가정보원 대북국장에게 '비자금 추적 진행 상황'을 브리핑하고 활동자금 명목으로 1억2000만 원의 뇌물(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을 받은 혐의도 추가로 받고 있다.
이 전 차장의 다음 재판은 다음달 18일 박 전 국세청 차장과 김 전 국정원 국장의 증인신문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